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대통령의 말로(末路)와 우리의 불행

금동수의 세상 읽기(210330)

by 금삿갓

코로나19로 가장 활황(活況)을 보이는 분야가 배달업 분야일 것이다. 미디어 업계도 공급자 위주 배달시스템인 지상파 방송이나 위성·케이블·IPTV 방송보다 소비자가 골라볼 수 있는 주문형 OTT인 넷플릭스의 성장이 괄목(刮目)할만하다. 2020년 12월에 전 세계 가입자가 2억 명을 돌파했다. 우리나라도 2021년 2월 말 현재 1천만 명을 넘었고, 2020년 매출액이 5,173억 원으로 웬만한 방송사를 능가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방송사 출신인 필자도 요즘은 방송보다 넷플릭스의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

일전에 2014년 조지아에서 제작된 <어느 독재자 : The President>란 영화를 봤다. 이란의 반체제 거장(巨匠) 모흐센 마흐말바프(Mohsen Makhmalbaf) 감독이 만든 영화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우리에게 자주 소개되었고, 국제영화상도 다수 수상한 감독이다. 일가족이 대부분 주목받는 영화인이다.

영화는 아랍의 어느 가상(假想) 독재국가에서 화려한 조명의 밤거리에 독재자(미헤일 고미아쉬빌리 분)를 칭송하는 방송이 ‘땡전 방송’처럼 나오면서 시작한다. 그는 자기 아들 내외를 테러한 범인들의 사형명령서에 서명하며, 후계자인 어린 손자(다치 오르벨라쉬빌리 분)와 도시의 야경(夜景)을 구경한다. 권력과 후계자가 뭔지도 모르는 손자가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계속 조르자 전화 한 통으로 대통령궁을 제외한 도시의 모든 불을 일제히 껐다가 켜서 권력의 힘을 보여준다. 그 모습에 신이 난 손자도 해보고 싶다고 전화로 불을 끄라고 명령하지만 대통령궁의 불까지 꺼지고, 다시 켜라고 명령해도 불은 켜지지 않고 총성과 폭발음이 울려 퍼지면서 혁명(革命)을 예고한다. 이는 마치 중국 주(周) 나라의 마지막 유왕(幽王)이 애첩 포사(褒姒)를 웃기려고 외적의 침입도 없는데 봉화(烽火)를 올려 제후들을 허탕 치게 만든 이야기와 비슷한 구조다. 폭군 유왕은 결국 거짓말쟁이 목동처럼 BC 771년 견융(犬戎)의 침입으로 죽음을 당하고 주나라는 멸망했다.

독재자 특유의 감각으로 다음날 가족들을 모두 해외에 망명(亡命)시키고 본인 혼자 남아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으나, 여자 친구와 장난감 때문에 남게 된 손자와 둘이서 혁명의 틈바구니를 헤매게 된다. 불타는 자신의 초상화, 전쟁터 같은 총격전과 폭동의 거리를 보고, 자신의 목에 걸린 현상금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그 둘을 노리는 올가미가 된다. 행인의 오토바이와 옷을 빼앗고, 가난한 이발사에게 머리를 밀고 가발을 빼앗고 그의 아들 옷도 벗겨 손자에게 입혀서 탈주극(脫走劇)을 벌이지만 녹녹지 않다. 기타를 훔쳐 거리의 악사로, 들판에선 양치기 목동이나 허수아비 노릇도 하며 도주를 한다. 그 과정에서 군인들이 시민들의 물건을 약탈하고 심지어 갓 결혼한 신부(新婦)를 강간하고 죽이는 것도 본다. 자신의 독재정치로 백성들은 빈곤과 기아(飢餓)에 허덕이고 군인들이 도적 수준으로 부패한 참상을 목도(目睹)한다. 우여곡절 끝에 망명(亡命)을 위한 바닷가에 당도하지만 배는 보이지 않고 추격대가 다가오자 하수도관 속에 숨어 있다가 체포된다. 이 모습은 마치 리비아 철권 통치자 무아마르 카다피 (Muammar Gaddafi)의 말로(末路)와 같았다. 카다피와 친위대원들은 미군의 공습을 피해 도주 차량에서 내려 도로 밑의 하수관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하수구에 숨어있던 카다피를 시민군들이 추격해서 생포했고, 도망시 입은 중상으로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20세기 들어 전 세계 각국에서 집권했던 독재자들의 말로는 이와 비슷하다. 그들의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독재자가 현직에서 사망한 사례이다. 독일의 독재자이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는 소련군이 나치 독일의 수도에까지 진격한 직후인 1945년 4월 30일, 부인인 에바 브라운(Eva Braun)과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 후 석유를 끼얹어 화장토록 하였다.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Vissarionovich Stalin)은 ‘강철 인간’이라 불리며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30년 이상 ‘크렘린의 주인’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정적들에 대한 피의 숙청, 22,000명의 폴란드 장교들 학살, 자국민 68만 명 이상 학살, 한국전쟁 획책, 사할린 동포의 강제이주 등 한 맺힌 일을 저지른 그는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1953년 3월 1일, 모스크바 근교의 별장에서 잠을 자다가 뇌졸중을 일으켰다. 오른쪽 반신이 마비된 상태로 나흘을 더 버티다가 3월 5일에 숨을 거두었다. 사실은 그의 심복(心服) 베리야(Beriya, Lavrenty Pavlovich)에게 암살되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데, 베리야가 “내가 그를 독살했다”라고 자랑삼아 떠벌이기도 했으며, 흐루시초프도 이를 확신한다고 기록했다.

