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1) 담담한 성생활 고백서 - 카트린 밀레

★금삿갓의 은밀한 여성사★(030130)

by 금삿갓

우리가 생각하는 파리의 성 문화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섹스는 음식이나 정치 또는 날씨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로 주고받을 수 있는 주제일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프랑스인들의 자유분방한 성 의식이 파리를 세계에서 성적으로 가장 앞서가는 도시로 만들었다고 생각해 본다. 이건 아마 프랑스 이외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이겠지만, 오죽하면 일반적인 진한 키스(Deep Kiss)를 프렌치 키스(French Kiss)라고 하고, 영국이나 아일랜드에서는 피임도구인 콘돔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여 프렌치 레터(French Letter)라고 한다. 심지어 누드 그림이나 야한 사진이 들어간 카드를 프랑스 엽서 즉 프렌치 포스트카드(French Posrcard)라고 하겠는가! 아무튼 파리는 우리에게 예술의 도시이고, 패션의 도시이자 요리의 도시로도 각인되어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인사들이 모여들어 독특한 정신세계와 활동 상황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현대에 들어와서 가장 센세이션 한 반향을 일으키며 본인의 난교(亂交) 사실을 진솔하게 고백하여 커밍아웃(coming-out)한 여성 미술평론가 카트린 밀레(Catherine Millet, 1948~)의 저서가 출판 당시에는 금삿갓의 눈길에는 약간 충격이었다. 2001년 12월에 그녀의 책 <카트린 M의 성생활(La vie sexuelle de Catherine M.)>이 열린책들에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회사 구내서점에서 다른 책들과 다르게 투명한 비닐용지로 밀봉되어 진열되어 있던 책이라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서 당장 그 책을 집어 들고 사무실로 왔다. 누가 볼 새라 사무실에서는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퇴근 후에 보려고 마음먹었다. 출판사의 책 홍보 문구가 자꾸 뇌리를 스쳤다. 섹스의 고정관념 타파, 파리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프랑스의 여성 미술평론가 카트린 밀레의 자기 고백적 성담론. “난 30년 동안 남편을 포함한 섹스파트너 49명과 섹스를 즐겼다.” 그룹섹스로부터 일대일 섹스, 혹은 오럴섹스로부터 삽입섹스에 이르기까지 온갖 충격적인 성행위를 묘사한 한 여성 미술평론가의 성고백서란다. 그냥 한 번의 충동적인 섹스는 제외하고, 상대의 이름이나 얼굴을 아는 섹스 파트너만 무려 49명에 이른다는 그녀는 전위적인 미술잡지 <아트 프레스>의 편집장이기도 한 카트린 밀레다. 미술분야에 문외한인 금삿갓으로서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책의 제목과 광고 카피의 문구가 너무나 자극적이고, 책의 내용을 훑어볼 수도 없게 밀봉 포장한 상술인지, 청소년 보호용인지 모를 출판사의 도발적인 행위로 인하여 더욱 그녀의 파격적인 성생활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저자인 카트린 밀레는 누구인가? 카트린 밀레(Catherine Millet, 1948년 4월 1일~)는 프랑스의 현대 미술 평론가이다. 1948년에 프랑스 파리의 서북쪽 오드센(Hauts-de-Seine) 주의 부아콜롱브(Bois-Colombes)에서 태어난 카트린 밀레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현대 미술 평론가로 전위적인 미술 잡지 <아트 프레스(Art Press)>의 창립자이자 편집장이다. 그녀의 어릴 당시에는 가정에 돈이 없었다. 