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상처의 무게, 사람의 깊이
상처는 보호받아야 한다.
상처는 가벼이 다뤄서는 안된다. 누군가의 마음이 실제로 흔들렸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함부로 판단하고 짐작해서도 안 된다. 보이지 않는 흉터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상처는 이해받을 권리가 있고, 존중받을 자리에 있어야 있다.
하지만 그 상처가 타인을 공격하는 이유가 되는 순간, 그것은 다른 이야기를 갖게 된다.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힘의 도구가 된다.
“나는 아팠다”는 말이 “그러니 너는 감수해야 한다”로 바뀌는 순간, 상처는 설명이 아니라 명령이 된고, 고통은 정당성으로 변하며, 그 정당성은 곧 권력이 된다.
상처가 깊을수록 사람은 예민해질 수 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 예민함이 타인을 밀어내는 이유가 되고, 관계를 통제하는 수단이 될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문해봐야 한다. 아픔은 이해를 구할 수는 있어도, 상대에게 나의 요구를 관철시킬 '권리'는 되지 않는다.
어른은 자신의 상처를 이유로 타인을 밀어내지 않는다.
아픔을 핑계로 삼지 않는다.
상처를 방패처럼 들고 서 있지 않는다.
물론 어른도 다치고 흔들린다. 단지 그 다룸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되, 그것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는다. “내가 아프다”는 말과 함께 “그러니 네가 책임져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감정은 솔직하게 드러내되, 선택과 행동의 책임은 스스로 감당한다.
상처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결국 그 사람의 깊이를 드러낸다.
상처를 붙잡고 타인을 통제하려는 사람은 아직 아픔 안에 머물러 있다.
상처를 이해로 바꾸는 사람은 그 아픔을 견디고 지나온 사람이다.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을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그리고 무엇으로 사용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상처를 이유로 관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상처를 통해 타인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할 수도 있다.
결국 성숙은 상처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상처를 다루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 태도가 한 사람의 무게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