안토니오 데 올리베이라 살라자르(António de Oliveira Salazar)는 교수 출신으로 36년간 포르투갈을 통치하며 독재를 손쉽게 하려고 축구·종교·음악의 3F 정책(Football, Fatima, Fado)이라 불리는 우민화(愚民化) 정책을 폈다. 말년인 1968년에는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기다가 누워 있던 해먹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땅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뇌출혈로 쓰러졌다. 살라자르는 몇 달 뒤 의식을 되찾았으나 그의 측근들은 그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조작(造作)된 신문과 가짜 서류들을 올려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였다. 그는 1970년 7월 27일 죽을 때까지 진실을 모른 채 아무 의미도 없는 명령서에 서명(署名)하면서 살다가 사망했다.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는 스페인 내전의 주역으로 1936년에 권좌에 올라 독재자가 되고 1947년에는 국민투표로 왕정체제로 되돌린 뒤 스스로 섭정(攝政)이 되어 종신 권력을 획득했다. 1975년 사망할 때까지 40여 년간 20만 명 이상을 희생시킨 철권통치를 했지만 처벌되지 않고 82세로 천수를 누렸다. 북한의 김일성 일가는 1946년부터 지금까지 3대에 걸쳐 권력을 세습하는 절대 왕정 같은 정치체제로 피의 숙청과 철권통치, 6·25 남침, 대남 공비 파견, 테러, 남한의 적화 전복 기도, 핵무기 개발 등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짓을 했지만 제대로 된 심판 없이 김일성은 1994년 7월 8일, 김정일은 2011년 12월 17일 사망했다. 김정은은 집권하여 형의 암살, 고모부 장성택의 고사총 숙청 등 친정체제 강화를 위한 무자비한 숙청을 자행하고 핵무기 발사 실험을 거듭하고 있는데 건강 악화설이 떠도는 가운데 그의 말로가 어떨지 궁금하다.

군사 쿠데타나 내전으로 권력을 잡은 후 독재정치를 하다가 정권이 무너지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망명 중 사망한 독재자는 다음과 같다. 이디 아민(Idi Amin)은 우간다의 직업군인으로 1971년 1월 25일 대통령 오보테가 싱가포르 국제회의에 가 있는 동안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1979년까지 집권하면서 50만 명의 양민(良民)을 학살하여 ‘아프리카의 학살자’로 불렸다. 그는 정적(政敵)을 악어 밥으로 만들거나 남녀 불문 성기 고문, 산 사람 탱크로 뭉개기, 굶긴 죄수에게 죄수 시체를 먹도록 하는 등 잔혹한 수법을 사용했다. 심지어 “인육을 먹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가 침공했던 탄자니아로부터 도리어 침공을 받아 무너져 리비아, 이란 등을 떠돌다가 마지막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고혈압으로 죽었다.

폴 포트(Politique Potentielle)는 본명이 썰롯 써(Saloth Sar)로서 캄보디아의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공산주의 크메르루주를 이끌고 내전에 성공했다. 1976년 5월 13일 정권의 수반에 올라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 “0년”을 선포하였다. 1979년까지 “킬링 필드”라는 대학살을 자행하여 200만 명 이상을 죽였을 거로 보고 있다. 1985년 젊은 훈 센((Hun Sen) 정권에 밀려 산악지대로 대피해서 있다가 1997년 7월 25일 부하들에게 체포되어 인민재판에서 종신형 받은 후 연금 상태에서 다음 해에 죽었다. 32살에 최고 지도자가 된 훈 센 또한 모든 언론과 인터넷을 장악하고 정적을 죽이면서 지금까지 장기간 독재를 계속 감행하고 있다.

