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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May 25. 2023

(26) 나폴레옹의 불가능 - 조세핀

★ 18禁 역사 읽기 ★ (230525)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 1769~1821)이 약 1,600여 년 전 한니발이 넘었던 기록을 깨려고, 알프스 산맥을 넘기 전에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단어가 없다"라고 부하 장교에게 큰 소리를 친 것은 요즘 삼척동자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시절 나폴레옹의 그 잘난 용기와 능력, 장래성을 완전 깡그리 무시하고 생 까는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조제핀 드 보아르네(Joséphine de Beauharnais : 1763~1814)였다. 그녀는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카리브해 연안의 섬인 마르티니크에서 태어났다. 처녀 시절의 본명은 마리 조제프 로즈 타셰 드 라 파제리(Marie Josèphe Rosé Tascher de La Pagerie)라고 엄청 긴 이름이었다. 읽으려면 노인네는 한숨 쉬고 읽어야지 아니면 질식할 정도다. 그녀의 친가인 파제리 가문은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하는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허리케인으로 인해 사업이 망해 빈궁한 처지로 전락했다. 결국 데지레라고 불리던 그녀의 고모가 프랑스 본토의 부자 귀족의 정부(情婦)가 되는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살게 되었다. 고모 데지레는 그녀를 본국 파리로 불러들여 자기의 정부(情夫) 막내아들인 청년 장교 알렉상드르 드 보아르네와 결혼을 시킨다. 이 여자는 16살 때 보아르네라는 명문가와 결혼했지만, 부부의 사이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의무적으로 그들은 아들과 딸을 하나씩 낳기는 했으나, 남편 알렉상드르는 결혼한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아버지 내연녀의 조카딸보다는 본인이 직접 선택한 내연녀를 선호했고 아예 집을 나가 사창가를 돌아다며 살았다. 결국 법원은 남편이 비용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별거를 인정했고,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살게 되었다.

남편 알렉상드르는 귀족신분의 장교로  미국 독립전쟁에 자원하고, 프랑스혁명전쟁에도 장군으로 참전하는 등 완장을 차고 깝쭉 대다가 처형되고, 그녀 역시 투옥되었으나, 테르미도르 반동과 로베스 피에르(1758∼1794)의 실으로 운 좋게 풀려난다. 참고로 그녀가 풀려난 건 처형당하기 바로 전날이었다. 졸지에 청상과부(靑孀寡婦)가 돼 자식 두 명과 함께 빈궁한 생활을 하게 될 처지였다. 다행히 감옥살이를 할 당시 만난 감방 동기 테레사 탈리앵(Theresa Tallien)과의 친분으로 총재(總裁) 정부 아래의 파리 상류층에 들어가면서 파리 사교계에서 이름을 드날린다. 테레사 탈리앵은 18세기를 대표하는 파리 사교계의 미녀로 당시 딸기 즙으로 목욕하고 피부 미용을 잘해서 요즘도 난다 긴다 하는 여자들이 프랑스 올리고더미 딸기 웨딩 팩을 한다고 난리다. 그녀는 나폴레옹과 결혼 전에 5인의 총재 중 주역인 프랑수아 바라스의 정부이면서 나폴레옹의 라이벌이었던 라자르 오슈 장군과도 내연 관계를 맺는 등 수많은 연인을 두었다. 사실 갑자기 두 아이가 딸린 미망인이 되었으나, 그녀는 남다른 기지와 뛰어난 사교성으로 파리 사교계에 벼락같이 여왕으로 화려하게 떠올랐다. 그 같이 빠른 시간에 파리 사교계에 여왕으로 등장하게 된 데에는 부유한 와인 재벌의 맏아들 폴 바라스라는 동갑내기 문학 지망생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예술분야에 남다른 감성을 가졌던 그녀는 끼니도 거른 채 몽마르트르언덕을 거닐다 해질 무렵 살롱 리베에 들렸다. 조세핀은 빈속에 와인 한 잔으로 의식이 몽롱해 앉아 있는데 “취하신 것 같은데 제가 댁까지 모셔다 드리면 결례가 될까요?”라고 말하며 다가온 권력자 바라스의 마차에 실려 그의 집으로 갔다. 그렇게 그들은 하룻밤 사이에 만리장성을 쌓았고 연인이 된 것이다. 최고의 권력자로서 돈에 궁색함이 없던 바라스는 물심양면으로 조세핀의 보호자가 되었다. 이 와중에 어떤 인연으로 아들 외젠 드 보아르네와 나폴레옹의 인연을 계기로 나폴레옹과 교류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연히 나폴레옹 같은 하찮은 외모의 젊은 장교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나폴레옹은 파리 사교계에서도 손꼽히는 미녀인 그녀에게 푹 빠져 열렬히 구애하던 것에 비해, 상류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그녀는 볼품없는 외모의 군인 나폴레옹에게 크게 애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폴레옹과 결혼하게 된 이유는 그녀의 애인이자, 당대의 권력자였던 바라스가 나폴레옹의 장래가 유망하다며 설득했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군인으로 여자를 자주 못 접하고, 상대하는 데 서툴렀던 나폴레옹은 그녀를 보자마자 그녀의 매력에 홀딱 빠져 첫눈에 반해버렸다.

