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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秋浦歌(추포가) / 가을 포구의 노래

금삿갓의 漢詩工夫(250928)

by 금삿갓

秋浦歌(추포가) / 가을 포구의 노래

- 李白(이백)


白髮三千丈

백발삼천장

●●○○●

백발이 삼천 길이니


緣愁似箇長

연수사개장

○○●●◎

시름 때문에 이같이 길어졌나.


不知明鏡裏

부지명경리

●○○●●

밝은 거울 속도 모르겠구나.


何處得秋霜

하처득추상

○●●○◎

어디서 가을 서리를 맞았는지?

太白(태백)이 寓池陽(우지양)하야. 有感而作也(유감이작야)라. 言吾髮(언오발)이 因愁而白(인수이백)하니, 若以莖(약이경)으로 計之(계지)하면 應有三千餘丈而離人之愁思又比白髮猶長也而吾初時覽鏡(응유삼천여장이리인지수사우비백발유장야이오초시람경)에 髮未白也(발미백야)러니, 不知(부지)케라.

이태백이 지양(池陽) 땅에서 의탁하고 있을때 느끼는 바가 있어 지은 것이다. 말하기를 내 머리칼이 시름 때문에 하얗게 되었으니, 만약 줄기로 이것을 헤아리면 응당 삼천여 길은 되리니, 이별하는 사람의 근심이 또한 백발이 자라는 것에 비유하여 내가 거울을 처음 봤을 때에 머리칼은 아직 희지 않았었는데, 알 수 없다.

日照日生(일조일생)하고 日白日多(일백일다)하야. 如秋霜肅而草木黃落也(여추상숙이초목황락야)라. 然而明鏡之中(연이명경지중)에 安得有秋霜哉(안득유추상재)아. 亦愁之所使也(역수이소사야)라.

해가 비치니 날로 생기고, 날로 희어지고 날로 많아져서, 마치 가을 서리 같이 엄숙하여 초목이 누렇게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러므로 밝은 거울 속에 어찌 가을 서리를 얻었는가. 역시 시름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 秋浦(추포) : 만년에 귀양에서 풀려난 이백이 안휘성 귀지현 서남쪽에서 머물던 곳으로 청계하(淸溪河) 북변에 있는 지명이다.

* 池陽(지양) : 이백이 말년에 먼 친척인 이양(李陽)에게 의탁하여 삶을 마감한 곳의 지명으로 현재 안휘성 지주시(池主市) 귀지구(貴池區)에 있는 지명이다. 이백은 이곳에서 추포가를 연작으로 17수(首)를 지었고, 이는 15번째이다.

* 이백(李白, 701~762) : 중국 성당기(盛唐期)의 시인으로서 자는 태백(太白)이며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다. 이백은 중국의 수많은 시인 가운데 두보와 더불어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되며, 오늘날 이두(李杜)라 병칭 하며 두보를 시성(詩聖), 이백을 시선(詩仙)이라 부른다. 출생지와 혈통에 관해서는 정설이 없고 관련 기록을 참고하여 유추해 보면 수나라 말에 그의 먼 조상이 서역(西域)으로 유배되어 갔다가 당나라 신룡(神龍) 원년(705)에 그의 부친 이객(李客)이 몰래 가족들을 데리고 촉(蜀)이라는 지방의 사천성(四川省) 면주(綿州) 창명현(彰明縣) 청련향(靑蓮鄕)에 들어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백은 서역에서 태어나 5세 때 서역에서 무역상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들어와 25세까지 20년 동안을 이곳에서 생활하였다. 청련거사라는 그의 자작호도 자신의 고향이라 여긴 청련향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호방한 성품의 이백은 학문에도 자질이 있어 부친으로부터 가학(家學) 교육받고, 일찍이 어려서부터 학문을 연마하여 다방면의 지식과 사상을 습득하였다. 이백은 지방 관리에게 자신을 천거하는 편지글에서 5세 때 60 갑자를 외웠고, 10세 때 유가를 비롯한 제자백가의 사상을 섭렵하여 황제 헌원 이후의 일을 알고 있었다. 15세 때 기서(奇書)를 읽고 부(賦)를 지어 사마상여(司馬相如, 기원전 179~기원전 117)를 능가하였으며, 검술을 좋아하고 두루 지방 관리들을 배알 하였다고 술회하였다. 송나라 축목(祝穆)이 편찬한 『방여승람(方輿勝覽)』의 기록에 의하면 이백이 미주(眉洲)의 상이산(象耳山)에서 독서할 때 공부에 싫증을 내고 하산하다가 한 노인이 시냇물 옆 숫돌에 절구를 놓아두었는데, 이백이 노인에게 왜 그것을 갈고 있느냐고 물으니 노인이 바늘을 만들려고 한다고 답했다. 이에 이백이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이후 학문에 계속 정진하기로 마음먹고 산으로 다시 돌아가 독서를 계속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마저성침(磨杵針)의 고사가 인구에 회자되었다. 이백은 10대 후반에 민산(岷山)의 남쪽에서 동엄자(東嚴子)라는 은자를 스승으로 도술을 배우며 세속에서 누릴 수 없는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 동강(潼江), 지금의 재주(梓州) 부근의 산에서 은거하고 있는 은사 조유(趙蕤)를 방문하기도 하였는데, 그의 정치사상이 이백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백이 흠모하였던 역사상 인물들은 관중(管仲), 안영(晏嬰), 악의(樂毅), 장량(張良), 제갈량(諸葛亮), 소진(蘇秦), 노중련(魯仲連) 등이 있다. 특히 계책에 능하고 공을 세우고도 상을 받지 않고 절개를 지킨 노중련에 대한 이백의 존경과 추종은 지대하여 여러 편의 시에서 찬양하고 있다. 노중련에 대한 이백의 각별한 존경과 숭상하는 마음은 「고풍(古風)」 제10수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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