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아 있는 시간

친구의 죽음

by 이칸 eKhan

그와는 자주 만나던 사이가 아니었다.

SNS에서 한 두 번, 누군가와의 얘기에서 살짝 거론되는 뭐 그런 정도 사이 였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부고를 들었을 때 나는 잠시 현실감을 잃었다. 이름을 다시 확인했고, 나이를 다시 계산해 보았다. 아직 우리 나이에 ‘급작스러운’이라는 말이 붙을 일은 아니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례식장에는 가지 않았다. 다녀온 친구의 말로 죽음의 원인과 남겨진 가족 그리고 살아온 흔적을 말하는 조문객을 전해 들었을 뿐이다. 직접 보지 않았는데도 그의 후덕함과 넉넉함 살집이 떠올랐다.

그의 후덕한 웃음이 이렇게 완결된 표정으로 남을 줄은 몰랐다.


나는 아연했고, 조금은 당황했다. 슬픔이 먼저 와야 할 자리에서 다른 감정이 앞섰다.


그 다음은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애도는 타인을 향해야 하는데, 죽음은 늘 나를 향해 되돌아온다.


그의 멈춤이 곧 나의 멈춤을 예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친구의 죽음이 마냥 슬픈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혀 슬프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다음 차례가 내가 아니길 바라는 막연한 심정이 먼저 고개를 든다.


그의 부재를 통해 나는 내 순서를 가늠하고 있었다. 조금 부끄럽지만, 그것이 가장 정확한 감정이다.


우리는 늘 ‘다음’을 전제로 헤어진다. 건강 조심하라는 말, 다음에 보자는 인사. 그러나 그 전제는 생각보다 허술하다. 그의 죽음은 내게 하나의 과제를 남겼다. 남은 삶을 조금 더 밀도 있게 채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미뤄둔 연락을 하고, 무심히 흘려보낸 시간을 붙잡고, 막연한 ‘언젠가’ 대신 오늘을 또렷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압박.


그의 부재는 이미 확정되었다.


그러나 나의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그 길이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마지막을 통해서야 비로소 자신의 시간을 의식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애도한다.

그리고 동시에, 아직 멈추지 않은 나의 시간을 조용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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