사실 당시 파리 사교계를 휘어잡던 여인 3 총사는 조세핀부인, 탈리엥부인, 레카미에(J. Recamier) 부인이다. 조세핀과 탈리엥은 보기에 따라 농염, 파격, 퇴폐, 뇌쇄적인 것으로 유명하다면 레카미에는 단순, 청초, 기품, 내숭, 신비 등으로 최고의 인기를 끌었다. 애당초 나폴레옹장군이 마음에 뒀던 여인은 레카미에였다. 조세핀은 정계의 거물인 바라스의 애첩(愛妾)인지라 꼬셔볼 꿈도 못 꿀 정도였다. 그러나 내숭쟁이 레카미에가 나폴레옹의 부킹 요청에 계속 튕기기만 하자, 열불이 난 나폴레옹이 포병 장교답게 대포로 싸롱을 갈겨버린다고 하자 레카미에는 그 길로 파리를 떠나 도망가서는 프러시아 왕자, 프랑스 작가 등과 따따블 데이트를 즐기면서 살았다고 한다.

조세핀도 처음엔 나폴레옹장군 보기를 소가 닭 보듯 했다. 못난 놈 나폴레옹이 죽자 사자 그녀를 따라다니며 결혼하자고 칭얼대자, 그녀는 정부 바라스에게 SOS를 쳤다. 그런데 바라스 이놈도 조세핀에게 슬슬 싫증을 내던 차라 이거 잘 됐다 싶어 나폴레옹과 결혼하라고 적극 권유한다. “키는 작지만 물건은 길지도 모르잖아? 포병 출신이니 대포를 가졌을 거야” “잘하면 그놈이 프랑스 최고 권력자로 올라 설 수도 있어, 원래 군부 쿠데타로 왕이 되는 경우는 역사상 가장 많은 법이잖아.” “더구나 나이도 연하(年下)이니 힘도 좋겠다, 늘그막까지 밤을 즐겁게 해주지 않을까?” 이렇게 감언이설로 그녀를 꼬였다. 이리하여 1796년 6년 차이의 둘은 결혼을 하지만 조세핀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사실 그 당시 나폴레옹은 형 조제프의 처제인 데지레 클라리(Desiree Clary)와 약혼한 상황이었다. 그녀와 파혼하고 조세핀과 결혼한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분위기 죽이는 첫날밤을 상상하면서 나폴레옹이 침실에 들어가 보니 침대 위에 조세핀의 애견 포춘이 떡 버티고 앉아 있는 거 아닌가. 그 똥개를 치우라고 말하자 조세핀은 눈을 내리 깔면서 말한다. "저는 포춘이 좋으니 얘와 함께 자든지, 싫으면 다른 방에 가서 발 닦고 주무세요." 기가 막혔지만 별 수 없이 애완견과 같은 침대를 쓰던 나폴레옹은 한참 섹스에 몰두하다가 갑자기 허리를 활처럼 휨과 동시에 격한 비명을 내 질렀단다. 조세핀의 방중술 솜씨가 너무 화끈 짜릿해서 그랬냐고? 그게 아니라 기술도 없이 힘으로만 밀어붙이던 나폴레옹이 요동치다가 애견을 건드려 다리를 물렸다고 기록돼 있다. 이 애견은 조세핀이 가장 좋아하던 개로서 들창코에 쭈글쭈글한 얼굴을 가진 퍼그(Pug)라는 종류의 개다. 조세핀은 레 카르메스 감옥에서 생활할 때 가족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때 이 개를 활용했기에 포춘을 아주 아꼈다. 신혼 첫날 거사(巨事)에서 여자가 흘려야 할 피를 대신해서 나폴레옹이 심하게 흘렸으니 트라우마가 생긴 모양이었다. 훗날 나폴레옹이 마누라가 없는 사이 요리사의 개를 끌어들여 포춘을 물어 죽였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이때부터 조세핀을 부를 때 “좃에피나, 좃에피나!!!”라고 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유비통신 보도이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마리 조세프였는데, 결혼 전에 파리 사교계를 들었다가 놓았다가 할 정도라서 나폴레옹이 체면상 그런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걸려서 이름을 조세핀으로 개명시켜서 결혼한 것이다.

첫날밤 거사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 이렇다. 나폴레옹은 오랜만에 어머니 품에 들어간 듯 포근하고 평화롭다. 여자도 사교계에서 뭇 사내들을 겪었지만 모두 먹고살기 위해 직업적으로 대했고, 침대 위에서는 거짓 절정(絶頂)을 연기하곤 했지 이렇게 풋풋하고 힘 좋고 욱일승천하는 젊은 수컷은 오랜만인 것이다. “제 몸이 어떠세요?” 말은 어른 대접을 해주는 듯한 어투이나 연하의 남자를 다루는 티가 물씬 풍긴다. 그녀는 날씬한 체형에 햇빛이 비치면 묘하게 푸른색을 띠는 것은 검은 머리다. 오뚝한 코와 초승달을 맞대 놓은 것 같이 신비하기까지 한 입에선 언제고 섹시한 음성으로 사내를 녹여 잠들게 하였다. 나폴레옹은 조세핀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되어 동산에 올라다. 조세핀은 몸을 활짝 열며 “이제 제 에덴동산은 당신 것이에요. 그곳엔 수밀도 향의 산봉우리가 두 개가 있으며 산봉우리 밑엔 매끄럽고 아름다운 들판이 펼쳐 저 있지요. 들판이 끝나는 곳엔 당신이 언제고 마음껏 놀고 잠을 잘 수 있는 넉넉한 숲도 있습니다. 그 숲 사이에 당신을 위한 달콤한 꿀이 흘러나오는 동굴이 기다리고 있어요.” 벗어 놓은 연미색 드레스가 촛불에 비쳐 더욱 신비롭게 보인다. 나폴레옹은 활짝 열린 에덴동산에서 무엇을 먼저 탐해야 할지 판단을 못하고 주저주저하고 있다. 이때 조세핀이 능숙하게 “이탈리아를 공격하듯이 이곳을 공격하고, 여기를 깊숙이 점령하세요.”라며 지도에도 나오지 않은 비밀의 길로 오르가슴 포인트를 가르쳐 준다. 그러나 젊은 사내는 노련한 미망인의 아름다운 쾌락을 기대와 달리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겨우 점령 깃발만 꽂고 낙마(落馬)를 하고 만다. 조세핀은 절정감을 못 느낀 아쉬운 마음을 핀잔으로 되돌려 주기가 곤란하자, 문학적 기지를 발휘하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들먹인다. “성질도 급하셔라! 성질이 그리 급하니 베르테르가 사랑하는 여자 롯데를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자살로 자기만족을 채웠지요.” 조세핀이 막 쾌락의 보트를 출발시켜 노를 저으려 하는데, 나폴레옹은 그것도 모르고 어느새 자기 욕심만 채우고 번데기를 앞세워 내려왔다. 조세핀은 자신을 롯데에 나폴레옹은 베르테르에 대입(代入) 시키며 아쉬움이 역력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평행선으로 진행되었다.

