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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루주 Jul 29. 2022

엄마에게

너무 사소해서 전할 수 없던 말들이 있어

 지난주부터는 이불 빨래를 일주일에 한 번씩 해주고 있어. 바람 드는 곳에서 자겠다고 고집스레 창문을 열어 두었다가 송화가루로 뒤덮인 이불을 털었던 아침들이 아직 남아 있나 봐.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소나무가 있지도 않고 바다가 가까운 것도 아니라 그럴 필요 없는데.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어

 서른 즈음에는, 아직은 멀고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숫자가 익숙하게 내 것이 되었을 때에는, 모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일을 그만두고 돌아갈 거야.

내가 의중 모를 말을 중얼거리면 늘 그랬듯 엄마는 날 한참 쳐다볼 것 같아. 그리곤 가만히 생각하다가 왜 하필 서른 살인지 나에게 물어보겠지? 그리고는 떠올릴 거야. 엄마의 서른 살은 어땠는지. 아빠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린 날을, 나를 만나고 싶어 고대하던 수많은 마음을, 새로운 집에서 낯설게 맞이한 식기구를.

 새롭기만 하던 엄마의 서른에 비하면 내가 꿈꾸는 서른 살은 조금 보잘것없어 보이기도 하네. 그냥, 나는 서른 살 즈음이면 남은 시간 동안 곱씹을 만한 기억들이 충분히 생겼으리라는 믿음이 있어

 남들은 30년의 시간이 (어쩌면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20년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시간이) 너무 작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엄마 기억나? 딱 이맘때쯤 선선해지면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동네 언덕을 한 바퀴 쭉 돌았던걸. 그 짧은 순간에 마주친 강아지풀조차도 난 지나치지 못했어. 그 털 하나하나가 왜 생겼는지, 왜 강아지풀이 마음에 들었는지, 왜 여기에 하필 이게 자리 잡았는지 물어보느라 우리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했잖아.

이 짧은 순간이 아직까지 종종 떠올라. 언제부터인지 그 순간을 음미하는 게 잘 안돼서, 놓친 것들이 꽤 많았어. 기숙사 한 귀퉁이에 서서 엄마한테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는지도 몰라. 내가 놓친 순간들이, 내뱉고 싶던 말들이 잠들기 전까지 떠다녀서 아주 혼났어.


 그러니까 나는 30년의 일기를 다시 쓰는 데 거의 70년이 걸릴 거야. 내가 어떤 삶을 살든 나를 응원한다고 엄마가 말했지? 나는 새로움이 없는 삶, 과거만이 존재하는 삶, 결국 돌아가는 삶을 살 거야. 내가 꿈꿀 과거가 얼마나 기대되는지 몰라. 사람들이 정해놓은 평균수명에 딱 맞춰 산다고 하면, 난 70년의 시간 정도는 과거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데에 쓰고 싶어.

 그 70년의 되새김은 꼭 그 바다에서 이루어졌으면 해. 딱히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엄마가 그곳에서 나를 낳았으니까. 엄마가 나를 도시 한복판이나 초록색으로 가득 찬 들판에서 길렀으면 그곳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거야. 어디든 엄마의 기억이 묻어있는 곳으로 갔을 거야.

사람이 진짜 웃긴 게, 꼭 자기한테 없으면 그렇게 갖고 싶다? 나 요새는 열 아홉까지 내가 살아온 바다에 대해 생각해. 그리곤 거기 앉아있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그렇게 행복해져. 정작 몇 발자국만 내딛으면 바다가 보이던 그때는 그렇게 자주 가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아주 옛날에는 그 바다가 되게 작았어.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또 내가 너무 커서 그 바다가 작았어. 뭐가 그렇게 컸는지, 꿈도 크고 생각도 크고 마음도 넓고 또 자세도 지금보다 바르게 잡혀 있으니까 키도 그때가 더 컸겠다. 내가 너무 커서 바다가 들어설 곳이 없었어.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친구 몇 명과 함께 갔는데, 엄마도 알지? 아무튼 갔는데 바다가 이렇게 컸나? 싶었다니까. 나 자신도 여유가 생긴 건지, 아니면 일부를 어디에 덜어놓고 온 건지, 그것도 아니면 잃어버린 건지. 조금 작아져서 바다가 크게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큰 바다 한껏 구경하다 집으로 돌아왔어. 살면서 잃어버린 조각들 다시 물 내음으로 꽉 채워서 돌아왔어.

나중에 내가 아주 작아지게 되면, 또 내 주위 사람들이 두 명으로, 한 명으로 그리고 끝내 혼자가 되면 바다가 훨씬 더 커지겠지? 그리고 그 바다가 지금보다 더 필요해질 거야. 나는 지금보다 더 작아진 나를 채울 더 많은 물을 필요로 할 거야.

 평생 엄마 옆에서 아이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뭘 그렇게 구구절절했는지… 언제쯤 어른이 되려나 몰라. 꿈이라느니, 미래라느니. 그런 실체도 없는 것들이 아직 나에게는 너무 어렵다. 엄마가 나에게 다정히 설명해줘도, 나는 한참 뒤에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니면 평생을 궁금해하면서 살 수도

그냥 그 해 여름처럼 이름 모를 영화를 자장가 삼아 엄마 옆에 누워있고 싶은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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