아버지 루이(Louis)는 운전 강사였고, 어머니 시몬(Simone)은 정신 질환을 앓았다. 그 질환은 극심한 '발작'으로 이어지다가 나중에 결국 자살로 끝났다. 어머니의 병세는 결국 밀레가 어른이자 보호자가 되었음을 의미했다. 살았던 아파트는 비좁았다. 부모님은 서로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계셨다. 그녀는 십 대 시절 집을 나설 때까지 어머니와 한 침대를 썼단다. 23세에 오빠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mal de peau'(피부 속이 불편한 감정)라는 감정에 사로잡혀 정신과 진찰도 받게 되었다. 아무튼 카트린은 베니스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같은 수많은 국제 전시회의 학예사를 맡았으며, 현대 미술에 대한 여러 책들을 집필하고 있다. 당시 금삿갓만 몰랐지, 그녀는 한국에도 두 번 방문해 광주 비엔날레와 아트선재센터에서 강의했고, 국내 한 신문과 인터뷰를 한 적도 있을 만큼 국내 미술계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녀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사진작가인 자크 앙릭(Jacques Henric)과 결혼했다. 자전적 성고백서를 출간할 당시 나이는 54세로 캐서린 밀레는 그녀의 고백처럼 온 세상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다. 음란한 측면과 연관되는 경향이 있는 큰 가슴, 은은한 입술, 매혹적인 눈 같은 것들은 그녀에게 찾아볼 수 없었다. 캐서린 밀레는 스스로 말했듯이 '화려하지' 않은 가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치과 의사와 첫 잠자리를 갖기 전까지 치아가 매우 나빴는데, 치과 의사가 그녀에게 새 치아를 선물해 주었단다.

그녀는 54세의 체구가 작은 프랑스 여성으로, 검은색 카디건과 메리제인 슈즈를 세련되게 차려입는 게 어울리는 여인이다. 그녀는 파리 바스티유 근처 현대 미술 작품으로 가득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책이 많고, 어수선한 집기들, 다림질하는 아줌마, 위층에는 남편이 살고, 그리고 그녀의 뒷모습이 찍힌 밀레의 책들이 서재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30년 전 창간한 3만 부 발행 부수의 고상한 예술 잡지 '아트 프레스'의 편집자이다. 그녀는 본래의 모습 그대로, 지적인 미술 평론가로 보이지만, 성숙한 여성 지식인에게서 가끔 나타나는 그런 엄격한 편협함은 도리어 없어 보인다. 굳은 입이나 무서운 턱선도 없다. 그녀는 순응적이고, 잘 웃는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전문분야인 미술 평론이 아니고, 그렇다고 미술에 대한 것도 아닌 자신의 내밀한 성생활에 대한 책을 내었으니 당연히 모든 화제가 쏠리는 것은 명백하다. 책이 나오기 전에 한 신문에 실린 인터뷰 사진을 보면 그녀는 프랑스 지성인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오십 대 중반인 그녀의 모습에서는 ‘과연 그녀가 섹스 편력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여성일까’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성적 매력이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담백한 중성적 이미지라고 할까. 아니 그보다는 페미니스트나 능력이 뛰어난 커리어우먼 같은 인상이 더 짙다. 프랑스에서 출간된 지 1년도 안 되어 그녀의 저서 『카트린 밀레의 성생활』은 40만 부가 팔렸고, 지금도 전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당시 그런 반향에 대하여 그녀는 "지금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하나였어요."라고 말했다. "단순히 책이 성공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이해하기 때문이죠."라고 덧붙였다.