그들이 극적인 결혼식 올린 뒤 삼일 만에 나폴레옹은 마치 신병이 논산훈련소에 입소하는 심정으로 이탈리아로 출정 길에 오른다. 신혼 부인인 조세핀은 행주치마를 입에 물고 거짓 눈물을 흘리다가 멀어지는 나폴레옹의 말 탄 모습을 뒤로하고 문설주를 잡고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조세핀으로서는 오히려 나폴레옹이 전장에 나가 있는 것을 내심 즐기고 있다. 파리엔 나폴레옹 같은 사내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조세핀 같은 뇌쇄적이고 매력적인 여인이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면 혈기왕성한 사내들은 굴비 몇 꾸러미라도 꿸 수 있다. 조세핀은 결혼 후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얼마간 조신하게 기품을 지켰다. 그러나 타고난 뜨거운 몸과 보헤미안 기질을 어찌 몽땅 버릴 수 있을까? 조세핀은 황후가 되고부터 행동에 제약을 받았지만, 자유분방한 그녀의 기질상(氣質上)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예법에 몸살을 앓기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비상한 머리로 짱구를 굴려 귀족부인들의 사교장인 ‘살롱 세느’에 정회원으로 등록하고, 은밀하게 한 달에 두세 번 나가서 사교계의 풍향을 귀동냥한다. 이곳에서 그녀는 이성과 감성, 정신과 육체의 향락을 동시에 찾는다. 살롱 세느에서는 황후가 아닌 멋진 연미색(軟米色) 드레스의 마담이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옅은 분홍색의 셔츠에 푸른 연미복(燕尾服)을 즐겼다고 해서 한때 유럽에서 남자들은 연미복이 큰 유행을 일으켰다. 조세핀도 문학가를 꿈꾼 적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베르테르의 연인인 롯데처럼 되기를 선호했다. 조세핀은 파리 패션계의 중심이었다. 황후로서 돈을 물 쓰듯 해 900벌이 넘는 드레스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해마다 거액을 들여 100벌의 드레스를 구입하였다. 장갑이 1,000켤레, 구두가 500켤레가 넘었다고 한다. 마치 지난 정권의 김모 부인이나 필리핀의 이멜다처럼 패션 사치에 빠진 것이다. 특히 그녀는 연미색 드레스를 좋아해 남편과 함께 있을 땐 꼭 연미색 옷을 입었다. 그녀는 살롱 세느에 갈 때에는 꼭 새 옷을 입고 나갔다. 그녀의 옷을 본 귀족부인들은 돌아가는 즉시 조세핀과 똑같거나 비슷한 옷을 맞추어 입어 유행의 물결을 일으켰다. 이로 인하여 파리가 High Fashion 즉 오뜨꾸튀르의 총 본산이 되었다나 뭐라나. 일단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으려면 쁘레따보르테 패션은 출입금지였다나 뭐래나.

아무튼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방면군 사령관으로 이탈리아 원정에서 오스트리아군을 쳐부수고, 그 결과 체결된 캄포 포르미오(Campo Formio) 조약으로 프랑스는 벨기에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그 기세를 몰아 그는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집트로 진격을 한 것이다. 신혼부부가 매일 침대에서 야간전투를 치열하게 벌여도 부족할 터인데 이역만리 떨어져서 가끔 보내오는 위문편지와 군사우편만으로 젊음을 불사르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뜨거운 몸과 활화산 같은 은밀한 분화구를 숨긴 조세핀은 매일 밤을 독수공방 하기가 죽기보다 싫었을 것이다. 살롱 세느에서 몸매를 뽐내며 뭇 사내들의 뜨겁고 탐욕스런 눈길을 즐기는 것도 진정한 활화산을 폭발시키는 침대 위의 거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조세핀의 눈에 윤기 좔좔 흐르는 흰색 천리마가 타깃으로 잡혔다. 이 친구는 23살의 기병(騎兵) 장교 이폴리트 샤를(Hippolyte Charles)다. 병과(兵科)가 기병이니 말을 얼마나 잘 타겠는가. 매일 밤 조세핀의 백옥 같은 엉덩이를 타고 앉아 천국과 구름 위를 넘나들며, 조세핀을 홍콩으로 보내느라 도끼 자루가 썩는 줄을 몰랐다. 이들의 뜨겁고 끈적끈적한 밀회가 장안의 화제가 되자, 때 마침 참여여성인권연대에서 “너희만 홍콩 가냐, 우리도 밤마다 홍콩 가고 싶다”라며 콩코르드 광장에서 연일 데모를 하자 난감해진 조세핀이 급기야 파리 근교 말메종(Malmaison)에 근사한 성을 거금 30만 5천 프랑을 주고 구입해서 주야장천 붙어 지낸다. 조세핀은 그 저택 정원에 여러 가지 종류의 달리아(Dahila)와 장미를 수집해 놓고 파티를 열어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살았다. 그리고 거기에 심은 품종은 절대로 남에게 주지 않았다. 그래서 파리에는 한 때 달리아 구근(球根) 개량과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곤 했다. 마치 네덜란드의 튤립 구근 버블처럼 말이다.