모부투 세세 세코(Mobutu Sese Seko)는 콩고의 군부 출신으로 1965년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 대통령이 되어 권력을 장악했다. 1971년에는 국명을 자이르(Zaire)로 변경했다. 1997년까지 32년간 독재로 개인 금광을 비롯하여 국내에 11개나 되는 궁전과 호화 요트, 서방세계에 별장 등 많은 재산을 축재했다. 개인 금광인 킬로 모토(Kilo Moto) 광산은 금 매장량이 1백여 t이나 된다. 자신의 고향인 그바돌리테(Gbadolite)에 있는 대리석 궁전은 악어(鰐魚)로 채운 해자(垓子)가 있고, 광활한 정원에는 사자와 코끼리들을 사육하며 국제공항이 있었다. 1996년 모부투가 스위스에서 암 치료를 받으려고 나간 사이 반군에게 국가의 대부분을 점령당했고, 1997년 5월 결국 반군에게 축출당했다. 그는 모로코에 머물다가 전립선 암으로 죽었다.

독재자로서 정권의 붕괴와 함께 처형되거나 피살된 사례들이다.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이탈리아의 참전용사들을 규합하여 파시스트당을 만들어 테러와 습격으로 세(勢)를 넓혀 1922년 총리로 집권했다. 1943년까지 21년간 통치하면서 일당 독재와 언론·정적(政敵) 탄압, 에티오피아 침공, 2차 세계대전 참전 등 수많은 폭정을 하다가 연합군의 공격으로 실각하였다. 이태리 북부에서 히틀러의 도움으로 괴뢰 정권을 구성하여 연명하다가 1945년 4월 25일에 반파쇼 의용군에게 코모 호반 인근에서 체포돼 28일 정부(情婦)와 함께 처형된 뒤 29일 밀라노의 피아잘레 로레토 광장에 있는 어떤 주유소 기둥에 거꾸로 매달렸다. 아주 처참한 처형(處刑)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니콜라이 차우세스쿠(Nicolae Ceausescu)는 1967년에는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취임, 루마니아의 국가 원수가 된다. 그 후 22년간 루마니아를 족벌정치, 공포정치 등 철권통치를 했다. 1989년 12월 21일 차우셰스쿠는 궁전 발코니에서 대중 10만 명을 모아 자신을 지지(支持)하는 관제(官製) 대회를 열었으나 도리어 독재에 저항하는 시위대로 돌변하였다. 그는 신변에 위험을 느껴 정규군을 출동하게 했으나 그 정규군은 오히려 시위대에 가담했다. 12월 25일 구국전선의 군사 법정에서 반역과 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3명의 군인들에게 총탄 각각 160여 발의 세례를 받고 처참하게 죽었다. 처형되는 장면은 공개로 이루어졌고 생중계되었다.

사무엘 도(Samuel Kanyon Doe)는 라이베리아의 육군 하사로서 1980년 4월 12일에 대통령인 윌리엄 톨버트에 대항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궁을 폭격하고, 톨버트와 그의 지지자 26명이 살해했으며 10일 뒤에는 내각 13명도 공개적으로 사형했다. 스스로 대통령이 되어 다른 부족들을 학대, 탄압하다가 1990년 9월 10일 내전 중 반군에 체포되어 고문당한 뒤 처형되었다.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은 1969년 이라크의 쿠데타에 참가하여 혁명평의회 부의장이 된 후 1979년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기습 침공하여 점령했으나,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과 걸프(Gulf) 전을 치르다가 1991년 2월 패배하여 국제적으로 고립되었다. 2003년 3월 20일 대량살상 무기(WMD)의 제거 명분으로 미·영·호(濠) 연합군의 공격으로 바그다드가 함락된 후 도주하였지만 미군에 체포되어 전범재판에 회부되었다. 2006년 11월에 사형이 선고되었으며 그해 12월 30일에 집행되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c)는 유고의 정치가로 1989년 세르비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다민족 국가인 유고연방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워 내전을 촉발시켰다. 크로아티아 내전,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사태 등 수많은 사망자를 내고, ‘발칸의 도살자’라 불리며 인종청소를 벌이다가 2000년 민중봉기로 실각(失脚)하였다. 1999년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 형사재판소(ICTY)에 의하여 전쟁범죄와 학살죄,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고, 2001년 체포되었다. 전범(戰犯)으로 재판을 받던 중 2006년 3월 감옥에서 사망하였다.