도발적인 정밀함과 당혹스러울 정도의 솔직함을 구사하는 캐서린 밀레는 마치 사진작가를 위해 포즈를 취하는 성인잡지 허슬러(Hustler) 모델처럼, 자신의 모습을 지면에 솔직하게 드러냈다. 그녀의 회고록은 어린 시절 자위행위부터 집단 성행위에 대한 집착으로 성장한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성생활을 자세히 묘사한다. 그녀는 시각적인 사람이며,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결코 어리석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그녀의 문장은 소설가 헨리 밀러(Henry Miller)의 문장만큼이나 거침없다. "오늘날 제게 성기를 삽입한 남성이 49명이나 됩니다."라고 그녀는 고백했다. "하지만 익명으로 남아 있는 남성들의 수는 셀 수 없습니다." 필자 금삿갓은 왜 이 대목에서 언뜻 로마에서 홍등가(紅燈街)를 개업하여 남자들을 상대했다는 네로 황제의 어머니 메살리나(Messalina)가 떠오를까? 어쨌든 그녀는 열여덟 살에 처녀성을 잃고, 그러고 몇 주가 지나지 않아 파르투즈(Partouze : 3명 이상이 함께 성행위를 하는 난교 파티)에 참가할 정도로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금삿갓의 눈에는 그녀의 젊은 시절이나 지금의 모습을 보면 성적으로 방종할 그런 스타일은 전혀 아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젖가슴은 보통 사이즈이고, 키도 크지 않은 보통 여자’라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고백서 <카트린 M의 성생활>이 나온 시점에 맞춰 나온 그녀의 누드 사진집(사진작가인 남편이 만든)에 실린 그녀의 몸은 뭇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할 만큼 매혹적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퇴폐적이거나 뇌쇄적이지는 않다. 성에 눈뜨기 전의 카트린은 종종 갖가지 생각을 하다 잠이 들곤 하는 소녀였다. 그런 생각 중에는 ‘얼마나 많은 남편을 둘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도 있었단다. 이것이 그녀의 파격적인 남성 편력을 이야기하는 첫 번째 화두다. 사실 남편과 이혼하거나 사별한 경우 여자들은 여러 명의 남자를 겪을 수가 있다. 또 여아 사망률이 높은 몽고 같은 한대 건조지역에서는 오늘날에도 한 여자가 남편의 여러 형제를 동시에 남편으로 삼기도 한다. 그러니 어린 나이의 카트린이 일처다부제에 대한 생각을 한 것은 그리 당돌하지는 않다. 그녀는 첫 난교를 경험했을 때, 물론 그때 주도권을 잡은 건 그녀가 아니었지만, 오히려 그녀가 주도권을 그들에게 쥐게 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항상 집단으로 사랑을 나누거나 파트너가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그녀 주변에 있다고 생각했다. 카트린 밀레는 셰 에메라는 클럽의 테이블에 누워 정체불명의 남자들이 줄지어 들어오는 것을 가장 편안하게 느꼈다고 한다. '때때로 나는 너무 격렬하게 공격받아 두 손으로 테이블 끝을 붙잡아야 했고, 척추뼈가 거친 나무에 부딪혀 생긴 꼬리뼈 위쪽의 작은 상처 자국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라고 묘사했다.

사실 그녀가 처음으로 성적인 감각을 갖게 된 건 12살쯤이었단다. 휴가 중이었는데, 친구 할아버지가 그녀를 만져주셨다. 갑자기 가슴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시시덕거렸지만, 나이가 훨씬 더 들어서야 섹스를 했단다. 그녀가 처음 섹스를 한 남자가 오럴 섹스를 요구했단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단다. 방법을 금방 배웠지만, 자기의 성적 쾌락을 스스로 터득하는 건 훨씬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었다. 열여덟 살 때 처녀성을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단 난교(亂交)를 경험한다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면도 많다. 말하자면 성이 최고로 개방된 나라의 여성이 아니고서는 겪지 못했을 특별한 경험이다. 그녀가 파르투즈를 주도한 것은 아니지만 상황을 재촉한 것은 자신이었다고 그녀는 고백한다. 그녀는 섹스를 좋아했고, 특히 난교를 좋아했다. 왜냐하면, 익명성, 버림받음, 그리고 '맛있는 현기증'을 좋아했기 때문이란다. 젊은 시절 그녀는 수줍음이 많았고, 관계를 맺는 데 '어색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모든 여성과 같이 옷을 입었을 때보다 벗었을 때 더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몸을 싫어했다. 그래서 절정을 통해 초월을 이루는 것은 자신을 뒤로 남겨두는 것이었다. '저는 엄청난 자유를 만끽한다는 확신에 사로잡혔습니다. 