파티에 참석했던 귀족 브간빌 부인이 유난히 꽃이 크고 아름다운 달리아 한 송이를 갖고 싶어 했지만 조세핀은 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애인인 폴란드 귀족을 시켜 조세핀의 정원사를 매수했다. 그리고 금화를 잔뜩 주고 그 달리아 구근을 몰래 빼내어 그것을 심어 자기 정원에도 화려한 달리아 꽃을 피웠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조세핀은 분노해서 브간빌 부인과 폴란드 귀족의 지위와 재산을 빼앗고, 정원사를 해고했으며 더 이상 달리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당연히 달리아 구근 버블(Bubble)도 사그라들었다. 조세핀이 애지중지하며 길렀던 화초들 중에는 헤메로칼리스(Hemerocallis)라고 불리는 원추리 종류의 희귀한 화초도 있었다. 이는 백합과로 영어로 Daylily이다. 꽃 이름과 같이 꽃말이 단 하루의 아름다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글로는 원추리, 한문으로는 훤초(萱草) 또는 망우초(忘憂草)라고 불린다. 또 조제핀은 장미를 매우 좋아해서 나폴레옹과 이혼한 후 말메종 성에서 혼자 생활할 때 250 종류의 장미를 뜰에 심고 장미를 채집하러 돌아다녔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제비꽃을 무척 좋아하였는데 젊었을 때 '제비꽃 소대장'으로 불릴 만큼 제비꽃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여 동지를 확인하는 표식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조세핀도 나폴레옹을 따라 제비꽃을 무척 좋아했지만 나폴레옹과의 이혼 후 한 번도 제비꽃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수십만 대군을 지휘하면서 전장에서는 천하를 호령하는 명장이지만, 여자 면전이나 침대에서는 정말 얼뜨기인 나폴레옹은 신혼 재미도 못 보고 매일 전쟁 중이었다. 그래서 야전 막사에서 그녀가 생각나면 다섯 손가락을 이용한 손빨래나 하거나, 조세핀에게 쉴 새 없이 구애하는 군사우편을 보냈다. 그는 전쟁광이 아니라 진정한 편지광이었다. 그가 쓴 편지가 73,000통이 된다니 경악할 일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앤드류 로버츠가 현재까지 남아있는 그의 편지 33,000통을 분석해서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쓰기도 했다. 이렇게 편지질을 한데 비해 조세핀은 일언반구의 대꾸도 않고 크리스마스 위문품은 고사하고 의례적인 위문편지조차 보내지 않자 속에 더 안달이 난 건 나폴레옹이었다. “자기야 보고 싶어요, 면회 좀 와 줘요.” “단 하루도 그대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소.” “단 하룻밤도 그대를 내 팔에 끌어안지 않은 적이 없소.” “어떤 여인도 그대만큼 큰 헌신과 열정, 자상함으로 사랑하지 않았소. 공감과 사랑, 진정한 감정으로 묶인 우리를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오.” 이런 류(類)의 호소문에서 부타 “조심하시오 조세핀, 어느 아름다운 밤, 문이 부서져 열리면, 그곳에 내가 서 있을 테니.” 이런 협박성까지 보냈다. 가장 화끈하고 섹시한 편지는 이런 것도 있었단다. “당신의 이마에 천 번의 키스를 하고, 입술에도, 가슴에도, 아니 더 진하게 그 아래 은밀한 곳에도” 이 정도 되자 조세핀은 체면상 면회를 가기는 가는데, 나폴레옹의 부관(副官) 출신 애인과 같이 면회를 가서 호텔 옆방에 재우면서 밤낮으로 이 방 저 방으로 왔다 갔다 하며 재미를 이중으로 봤다는 거 아닌가. 화류계(花柳界)에서 닳고 닳은 조세핀에게 나폴레옹은 철부지 애송이에 불과하다. 그녀는 경험에서 나오는 갖은 교태와 무르익은 테크닉으로 그의 얼을 빼놓고 정액도 모두 쏟아 놓게 만든 거다. “이탈리아 여성들에 체취는 어땠어요? 이집트 여인들의 엉덩이는 단단해요?” 조세핀의 도발적인 질문에 전장(戰場)에서 몇 달을 참았던 욕정을 풀려고 젖과 꿀이 가득한 깊고 넓은 샘으로 돌진하려던 말머리가 갑자기 쪼그라든다. “당신은 전장에서 말을 잘도 타더니, 침대에선 영 신통하지 않네요. 그럼 제가 당신을 타고 애마부인이 될게요.” 사내는 처음엔 어색해하더니 여자 요구대로 편히 누우며 양다리를 벌린 조세핀의 나신을 자기의 몸 위에 올렸다. 여자는 남자의 두 다리 사이를 지그시 압박하며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남자의 여의봉에 강하게 밀착시킨다. 여자는 자연스럽게 남자 여의봉(如意棒) 위에 앉게 되어 여의봉의 돌기 부분이 자신의 흥건하게 젖은 동굴 입구에 비비적거리게 만들어 축 늘어졌던 사기를 다시 끌어올려 분기탱천하도록 유도했다. 이 자세야 말로 질을 더욱 강하게 자극할 수 있는 동시에 자신의 열망에 맞춰 피스톤 운동을 할 수도 있어서 최고의 기마자세다. “어때요? 말이 된 기분이 나쁘지는 않죠?” 그 후 그들은 가지가지의 승마놀이를 자주 즐겼단다.