20세기 이후 세계적으로 독재와 폭정이 끊임없이 발생하였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미얀마는 2021년 2월 1일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국방군 총사련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여 고위 인사들을 구금시키고 1년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3월 27일 현재 저항하는 민간인 450명 이상을 총격으로 사살하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뚜렷한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지금까지 73년 동안 19대의 대통령직을 12명째 수행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의 통치 스타일과 마지막까지 행보를 보면 영광스럽기는커녕 그리 순탄하지도 않다. 고려나 조선의 역대 왕들은 치세(治世) 기간 동안 업적 등을 평가하여 묘호(廟號)를 붙였다. 나라를 세우거나 반정(反正) 또는 국난(國難)을 극복하여 나라의 정통성을 세운 경우는 조(祖), 정통을 계승하고 업적이 있는 왕은 종(宗)으로 묘호를 붙였다. 실정(失政)을 하거나 왕좌에서 쫓겨난 경우는 종묘에 신위를 모시지 못하여 군(君)으로 불리고 역사서도 실록(實錄)이 아니라 일기(日記)이며 묘(墓)도 릉(陵)이 아니다. 연산군·광해군이 여기에 해당되고, 단종도 처음에는 노산군(魯山君)이었다가 숙종 때에 추증(追贈)되었다. 후대의 평가에 따라 정하지만 바른 평가라 보기도 어렵다. 나라를 빼앗기고 강제 퇴위를 당한 고종이나 순종의 묘호는 과하다고 볼 수 도 있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을 이런 절차에 따라 평가한다면 어떤 결과일까 궁금하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3대를 집정(執政)하면서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과 부정선거 때문에 4·19 혁명으로 하야(下野)했다. 그 후 미국 하와이로 망명하여 쓸쓸하고 힘든 노후를 보내다가 사망했다. 국부(國父)로서 존경받지 못한 불행한 최후를 맞은 것이다. 4대 윤보선 대통령은 국정 장악력이 부족하여 박정희 군부세력의 5·16 정변으로 임기 중에 강제 사임되었다. 5·16 정변으로 5~9대의 18년간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기간의 공과(功過)를 떠나 부하의 총탄에 비명횡사(非命橫死)하는 불행을 맞았다. 10대의 최규하 대통령도 취임 8개월 만에 신군부 세력에 밀려 중도하차했다. 11~12대 전두환 대통령은 12·12 군사정변으로 실권을 장악하여 대통령이 되어 7년 6개월간 집권하였으나 퇴임 후 반란과 뇌물수수 혐의로 무기징역 및 2,205억 원의 추징금 판결을 받았다. 징역형은 사면되었으나 추징금은 아직도 미 집행된 상태이다. 제6공화국 최초의 직선제 5년 단임인 13대 노태우 대통령은 임기 후 전두환과 같이 구속되어 17년의 징역과 2,628억 원의 추징금을 받았다. 징역형은 사면되었고, 추징금도 2013년에 완납되었지만 15여 년간 병상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속칭 군사정권 또는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14대 김영삼 대통령부터 민주화 정권이라고 불리었지만 대통령들의 일신(一身)은 그리 영예롭지 못했다. 임기 중에 ‘소통령’이라 불리던 둘째 아들 김현철이가 구속되어 알선수재 및 세금 포탈 등으로 징역 2년과 벌금·추징금 15억 원을 받았다. 15대 김대중 대통령도 김영삼과 마찬가지로 임기 중에 둘째 아들 김홍업이 수뢰 혐의로 징역 2년 벌금·추징금 6.6억 원을 받았다. 임기 후에도 맏아들 김홍일이 수뢰혐의로 징역 2년 추징금 1.5억을 받는 불명예가 발생되었고, 사후에는 막내아들이 관련된 유산의 정리 문제가 잇따르고 있다. 16대 노무현 대통령도 친형·부인·자녀 등의 비리 연루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는 등 불명예가 발생하자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하는 불상사를 자초(自招)했다. 17대 이명박 대통령은 뇌물 혐의로 징역 17년, 벌금·추징금 187억 원이 확정되어 수감 중이고, 18대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상 최초로 현직에서 탄핵되어 물러나면서 구속되어 징역 20년, 추징금 215억 원의 판결을 받고 수감 중인데 아직 모든 재판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들의 말로가 군사 정권 이전은 주로 쿠데타·독재나 장기집권의 사유로, 민주화 이후는 개인이나 주변인의 비리(非理)로 얼룩진 것으로 구분된다. 우리는 정말 불행한 대통령을 가진 불행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역대 대통령 중 가톨릭 세례명을 가진 경우 해당 성인과 비슷한 삶을 산다는 약간 견강부회식(牽强附會式) 골계(滑稽) 담론(談論)이 있어서 우스갯거리로 소개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세례명은 노기남 신부가 지어준 영국의 법률가이며 <유토피아>의 저자인 토마스 모어(Thomas More)이다. 그는 16세기에 반역죄로 단두대(斷頭臺)의 이슬로 사라졌다. 김대통령은 하필 목 잘려 죽은 토마스 모어로 정해주는지 가슴이 서늘했다고 자서전에서 회고했단다. 