혐오감을 넘어 성적으로 흥분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을 낮추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편견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근친상간처럼 강력한 금기를 깨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파트너를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주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오럴섹스를 시작하게 된 일화도 재미있다. 여자 친구의 애인이었던 앙드레의 차를 타고 가던 중, 그녀는 차를 세우고 길가 숲으로 소변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 뒤따라온 앙드레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고 한다. 불쾌하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상황이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난처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굴을 남자 상대의 사타구니에 묻고 음경을 꺼내어 입에 무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친구의 남자 앙드레와 처음으로 파르투즈(집단난교)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그녀는 특이하면서도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즐겼다. 20살에 처음 같이 살았던 남자가 바로 그녀를 예술계에 입문하도록 한 남자였다. 그는 지금의 그녀가 되도록 도와주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편은 그녀에게 평온함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남자를 유혹할 줄 모르며, 더욱이 ‘남자 수집가’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남자가 성적으로 자신을 원하는 것을 알면 그녀는 주저 없이 옷을 벗고 다리를 벌리거나 음경을 애무했다. 또 스스로 파르투즈를 주도하지는 못했지만 누군가 안내해 주기만 한다면 스스럼없이 참여했단다. 그녀는 자신과 섹스를 한 남자 중 이름을 댈 수 있거나 이름은 모르더라도 다시 만나면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49명 정도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름을 모르고, 알 필요도 없이 관계했던 뭇 남성들까지 합친다면 얼마나 될까? 밀레는 최대 150명이 참석한 난교 파티에 대해 기록했는데, 그녀는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중 약 4분의 1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최소한 35명 정도 이상의 숫자이다. 또한 그녀는 야외에서의 성관계가 시골과 도시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지, 그리고 왜 자신이 매춘부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묘지·사우나·기차역·창고·미술관·들판·밴 등 다양한 섹스 장소에 대한 언급을 하며, 오럴 섹스·항문 섹스에 대한 고백도 있다. 낙태와 뚱뚱한 남자들·마른 남자들·다시는 볼 수 없었던 더럽고 벌거벗은 남자들도 상대했단다. 유달리 생각나는 것 중에는 깡마른 링고(Ringo), '아름다운 성기'를 가진 클로드(Claude), 수많은 손과 성기에 그녀를 노출시킬 수 있는 난교 클럽으로 그녀를 데려간 에릭(Eric) 등을 잊을 수 없단다. 젊음도, 란제리도, 텔레비전 속 삐죽거리는 모습도 지금은 없다. 카트린 밀레는 현대 문화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정의하고 가두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녀는 파리 지식인 사회에서 존경받는 중년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오랫동안 내 항문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일화는 얼마든지 모을 수 있을 거예요." 영국식으로 말하면, 마치 조앤 베이크웰(Joan Bakewell)이 만족할 줄 모르는 스윙어(Swinger : 성생활이 자유분방한 사람)로 자신을 드러내기로 결심한 것 같다. 조앤은 베이크웰 남작의 부인으로서 BBC의 방송진행자로 있으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극작가 헤럴드 핀터(Harold Pinter)와 7년간의 불륜을 저질렀고, 헤럴드 핀터는 그녀와의 불륜 사실을 소재로 <배신(Betrayal)>이라는 희곡을 썼다.