나폴레옹은 유럽의 황제들이 전통적으로 올리던 대관식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황제들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대관식을 하고 교황이 황관을 씌워 주는 것이 관례이다. 그는 1804년 12 월 2일 교황을 파리로 오게 해서 노트르담 성당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대관식에서 교황 비오 7세가 씌워주려는 관을 두 손으로 받아 들고는 관중들에게 돌아서서 스스로 자신의 머리에 썼다. 그리고는 황후 조세핀의 머리 위에도 직접 황후의 관을 씌워주었다. 황후의 관을 다이애덤(Diadem) 또는 티아라(Tiara)라고 하는데 온갖 보석으로 장식하여 위엄과 아름다움의 상징했다. 역사적으로 고대 이집트 시절부터 사용했다. 다이애덤은 주로 원형을 말하고, 티아라는 반원의 머리띠 형태를 띠는 것이 많다. 조세핀이 티아라를 즐겨 사용한 후 이것이 일반에도 크게 유행해서 결혼식이나 중요한 의식에 여성들이 헤어 액세서리로 많이 사용하였다. 오늘날 미스코리아 뽑을 때 직전 연도 미스진이 새로운 입상자에게 씌워주기도 한다. 조세핀의 질투에 대한 일화 한 토막을 보자. 어느 날 나폴레옹이 열기로 되어있는 호화로운 파티에는 이웃나라의 젊고도 아름다운 공주가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세핀은 은밀히 그 공주가 파티에 입고 올 의상의 색깔과 모양 등을 파악했다. 행사 당일 밤에 그 공주는 아름다운 초록 드레스를 입고 무도장에 나타났다. 이미 조세핀은 파티장의 커튼과 양탄자, 심지어는 의자까지도 초록색으로 바꿔버린 후였다. 흰 드레스와 황금빛으로 치장한 조세핀은 그날의 화려하고 우아한 주인공으로 한결 돋보였고, 초록색 드레스의 공주는 푸른 주위 환경에 묻혀 버려 빛을 잃고 말았다고 한다. 

조세핀의 은밀한 부위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에 관한 일화도 있다. 동양여인들의 그곳 냄새는 오징어 냄새 비슷하다는 카사노바들의 증언이 있긴 한데, 조세핀의 그곳 냄새는 카망베르 치즈 냄새와 같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황제가 된 직후 어느 날 연회를 벌였는데 주인공인 황제가 보이지 않자, 사람들이 찾아보니 그는 소파에서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종들이 황제를 그냥 깨우면 무례하니 나폴레옹이 좋아하는 치즈를 가져와서 코에다가 대고 맡게 하면 일어나리라고 의견 합의를 보았다. 그래서 그 치즈를 가져와 코에 들이대니까 나폴레옹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Josephine, Pas Ce Soir(Not tonight) : 조세핀, 오늘 밤은 안 되겠어”였단다. 토막잠을 즐기던 나폴레옹은 잠결에 그 치즈 냄새를 조세핀의 은밀한 그곳 냄새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이 일화로 인한 것인지는 몰라도, 프랑스의 유명한 조향사(調香士)인 다비드 베네덱(David Benedek)은 상표를 <Pas Ce Soir>로 붙인 향수를 출시했다. 유럽인들의 독특한 냄새의 치즈를 즐기면서 여자의 독특한 체취를 선호했는가 보다. 나폴레옹은 전쟁 나갔다 돌아오며 조세핀에게 “씻지 말고 기다리시오, 곧 그대에게 가리다.” 이런 편지를 곧잘 보냈다니 축농증에 걸렸는지 아니면 코로나19(Covid 19)에 걸려서 후각이 마비되었는지 알 수 없다. 산부인과 의사들 의견으로는 그런 냄새는 부인병 중의 하나인 냉증(冷症) 때문에 생긴다고 했다. 여성 청결제라도 사줄 것이지. 하지만 나폴레옹이 그녀에게 바친 지극한 정성도 아주 유명했다. 나폴레옹은 조세핀을 위해 더운 여름날이면 꼭 아이스크림을 바쳤다고 한다. 새벽마다 10 여 마리의 말이 끄는 커다란 마차를 알프스로 보내 산꼭대기의 눈을 가득 싣고, 파리까지 급히 달려오도록 명령을 했다. 마치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에게 주려고 열대과일 리치를 공수(空輸)한 걸 벤치마킹했나 보다. 솜으로 감싸서 배송을 해도 많은 부분이 녹아내리고 팥빙수 몇 그릇 만들 양만 건졌을 것이다. 여기에 과실즙과 꿀을 넣어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바치는 애틋한 정열을 쏟았다고 한다. 로마의 네로 황제도 알프스 만년설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즐겼다는 전설이 있다. 

