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살아온 기록
완벽하게 관리되어 손때 하나 없이 반짝이는 것들 앞에서는, 내가 너무 성의 없이 살아온 사람처럼 느껴진다.
부엌에 아직 길들지 않은 프라이팬 하나가 있다. 설명서대로 다루지 않았고, 특별히 정성을 들여 관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쓸 때마다 약간은 조심스럽다. 잘 달라붙어 음식을 망치기도 하고,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애매하다.
설거지를 하다 보면 바닥에 남은 흔적들이 보인다. 깨끗이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 수세미가 지나간 자국, 기름이 식으며 남긴 옅은 흔적들. 그것은 지저분함과는 다르다. 방치의 결과라기보다는, 사용의 흔적에 가깝다. 흙이 묻은 손처럼, 무엇인가를 했다는 표시다.
어릴 때 흙장난을 하고 돌아오면 손은 늘 더러웠다. 손톱 밑에 흙이 끼고, 손금 사이로 때꾸정물이 잡히고.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흙이 묻어 있으면 밖에서 놀았다는 뜻이다.
흙이 묻은 손은 금방 씻겨 나간다는 걸 안다. 그래서 지워질 걸 알기에, 더러움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 흔적에는 책임도, 관리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놀다 온 결과였다.
프라이팬에 남은 얼룩을 보며 그때가 떠오른다. 애써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조금 부족해도 기능은 남아 있다는 사실. 흠집이 있어도 쓸 수 있고, 얼룩이 있어도 밥은 먹을 수 있다는 단순한 조건들.
요즘은 무엇이든 지나치게 정돈되어야 한다. 감정도, 관계도, 심지어는 사소한 일상까지도 '매니징(Managing)'이라는 이름 아래 관리된다. 관리되지 않으면 문제로 분류되고, 흠이 보이면 고쳐야 할 대상으로 바뀐다. 그래서 우리는 늘 정리하고, 다듬는다. 하지만 흙장난에는 그런 과정이 없었다. 끝나면 씻으면 그만이었고, 안씻고 밥벅을 때도 있었다.
씻겨진 그릇들이 물기를 털어내고 다시 가지런히 놓인다. 여전히 길들지 않은 프라이팬은 여전히 투박한 얼굴이다. 다음에 쓸 때도 아마 조금은 애를 먹게 될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필요하면 다시 닦아내면 된다. 완전히 깨끗해지지 않아도, 각자의 기능적인 삶을 이어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약간의 더러움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
조금은 어긋나고 엉망이어도 괜찮다는 스스로를 향한 허락.
길 들이지 못한 프라이팬과 꼬질꼬질한 아이들의 손은 오늘도 한쪽에서 조용히 말한다.
대충 살아도, 생각보다 잘 버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