그녀는 시종일관 통달한 것처럼, 혹은 관조하는 듯 담담하게 자신의 섹스 경험담을 기술한다. 남성, 혹은 무수히 많은 음경들에 대해서 그녀는 너그럽고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어머니가 여러 자식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녀는 음경을 애무하고 느끼고 사랑했단다. 남자의 성기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미술평론가로서 신의 피조물인 남자의 성기에 대한 존중인지 그녀는 음경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했다. “클로드(Claude)의 음경은 잘 생기고, 곧으며 균형 잡혀 있었다. 그와 섹스를 할 때면 나는 음경 때문에 내 몸이 뻣뻣해지고 막혀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가 앙드레(Andre)가 내 얼굴 높이에서 바지를 내렸을 때, 나는 클로드 것보다 더 작고 다루기 쉬운 물건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느꼈다. 게다가 그의 물건은 클로드의 것과는 달리 포경이 제거되어 있지 않았다. 손이 닿기가 무섭게 귀두가 벗겨지는 물건을 보면, 마치 반질반질한 돌덩이를 세워놓은 듯한 그 모습에 흥분한다. 또 손이 움직이는 대로 왔다 갔다 하는 그 표피, 비눗물 표면에 생긴 커다란 비눗방울 같은 귀두를 노출시키는 그 표피는 한결 섬세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부드러운 탄력은 나의 몸 구멍에까지 파동으로 퍼져나간다. 링고(Ringo)의 음경은 클로드의 것과 비슷한 편이었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대학생의 성기는 내가 나중에 다시 경험하게 될, 즉 특별히 크지는 않지만 살갗이 단단해서 즉시 손에 꽉 차는 느낌을 주는 그런 부류에 속했다. 나는 여러 성기들을 접하면서 그것들이 나에게 저마다 다른 몸짓, 다른 행동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섹스를 하지 못할 장소는 없었다. 비단 음경에 대해서만 카트린이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성관계를 맺은 남자들 모두 단지 그녀가 담담하게 관조하는 대상이 된다. 심지어 남편인 자크 앙릭에 대해서도 그녀는 그가 특별하다거나, 최고라는 평가를 하지 않는다. 섹스 파트너의 한 사람으로 담담히 기술할 뿐이다. 성행위 자체에 대해서도 삽입섹스이건 오럴섹스이건 가치 부여를 하지 않는다. 또 오르가슴에 대한 열망이나 그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녀에겐 단지 섹스 행위 그 자체가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녀가 성고백의 두 번째 화두로 삼은 것은 공간 개념이다. 공개된 장소에서의 섹스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까. 숲 속, 주차장, 길거리, 포도밭길 등 노천에서 그녀는 어떻게 섹스를 했을까? 그녀의 표현을 보자. “대음순(大陰脣)이 벌어지면서 세모꼴을 이루다가 다시 만나는 자리로부터 항문에 이르는 짧은 통로, 푸대접받기 일쑤인 그 회음부(會陰部)를 자극하는 것은 나를 가장 확실하게 제압하는 애무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바람이 닿는 것이 느껴지면 나는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보다도 더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나는 엉덩이와 다리를 벌리고 바람 쐬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우리네 남성 조상들이 산에 올라 즐기던 거풍(擧風 : 바지를 내리고 태양쪽 방향으로 성기를 드러내어 바람과 햇볕을 쏘이는 일) 행위를 연상하게 한다. 이것이 그녀가 열린 공간에서 섹스를 하는 동기다. 남편인 자크와 시골의 한적한 포도밭 길에서 벌인 섹스를 보자. “나는 팬티를 한 손에 감은 채 두 팔을 내밀어 흔들거리는 돌들에 불안정하게 기댔다. 자크는 내 허리 아래에 잡히는 살을 두 손으로 아주 세게 움켜쥐면서 음문으로 들어왔다. 음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늘어뜨렸다. 앞으로 구부리고 있는 내 몸이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림자 속에서 젖가슴이 흔들리고, 위와 배가 규칙적으로 물결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가 좁다란 통로 안쪽에 빛이 다시 나타나면서, 음낭(陰囊)의 주름진 표면이 조금 보이고 이따금 음경(陰莖)의 밑동도 보였다.”