나폴레옹은 전장을 돌아다니면서도 매일 연애편지를 군사우편으로 보내며 조세핀을 감시했지만 원래 몸이 뜨거운 여자인 그녀는 아무도 못 말렸다. 이집트에 있을 때부터 조세핀이 애인과 놀아난다는 정보를 접한 나폴레옹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고 당장이라고 달려가 두 연놈을 작살내고 싶지만 영토 확장이 더 우선이었다. 그래서 후일 황제가 되자 조세핀에게 복수라도 하듯 숱한 염문을 뿌리다가 결혼 13년 만인 1809년 이혼을 하게 된다. 표면적인 이유는 조세핀이 자식을 못 낳는다는 거였다. 조세핀은 시집 쪽의 시어머니와 고부(姑婦) 갈등도 꽤나 심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관계였다. 이혼 후 그가 원한 여성은 알렉산드르 1세의 여동생인 안나 파블로브나 여대공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뒤 나폴레옹이 1810년에 재혼한 여자는 18세의 야리야리한 미녀 마리 루이스(Marie Louise)이다.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2세의 딸이다. 이 여자는 나폴레옹을 처음 알현했을 때 “어머나, 폐하는 초상화에 그려져 있는 모습과 너무너무 달라요.”라고 말했을 만큼 거리낌 없는 귀여운 행동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루이스는 이듬해 아들을 순산해 나폴레옹에게 적자(嫡子)를 갖는 기쁨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운명은 재혼한 뒤 급격히 쇠퇴해 러시아군에게 침략했다가 대패하여 처량하게도 엘바섬에 유배되고 만다. 이때 나폴레옹은 루이스에게 엘바섬에 같이 가 살자고 했다. 바닷가에 모래성 쌓고 해변을 거닐면서 “해변의 여인”, “해변으로 가요”를 부르자고 꼬였다. 그녀도 원래 나폴레옹을 좋아했기 때문인지 따라가고 싶었지만 주변 측근들의 만류로 합류하지 않고 친정으로 가버린다. 그곳에서 루이스는 젊은 날의 감성과 육체의 불장난을 잠재울 수 없어서 황후의 체면도 훌러덩 벗어던지고 말았다. 그녀는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길을 나서서 온천탕으로 갔는데, 거기에서 그녀를 시중들게 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페르크 백작이었다. 나이페르크 백작은 아주 잘 생기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는데, 나폴레옹과 전쟁 중에 한쪽 눈을 잃어버린 애꾸눈이었다. 마누라는 1815년에 사별하고 돌싱이라서 루이스를 홀리기에 아주 최적이었다. 그들은 한순간에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러고도 테너가수 등과 바람을 피워서, 그가 낳은 아들조차도 어머니를 나폴레옹의 부인으로 조금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를 받은 여자이다. 

