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살아도, 생각보다 잘 버틴다》

부제: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살아온 기록

by 이칸 eKhan

1부 - 사용감이 남은 하루들



2. 오래된 머그컵의 금 간 입술



머그컵 하나를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손잡이 쪽 입술에 금이 가 있다. 처음엔 아주 얇아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우연히 발견한 이후로로는 자꾸 그 금이 눈에 들어왔다. 금은 컵을 가로질러 끝까지 가지도 못하고, 중간쯤에서 멈춰 있다. 마치 결심했다가 그만둔 사람처럼.

처음에는 버릴 생각이었다. 컵이 새는 것도 아니고, 당장 위험한 것도 아니었지만, 금이 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제 역할을 다한 물건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막상 손에 들고 보니, 이상하게도 쉽게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이 컵은 아직 물을 담고 있었고, 여전히 뜨거운 커피를 견디고 있었다.


이 컵은 오래됐다. 특별히 비싼 것도 아니고, 기억에 남을 만큼 중요한 날에 받은 것도 아니다. 어느 날 집에 들어왔고, 어느새 늘 쓰는 컵이 됐다. 아침에 가장 먼저 손이 가는 컵,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드는 컵. 그래서인지 금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습관처럼 이 컵을 계속 사용하게 됐다.

컵의 금은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대로인 것 같기도 하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변화를 알 수 없다.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예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만 분명하다. 조심해서 다뤄야 하고, 입술을 대는 각도를 조금 바꾸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그 금을 피해 마시게 된다.


사람도 이런 식으로 변한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의 일로 완전히 깨지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얇은 금 하나가 생긴 채로 살아간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고, 기능도 그대로다. 웃을 수 있고, 일도 하고, 일상을 유지한다. 다만,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다가가지는 못한다. 어디가 금이 갔는지 알기 때문에, 그 부분을 피해 행동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버려지는 것은 아니다. 금이 갔어도 여전히 쓰이는 것들이 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더 오래 남는다. 완벽한 물건보다, 조금 상한 물건이 더 조심스럽게 다뤄지듯이. 깨질 수 있다는 걸 아는 순간, 함부로 굴지 않게 된다.


이 머그컵도 그렇다. 금이 가기 전에는 대충 다뤘다.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두고, 다른 그릇과 부딪히게 놓기도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씻을 때도 한 번 더 살피고, 놓을 때도 빈자리를 만든다. 금 하나가 이 컵의 대우를 바꿔 놓았다.

완벽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오래 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미 한 번 금이 갔다는 사실이, 오히려 끝을 늦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버리게 되겠지만, 그 시점은 아직 아니다. 이 컵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


커피를 마시며 컵의 입술을 본다. 금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더 나아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냥 그렇게 머물러 있다. 그 모습이 묘하게 안심이 된다. 무너지지 않았고, 버텼고, 아직 쓰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컵은 말이 없다. 다만 조용히 알려준다.

조금 금이 갔다고 해서, 당장 쓸모가 없어지는 건 아니라고.

조심해지긴 했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을 수도 있다고.


나는 오늘도 이 컵으로 커피를 마신다.

완벽하지 않은 입술로, 생각보다 괜찮은 하루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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