장소의 파격은 사실 숫자만큼 센세이셔널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전위적인 미술 잡지의 편집장다운 면모를 발견할 것도 같다. “친구들은 먼저 나를 수직 담벼락에 바싹 붙여서 세워놓았다. 그때의 내 모습을 본 애릭(Eric)은 내가 마치 ‘핀에 꽂힌 나비처럼 음경에 박혀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두 남자가 양쪽 팔 밑과 다리 밑을 받쳐 나를 들어 올리고 있는 동안, 다른 남자들이 번갈아 가며 골반에 접근해 왔다. 나를 사이에 끼운 채 한 명은 음부로, 다른 한 명은 엉덩이로 찔러 넣는다는 능동적인 환상이,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와 현실이 부드럽게 뒤섞이는 불투명한 분위기 속에서 일관성을 찾았다.” 이것은 주차장에서 벌인 파르투즈였다. 베르사유 근처 벨리지 빌라쿠블레의 작은 경기장에서의 파르투즈는 다른 그림이다. 관중석을 지탱하는 기둥에, 유난히 활처럼 휘어지는 허리를 이용해서 엉덩이를 내밀고 있으면 혼잡하지만 유쾌한 그림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대로변에 주차된 차 안에서나 철책이 둘러쳐진 정원에서도 섹스는 또 그 상황에 맞게 그림이 달라진다. 있는 그대로의 성을 보여줌으로써 음란물 혐의를 지워버린다는 <르몽드>지의 서평도 있지만, 그처럼 여러 장소에서의 성행위는 묘하게도 전위적 행위의 이미지로 뇌리에 남는다. 닫혔거나 좁은 공간에서의 섹스도 카트린이 참으로 다양하고 많은 성적 경험을 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협소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성행위는 다분히 포르노 영화를 연상케 한다. 트럭의 짐칸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펠라치오(Fellatio : 남성 성기를 빨아주는 행위)를 하기 위해 쭈그리고 앉아 있기도 했고, 옆으로 구부리고 누워서 그들이 삽입하기 편하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짐칸에는 구불거리는 강판이 몸에 직접 닿는 것을 완화시켜 줄 만한 것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세미 트레일러의 운전석에서, 기차의 이등 침대 칸에서, 엘리베이터 샤프트를 마주하고 있는 계단참에서… 그녀는 좁은 공간에서 무수하게 섹스를 즐겼다. 그런데 이 좁은 공간의 의미는 그녀가 굉장히 중요하고 섹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으로 여기는 펠라치오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한껏 부풀어 오른 그의 음경이 내 입안에 가득할 때, 나는 얼큰한 취기 같은 황홀감에 젖는다. 그런 느낌을 갖는 이유 중의 하나는 상대의 쾌감을 나의 쾌감과 동일시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상대가 뒷발로 일어서는 말처럼 흥분하면 할수록, 상대의 신음소리나 거친 숨결이나 격려의 소리가 뚜렷해질수록, 내 성기 속에서 격렬하게 아우성치는 어떤 것이 밖으로 표출되는 듯 한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든다.” 여자의 성기와 입도 구조적으로 좁은 공간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할 것 같고 아마 입술과 혀의 능동적인 움직임이 어쩌면 여성의 질 보다는 더 활동적일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성기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성기가 열려 있는 상태를 비유하라면 나는 새끼 새가 지치지 않고 부리를 벌리고 있는 것에 비유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참으로 철학적이고도 시적인 묘사다. 그런데 그렇게 개방된 그녀도 정작 남편인 자크와 함께는 한 번도 파르투즈에 참여해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굳이 집단적인 성행위에 함께 참여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는 것일 거다. 또한 그녀는 또 다른 여자가 자기 남편과 섹스를 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지만, 자기 침대의 시트에 체취나 땀 냄새나 분비물을 묻히는 것은 싫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는 그녀가 성적으로 개방돼 있으면서도 자신의 내밀한 공간에 대한 집착도 갖고 있음을 뜻한다. 또 그녀도 어느덧 '자신의 소유물'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책에서는 나이를 먹어 가는 과정을 전혀 고백하지 않는다. 섹스를 시작한 초기에 대한 언급만 있을 뿐 능숙해진 후의 섹스나 나이의 문제는 거의 밝히지 않는다. 회고담에 늘 상 등장하게 마련인 반성이나 자기 합리화 같은 주장도 없다. 자신의 성체험을 고백한 그녀와 프랑스 미술계가 추하지 않게 보이는 것도 그런 미덕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은 그녀가 1년 반 동안 집필했고, 우연히도 그녀의 친구이자 옆집에 사는 드니 로슈(Denis Roche)가 출판했다. 그의 출판사인 에디시옹 뒤 쇠이유(Editions du Seuil)는 아방가르드(Avant-garde) 작품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밀레는 "그는 제가 이 책을 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출판사가 일기를 썼는지 묻자, 그녀는 아니다라고 답했지만, 어떤 일들에 대해서는 "악마의 기억(une mémoire diabolique)"을 쓴다고 말하고 싶었단다. 