나폴레옹은 첫 임지인 발랑스에서 ‘어머니 같은 존재’인 콜롬비에(Cloline Colombier) 부인을 만났다. 콜롬비에 부인은 나폴레옹에게 집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도록 했고, 자신의 딸인 카롤린 두 콜롬비에(Cloline Du Colombier)와 가까워지도록 허락했다. 그때가 첫사랑이었다. 두 번째가 형의 처제인 데지레 클라리인데 약혼까지 했다가 파혼하고 조세핀과 결혼한 거다.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조세핀의 바람기에 대한 소문을 듣고 열받아서 맞바람을 핀 상대가 바로 자신의 "클레오파트라"라고 불렀던 폴린 푸레(Pauline Fourès)이다. 그녀는 1778년 시계 장인(匠人)인 앙리 자크 클레망 블릴의 딸로서 하급 장교인 장 노엘 푸레와 결혼했다. 남편이 이집트로 원정을 가자 신혼이었던 그녀가 같이 따라나선 것이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군인들 취향과 달리 이집트 여인을 좋아하지 않아서 단 한 명의 프랑스 여자인 폴린 푸레와 사귀게 된 것이다. 나폴레옹은 폴린에게 협박과 회유(回諭) 그리고 많은 선물을 보내서 그녀를 구슬려도 쉽지 않자 나폴레옹은 최후의 수단으로 폴린의 남편을 멀리 떼어놓기로 결정한다. 장 노엘 푸레를 파리로 보내는 사자(使者)로 선택해서 그를 파리로 보내버리고, 그 틈을 타서 폴린과 다른 여성들을 초대해서 점심을 대접하면서 그들은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남편 장 노엘 푸레가 둘 사이를 알고 그녀를 구타하자 이혼을 하고 나폴레옹의 현지처 노릇을 톡톡히 했다. 그러다가 나폴레옹이 귀국하자 현지에 남아서 다음 사령관과 연인이 된다. 또 다른 여인은 폴란드 출신의 발레프스카 백작부인 마리아 왈친스카이다. 이 여자는 폴란드의 귀족가문 출신으로 어릴 때 쇼팽의 아버지에게 음악 가정교육을 받았을 정도다. 그녀는 바르샤바의 무도회에서 나폴레옹과 만나 그의 끈질긴 구애 끝에 연인으로 발전하고 그의 아이까지 낳았다. 그녀는 이러한 행위가 폴란드의 독립을 위한 것이라고 강변(强辯)했다. 나폴레옹의 또 다른 연인은 이탈리아 원정 때 알게 된 밀라노 출신의 가수 주세피나 그라시니(Josephina Grassini)였다. 나폴레옹은 원정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 그녀를 파리로 데려와 만나면서 무대에 올려 성공시키기도 했으나 두 사람의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쉽게 헤어졌다. 여덟 번째 여인은 배우 출신 조르쥬 위메(George Weymer) 일명 조르지나였다.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에서도 조르지나에 대해서 "아름다운 조르지나" 내지 "친절하고 상냥했던 조르지나"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아홉 번째 연인은 나폴레옹 여동생의 시녀였던 엘레오노르 드누넬(Éléonore Denuelle)이다. 여동생의 주선으로 연인이 되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의 남편이 투옥되었을 때 그녀가 아이를 낳았는데 그게 나폴레옹의 아이였다. 아이도 엄마도 나폴레옹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열 번째 여인은 알빈 드 몽토롱(Albine de Montholon)이고, 그녀는 헬레나섬으로 같이 간 측근인 몽토롱 백작 샤를 트리스탄의 부인이었다. 나폴레옹이 죽기 직적 헬레나 섬에서도 두 명의 여성이 경쟁관계에 있었는데, 한 명은 몽토롱의 부인인 알빈이었고, 또 다른 사람은 베르트랑 장군의 부인인 프랜시스 딜런이었다. 나폴레옹은 말년에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6년간의 유배 생활을 보내다가 위암으로 인해서 1821년 5월 5일 오후 5시 49분에 향년 51세를 일기로 눈을 감게 된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France, armée, tête d'armée, Joséphine.(프랑스, 군대(육군), 선봉, 조제핀)”이라고 한다. 못 남기는 사람도 있지만 유명한 사람들의 마지막 말을 보자. 베토벤은 3번 교향곡을 나폴레옹을 위해 작곡했는데, 마지막은  “희극은 끝났다”라고 말했고, 괴테는 “빛을...”이라고 했으며, 마르크스는 하인에게 “시끄러워, 나가!”라고 했단다. 부하의 총탄을 박통은 심수봉에게 “난 괜찮아.”라고 말했단다. 그런데 조세핀이 죽으면서 한 말도 “아, 나폴레옹”이었다니 서로 사랑을 하긴 한 모양이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무지하게 든 모양이다.

나폴레옹의 여자를 살폈지만, 이혼한 후의 조세핀의 남성편력은 어떠했을까? 돌아온 씽글 즉 돌싱의 자유인이 된 조세핀은 자연스럽게 과거의 미망인 시절에 정부(情夫)로서 가끔 살을 섞었던 바라스가 그리웠다. “아직도 황후 티를 못 벗었네.” 바라스가 조세핀의 뻣뻣한 나신을 훑어내려가며 투정을 부린다. 동갑내기이기도 하고 미망인 시절엔 예술에 대한 가이드 역할까지 해 금방 가까워진 기분에 일부러 탱탱한 몸을 보이려던 행동이 그만 그에게 오만으로 보였던 것이다. “아니야 나는 주인 없는 이혼녀야. 황제 나폴레옹의 그늘에서 꼭두각시처럼 움직였던 조세핀이 아니고 이젠 자유인 조세핀이야.” 그녀는 활짝 열린 몸을 고슴도치 모양 움츠렸다 다시 공작 날개 같이 화려하게 펴며 사내를 품는다. 유부남과 이혼녀의 농익은 육체의 결합이다. “당신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었소.” 사내는 능숙한 테크닉으로 여자를 쾌락의 절정으로 유도한다. “나도 마찬가지야. 황궁은 감옥이야. 인간이 살 곳은 못 되고 궁정인들이나 살 곳이야.” 조세핀은 오랜만에 호흡이 맞는 사내와 욕정을 풀어 술에 취한 여인처럼 노곤하여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해 바라스가 입혀 주었다. 옷을 입히던 바라스가 촛불에 비친 탱탱한 한 쌍의 유방(乳房)을 보자 갑자기 욕정이 다시 솟는지 “역시 당신 유방이 최고야.”라며 피가 몰리도록 뜨겁게 키스를 하고는 다시 한 몸을 만든다. 여인도 기다렸다는 듯이 적극적이다. 한 때는 황후였던 그녀의 신분은 이혼녀 조세핀으로 전락하자 또다시 파리 뭇 사내들의 사냥감이 되었다. 정치 일선에서 벗어나 이젠 작가 된 바라스도 옛 연인을 위장(僞裝)해 이따금 살을 섞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녀가 가진 엄청난 재산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름이 작가지 밥벌이조차 제대로 못하는 삼류 소설가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총각과 미망인의 연인으로 시작해서, 헤어졌다가 다시 유부남과 이혼녀로 극적인 해후(邂逅)를 하여 다시 연인으로 만나는 것이다. “황제의 그것은 맛이 어땠어?” 바라스 손이 조세핀의 깊숙한 거웃에 아직도 사랑의 배합물이 끈적끈적하게 묻어 있는 그곳을 살살 주무르며 사내가 말을 건넸다. “이제 그만 주무세요.”라고 말을 하고는 조세핀은 정말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동굴로 들어오려던 바라스의 여의봉을 움켜쥐고 코를 골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내는 물러설 기세가 아니다. “오늘같이 좋은 날에 잠이 오냐? 어젯밤엔 대체 어느 놈에게 에덴동산을 내어 주었기에 그토록 피곤하냐? 나는 한 번 더 하고 싶은데 벌써 지쳤으면 어떡해.” 조세핀의 손에 들어간 여의봉은 더욱 기세가 올라 여인도 더는 그냥 둘 수 없다는 듯이 갈 길을 찾아 준다.

