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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怨情(원정) / 원망스러운 마음

금삿갓의 漢詩工夫(250928)

by 금삿갓

怨情(원정) / 원망스러운 마음

- 李白(이백)


美人捲珠簾

미인권주렴

●○○○◎

미인이 구슬발을 걷고


深坐嚬蛾眉

심좌빈아미

○●○○◎

깊숙이 앉아 고운 눈썹 찡그리네.


但見淚痕濕

단견루흔습

●●●○●

다만 촉촉한 눈물 자국만 보이니


不知心恨誰

부지심한수

●○○●◎

누구에게 마음의 한인지 모르겠구나.

此(차)는 悲怨之詞也(비원지사야)라. 美人(미인)이 不勝滿腹之怨情(불승만복지원정)하야. 捲其珠簾(권기주렴)하고, 深坐于樓中(심좌우루중)하야. 嚬蹙其兩箇蛾眉(빈축기량개아미)하더니, 却又悲之極而玉淚濕於兩紅頰(각우비지극이옥루습어양홍협)하야. 痕跡(흔적)이 不乾(불건)하니, 不知(부지)케라. 恨其誰何而然耶(한기수하이연야)아.

이는 슬프고 원망하는 말이다. 미인이 가슴에 가득한 원망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 구슬발을 걷고, 누각 속에 깊이 앉아, 두 고운 눈썹을 찡그리더니, 다시 또 슬픔이 지극하여 양쪽 붉은 볼에 옥 같은 눈물을 적셔 흔적이 마르지 않으니 알 수 없구나. 한이 그 누구와 어떻게 그러한지?

* 이백(李白, 701~762) : 중국 성당기(盛唐期)의 시인으로서 자는 태백(太白)이며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다. 이백은 중국의 수많은 시인 가운데 두보와 더불어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되며, 오늘날 이두(李杜)라 병칭 하며 두보를 시성(詩聖), 이백을 시선(詩仙)이라 부른다. 출생지와 혈통에 관해서는 정설이 없고 관련 기록을 참고하여 유추해 보면 수나라 말에 그의 먼 조상이 서역(西域)으로 유배되어 갔다가 당나라 신룡(神龍) 원년(705)에 그의 부친 이객(李客)이 몰래 가족들을 데리고 촉(蜀)이라는 지방의 사천성(四川省) 면주(綿州) 창명현(彰明縣) 청련향(靑蓮鄕)에 들어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백은 서역에서 태어나 5세 때 서역에서 무역상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들어와 25세까지 20년 동안을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청련거사라는 그의 자작호도 자신의 고향이라 여긴 청련향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호방한 성품의 이백은 학문에도 자질이 있어 부친으로부터 가학(家學) 교육받고, 일찍이 어려서부터 학문을 연마하여 다방면의 지식과 사상을 습득하였다. 이백은 지방 관리에게 자신을 천거하는 편지글에서 5세 때 60 갑자를 외웠고, 10세 때 유가를 비롯한 제자백가의 사상을 섭렵하여 황제 헌원 이후의 일을 알고 있었다. 15세 때 기서(奇書)를 읽고 부(賦)를 지어 사마상여(司馬相如, 기원전 179~기원전 117)를 능가하였으며, 검술을 좋아하고 두루 지방 관리들을 배알 하였다고 술회하였다. 송나라 축목(祝穆)이 편찬한 『방여승람(方輿勝覽)』의 기록에 의하면 이백이 미주(眉洲)의 상이산(象耳山)에서 독서할 때 공부에 싫증을 내고 하산하다가 한 노인이 시냇물 옆 숫돌에 절구를 놓아두었는데, 이백이 노인에게 왜 그것을 갈고 있느냐고 물으니 노인이 바늘을 만들려고 한다고 답했다. 이에 이백이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이후 학문에 계속 정진하기로 마음먹고 산으로 다시 돌아가 독서를 계속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마저성침(磨杵針)의 고사가 인구에 회자되었다. 이백은 10대 후반에 민산(岷山)의 남쪽에서 동엄자(東嚴子)라는 은자를 스승으로 도술을 배우며 세속에서 누릴 수 없는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 동강(潼江), 지금의 재주(梓州) 부근의 산에서 은거하고 있는 은사 조유(趙蕤)를 방문하기도 하였는데, 그의 정치사상이 이백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백이 흠모하였던 역사상 인물들은 관중(管仲), 안영(晏嬰), 악의(樂毅), 장량(張良), 제갈량(諸葛亮), 소진(蘇秦), 노중련(魯仲連) 등이 있다. 특히 계책에 능하고 공을 세우고도 상을 받지 않고 절개를 지킨 노중련에 대한 이백의 존경과 추종은 지대하여 여러 편의 시에서 찬양하고 있다. 노중련에 대한 이백의 각별한 존경과 숭상하는 마음은 「고풍(古風)」 제10수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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