출판사 쇠이유는 처음에 소량으로 시작했지만, 책이 충격적인 반향과 큰 박수갈채를 받으면서 재빨리 재판(再版)에 들어갔다. 밀레의 표현을 빌리자면, '많은 공격'이 있었다. 특히 그녀는 돈 때문에 쓴 냉소적인 책이라고 비난하는 '전 친구' 한 명에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남자 입장에서 밀레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이브와 같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항상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남자들에게 환영받는 반면, 그녀의 식욕은 그의 연기로는 결코 만족될 수 없기 때문에 무섭다. 그녀는 자신의 성적 취향을 '특이하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여성들이 이런 종류의 섹스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어요."라고 그녀는 지적한다. "저는 우연히 그런 환상을 실현해 본 거예요."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성적 자유의 본질에 대한 이론들이 대부분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점점 더 단순해지는 이 영역에 복잡성이라는 개념을 다시 도입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업적은 성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운동에 참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회고록은 성적 개방성을 촉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최근 성적 관습이 발전했지만, 어떤 성행위는 숨겨야만 용인됩니다. 책이 출간될 당시, 사람들은 비밀로 간직해 온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달라고 제게 찾아왔습니다. 이제 그들은 부끄러움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저는 누구나 사회적 고통 없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성의 민주화를 기대합니다.”

"성(性)은 어린 시절에 형성되는 것은 분명합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한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다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쾌락 추구가 신경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쾌락 추구를 요구했던 종교적 태도가 속죄를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고록 속 밀레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녀는 어떤 정의도 용납할 수 없는 상충하는 역설들의 집합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몸에 대한 혐오감은 있지만, 알몸에 대한 편안함도 있다. 과도한 과소비와 거친 과시욕도 있다. 18세부터 진지한 만남을 즐기던 여성이었지만, 35세가 되어서야 "나 자신의 쾌락이 성적 만남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박수를 치는 가톨릭 신자도 있다. 그녀의 책이 그녀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는 걸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스스로 정한 한계 안에서, 이 책은 제 성격에 대한 진실된 이야기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다 보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죠." 밀레는 자신을 평범한 정도의 불안에 시달리는 평범한 사람으로 여기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본질적 문란한 본성은 영국 과학자 로빈 베이커(R Robin Baker)와 마크 A. 벨리스(Mark A Bellis)가 수행한 최근 정액 연구에서 드러났다. 그들은 남성이 3억 5천만 명의 여성을 수정하려는 (의식적인) 욕구가 없는데, 왜 인간의 음경은 3억 5천만 개의 정자를 사정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정자 경쟁 이론에 따르면, 정자는 여성이 '이중 교배'했을 가능성 때문에 체내에 있는 다른 남성의 정자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단다. 진화론은 문명이 부정한 진실을 말하는 듯하다. 그녀는 말한다. “제 인생에서 만난 연인들과 친한 남자 친구들은 제게 삶의 지혜와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제 나이 또래 여성들에게는 남성이 항상 성적(性的)인 주도자(主導者)이자 스승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항상 연상의 남성을 좋아했습니다. 25살 때 제 연인은 45세와 50세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연상의 여성으로서 저는 젊은 남성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직장과 성관계 모두에서요. 저는 그런 상황에도 괜찮고, 일과 섹스를 병행하는 것도 괜찮습니다.”(금삿갓 芸史 琴東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70) 왕비가 된 중국 4대 추녀 - 무염 종리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