토마스 모어는 가톨릭 신봉자로서 루터의 종교개혁을 반대하고, 개혁파 신학교수 6명을 화형 시키는 등 자기 신념이 강했다. 그래서 헨리 8세의 이혼을 반대하다가 처형되고, 지구 상에 없는 이상향(理想鄕)인 <유토피아>를 그렸다. 이는 곧 사유재산이 없는 평등한 사회, 즉 공산주의를 이상 사회로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김대통령이 정적에게 목숨을 잃을 위기도 겪으면서 대권에 도전하는 신념이나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평화 공존한다는 뜬구름 같은 이상향을 일평생 추구한 것이나 비슷하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없는(ou-)’과 ‘장소(topos)’라는 말을 결합하여 만든 용어로 ‘어디에도 없는 장소’를 뜻한다. 북한은 전혀 평화를 추구하지 않는데 한평생 없는 평화를 구걸하며 믿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1986년에 송기인 신부가 유스투스(Justus) 또는 유스토로 지어 주었다고 한다. 유스토라는 세례명의 성인(聖人)은 여러 사람이다. 대부분 로마 시대의 순교자나 성직자다. 군인 출신, 9살의 어린 소년, 영국의 캔터베리 주교(主敎), 일반 시민도 있다. 1866년 프랑스 출신으로 조선에 와서 선교하다가 새남터에서 순교한 유스토 신부도 있다. 특이한 사람이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황제 치하의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시민이었던 유스토이다. 그는 항상 참회와 애덕(愛德)의 생활에 헌신하고 있었음에도 무거운 것을 몸에 매달고 바다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라는 사제가 바닷물에 떠밀려온 유해를 수습하여 트리에스테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965년 가톨릭계 성심여중 재학 시절에 율리아나(Juliana)라는 세례명을 받았다고 한다. 율리아나라는 성녀(聖女)도 한 사람은 아니다. 이태리 쿠마(Cuma)라는 마을에서 순교한 성녀도 있지만, 벨기에 출신 율리아나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다. 가끔 환시(幻視)를 경험하는데, 그때마다 주님의 성체(聖體) 축일이 없다는 계시(啓示)를 받았다고 한다. 나중에 수녀원장이 되어서 주교의 도움으로 교구 내에 성체 축일 도입에 성공했으나 자신을 지지했던 주교가 사망하자 반대 세력으로부터 수녀원장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일생동안 성제 축일 제정과 보급을 위해 활동하다가 1258년에 선종(善終)하였는데, 6년 뒤에 우르바누스(Urbanus) 교황이 성체 축일을 공식화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교황청을 방문했지만 티모테오(Timotheos)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이기도합니다.” 2018년 10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면접한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밝혔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 학교를 마치면 인근 성당에 가서 구호식량(救護食糧)을 배급받았다고 한다. 또한 어머니를 따라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산 영도구의 신선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티모테오는 성 바오로의 동료이자 제자로 그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 그는 말년에 로마 신화에 사냥의 여신으로 나오는 다이애나(Diana)를 받드는 제전이 열렸을 때, 정면에 나서 우상숭배(偶像崇拜)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광분한 군중들에게 몽둥이나 돌로 집단 폭행을 당하여 죽었다고 전해진다. 바오로와 티모테오의 관계에서 노무현과 문재인의 관계가 오버랩되어서 떠오른다. 티모테오는 기독교 교리에는 맞겠지만, 다른 종교 신자나 무교자(無敎者)들이 지켜온 정통적 질서를 대놓고 비판하는 행위를 하다가 결국은 비참은 죽음을 맞이한 셈이다. 기존의 많은 제도를 적폐(積幣)로 규정하고 과거사(過去事)에만 매몰되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드는 문대통령이 성난 민초들의 분노를 살 일을 더 이상 만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중국 송나라 시절의 선승(禪僧)인 불안(佛眼) 청원선사(淸遠禪師)가 지도자는 두 가지 허물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말을 타고서 말을 찾는 것이 하나의 허물이다. 말을 다 타고서 말에서 내리려고 하지 않는 것이 또 하나의 허물이다.” 말을 더 타겠다는 자나 말을 타고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의 말로(末路)는 늘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금삿갓 芸史 琴東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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