일 차전은 그저 탐색하는 서전(緖戰)이다. 바라스의 손바닥이 비너스 언덕을 원을 그리듯 문지르며 클리토리스를 살짝살짝 자극시킨다. 혀로도 클리토리스를 자극시키며 굴리듯이 돌리다가 입술로 가볍게 빨고, 두 손으로 두 유방을 압박하며 거대해진 여의봉을 서서히 그러나 힘 있게 넣지 않고 동굴 입구에서 좌우로 문을 두드리듯이 툭툭 몇 번이고 치다 귀두(龜頭) 부분으로 대음순(大陰脣)을 누르자 소음순(小陰脣)이 열리면서 질 깊숙이 들어간다. 조세핀도 동시에 엉덩이를 높이며 소리를 지르고 사내 등에다 손톱을 꼽는다. 그녀는 소위 멀티오르가슴을 즐기고 있다. 세포 하나하나가 민감해져 손끝만 스쳐도 성감대로 진화되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황홀감의 절정이 계속적으로 유지되고 증폭되기까지 한다. 조세핀은 나폴레옹과 사랑을 할 때나 철없던 초혼시절에도 지금 같이 격정적인 멀티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육체의 쾌락과 이성의 향락(享樂)을 지금은 동시에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두 남녀의 몸은 안개비를 맞은 듯이 촉촉하게 땀과 사랑의 분비물로 범벅이 되었다. 조세핀의 비너스 언덕은 바라스가 수 백 번 문질러 대서 벌겋게 피부가 충혈되기까지 하였다. “이런 기분 처음이야!!!” 여인은 아침 햇살에 갓 피어난 박꽃처럼 환히 웃으며 사내 여의봉에 살짝 키스를 하며, 아직도 오르가슴의 여운이 남았는지 사내 품에 헝클어진 머리를 묻는다.

“자 이제 빨리 준비하고 센 강 리베 페스티벌에 갑시다. 퐁네프다리를 중심으로 남북의 연인 한 쌍을 선발해 서로 남녀를 스와핑)해 하룻밤을 즐기는 축제라는데 흥미 있어.” 둘은 서둘러 퐁네프다리로 갔다. 꽃다운 연인들의 물결이 세느 강가를 수놓았다. 형형색색의 옷차림에 가양각색 빛깔의 피부를 가진 연인들이 저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있다. 어젯밤 잘 맞춘 호흡 덕분인지 조세핀 팀이 퐁네프다리 북쪽 대표로 뽑혔다. 구경하러 참가했다가 로또에 당첨된 것이다. 호흡이 잘 맞는 연인으로 뽑혀 그들은 호텔 리베에서 스와핑을 즐기는 행운을 얻었다. 바라스 보다 조세핀이 더 황홀해한다. 호텔 전용 극장무대에서 가장(假裝) 무도회에 두 커플이 등장하여 스와핑으로 그룹 사랑을 한 후 제 위치로 돌아가는 시나리오란다. “젊은 놈이 맛이 어땠어?” 조세핀을 만나자마자 바라스의 첫마디다. “당신만 한 사내가 이 파리에 어디 있겠어요. 힘으로만 밀어붙이지 기술은 애송이였어. 식당에 가서 뭣좀 먹어야겠어요.” “그렇게 합시다.”그들은 센 강과 루브르궁이 동시에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센 강가엔 밤늦게까지 연인들의 물결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뭘 드실 겁니까?” 10여 분이 넘도록 센 강가를 내려다보고 있는 조세핀 커플에게 종업원이 다가와 주문을 청한다. “네, 크루아상 빵과 샹파뉴 포도주에 카망베르 치즈를 각각 2인분 주세요.” 그들은 아침부터 육체의 쾌락을 위해 점심도 걸렀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해 시장기가 용솟음친다. “크루아상 빵 맛이 아주 좋네요.” 조세핀이 빵에 치즈를 발라 바라스에게 건넨다. “오늘은 육체의 허기를 만족할 만큼 채웠어요. 이제까지 육체의 쾌락만 추구했을 뿐 이성의 향락은 감히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오늘은 전자와 후자를 동시에 충족시켜 성애(性愛) 최고의 날 같네요.” 우울하고 퇴폐적 분위기가 그녀의 본색인데 저녁까지 포식을 해서인지 램프 불에 비친 그녀의 얼굴엔 발랄한 생기가 넘친다. 이건 이혼 후의 돌싱 때 얘기고, 혼인 중에 바람을 피웠으니 얼마나 짜릿하고 금단의 열매가 달디달았을까? 이폴리트 샤를과 연애 소식이 나폴레옹에게 들어가자, 그는 조세핀을 감시하기 위해 부관 쥐노와 기병대장 뮈라를 보낸다. 쥐라는 감시병 역할은 어물쩡하는데 비해 뮈라는 조세핀에게 눈이 맞아 찰떡궁합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살다가 그녀는 1814년 5월 29일 50세의 나이로 폐렴에 걸려 앓아누웠는데,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사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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