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은 늘 그래왔다. 불황이 오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사람이다. 기계는 남고, 사람이 떠난다. 그 바람은 과거에도 불었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책상을 지나가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 잦고 더 조용하게 진행될 것이다.
경영이 어렵다는 말은 자연재해처럼 도착한다. 책임의 주어는 사라지고, 결과의 목적어만 남는다. 누군가는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 우리는 이 장면에 익숙해졌다. 의자 하나가 빠지고, 메일 계정이 닫히며, 이름이 조직도에서 지워지는 순간들에.
예전 D사에서 신입사원까지 정리해고 명단에 올랐다가 막판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 사람들은 숨을 줄이고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커피의 온기보다 상사의 눈빛을 먼저 확인하는 시간. 그리고 마침내 등장하는 말, ‘명예퇴직’. 오래 쓰인 표현이지만, 여전히 낯설고 불편하다.
퇴직의 어디에 명예가 있는가? 그것이 온전히 선택이었는지, 새로운 삶을 향한 전환이었는지, 아니면 조용한 퇴장을 요청하는 조직의 체면을 덧바른 말이었는지, 질문은 늘 남는다.
물론 어떤 이에게 퇴직은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계의 단절이고, 정체성의 붕괴이며, 오랜 헌신이 한순간에 정리되었다는 통보다. 같은 단어가 다른 무게로 떨어진다.
“그래도 명예롭게 나왔잖아?”
그 문장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종종 침묵을 요구한다. 그의 손에 들려 나가는 박스 안에는 명예가 아니라 걱정과 두려움이 담겨 있다.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공백이 남는다.
정말 미안하다면, 박수보다 내일을 먼저 생각해줘야 한다. 이력서를 대신 써주지 못하더라도, 끼니를 걱정하는 마음 하나쯤은 남겨줘야 한다. 떠나는 사람에게 남겨지는 것은 말이 아니라 기억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인문학 경영’을 말한다.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봉사를 한다. 사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일은 가장 마지막 순간에서 드러난다. 이별의 언어가 체면이 아니라 진심일 때, 그 철학은 비로소 증명된다.
퇴직은 퇴직일뿐이다. 그 자체로 충분히 무겁고, 충분히 인간적이다. 굳이 ‘명예’라는 금칠이 필요하지 않다. 어떤 포장도 사라진 자리의 무게를 대신할 수는 없다. 퇴직은 한 사람의 시간과 존엄, 그리고 감정의 총합이다. 명예는 퇴직 앞에 붙이는 말이 아니다.
명예는 떠난 뒤에도 남아 있는 사람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태도에 붙이는 것이고, 명예를 말하기 전 먼저 사람을 남겨두었는지 물어야 할 것이며, 명예는 떠나는 순간이 아니라, 떠난 이후를 대하는 방식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