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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두 처녀 귀신과 사랑을 나눈 최치원(崔致遠)

꿈속의 사랑인가, 귀신과의 사랑인가?

by 금삿갓

최치원은 문성왕 19년(857년) 통일신라의 사량부(沙梁部)에서 6두품 출신 최견일(崔肩逸)의 아들로 태어났다. 최치원은 12살에 청운의 꿈을 품고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 당시 신라에서는 837년 한 해에만 216명이 당나라에 유학생으로 떠났을 만큼 당나라 유학 열풍이 불고 있었다. 당나라 유학 경력이 있으면 신라에 돌아와서도 출세길이 보장된 엘리트 코스였기 때문이다. 당초 아버지와 10년을 기약했는데, 총명하기도 했지만 엄청난 노력으로 4년 단축하여 6년 만에 18세 나이로 당나라 빈공과(賓貢科)에 장원급제했다. 외국인으로 뛰어난 문장을 인정받았지만 당장 관직을 받지 못했다. 2년 후에야 선주군(宣州郡) 율수현위(溧水縣尉)를 제수받았다. 최치원이 바로 이 벼슬에 임명되어 현지에서 근무하면서 발생된 이야기가 오늘의 주제이다. 당시 율수현은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남경시(南京市) 남쪽에 있는 고순구(高淳區)에 해당한다. 행정구역상으로 율수현은 선주군의 관할로 예하 기관이다. 율수와 선주를 연결하는 역로(驛路)는 영국역로(寧国驛路)라고 불리며, 그중 한 구간은 현재 고순구(高淳區) 고성진(固城镇) 장산촌(蒋山村)의 화산(花山) 기슭에 있다. 역로의 마지막 역참(驛站)인 초현역(招賢驛)도 화산 기슭에 있었다. 최치원은 선주와 율수를 오가며 업무를 보고하고, 종종 초현관(招賢館)에서 묵었다. 어느 날 최치원은 말을 타고 율수현 아남문(衙南門)에서 출발하여 영국역로를 따라 순찰하다가 화산 기슭에 도착했을 때, 해가 서쪽으로 지게 되어 초현관에 머물기로 했다. 화산은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고, 그윽한 골짜기는 맑은 물이 소리 내어 흐르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백모란이 많이 나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때는 늦봄이라 산에는 꽃향기가 그윽하고, 푸르름이 가득하여 예부터 관광객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최치원은 산에 올라 고성호(固城湖)의 맑은 물결을 내려다보고, 춘대(春台)를 가로질러 기이한 소나무와 기이한 꽃을 감상하며, 돌아가는 것을 잊지 못하고 산 아래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 관에 들어서자, 관 앞 언덕에 고적(古迹) 쌍녀분(雙女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은 예로부터 유명 인사들이 방문하는 장소였지만, 그 쌍녀(雙女)의 내력을 아무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쉴 겸 호기심을 안고 서둘러 가서 조의를 표하기로 했다. 묘지에 오르니 작은 산 같은 무덤이 광야에 덩그러니 나타났다. 묘비도 없고, 제사도 지내지 않으며, 싱그러운 풀만 무성할 뿐, 동정심이 저절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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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는 하인을 시켜 잡풀을 제거하고 묘지석을 정갈하게 정리하게 한 후에 간단한 제를 올려 주려고 했다. 그러나 급히 오는 바람에 제수와 술도 준비를 못 하였기에 어쩔 수 없이 다음과 같은 시를 한 수 지어 제물에 대신하고자 했다.

誰家二女此遗墳(수가이녀차유분) / 어느 집 두 여자가 이 무덤에 깃들어

寂寂泉扃幾怨春(적적천경기원춘) / 적적한 저승에서 얼마나 봄을 원망했을까?

形影空留溪畔月(형영공류계반원) / 그 모습 부질없이 남아 냇가 둑의 달빛이네.

姓名難問塚頭塵(성명난문총두진) / 무덤 앞에 티끌로 성명을 묻기도 어려워라.

芳情倘許通幽夢(방정상허통유몽) / 고운 그대들 그윽한 꿈에서 만날 수 있다면

永夜何妨慰旅人(영야하방위여인) / 기나긴 밤 나그네 위로가 무슨 허물되리오.

孤館若逢雲雨會(고관약봉운우회) / 외로운 여관에서 만나 운우의 정을 즐긴다면

與君繼賦洛川神(여군계부난천신) / 그대와 함께 조식(曺植)의 낙신부를 이으리.

청춘에 요절하여 묘비에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두 소녀의 처지에 한없이 동정하고 연민을 표한 것이다. 동시에 자신이 가족과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떠올리며, 더욱 외로움을 느꼈고, 두 여인의 영혼이 꿈속에서 그와 만나 함께 잠자리를 나누면, 낙천(洛川)의 여신을 본받아 풍류를 남겼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또한 초(楚) 나라 송옥(宋玉)의 무산(巫山) 신녀(神女)와의 하룻밤 사랑을 떠올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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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이 시를 지어 제사를 마치고 관으로 돌아오려니 시간이 이미 늦었다. 그래서 무덤 옆에서 남가새 꽃을 꺾어 손에 들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맞으며 오솔길을 거닐었다. 길을 걷던 중, 문득 앞에 녹색 의상을 입은 젊은 여성이 와서 손에 두 개의 선명하고 눈길을 끄는 빨간 봉투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팔낭자(八娘子), 구낭자(九娘子)께서 명하여 수재(秀才)께 전갈을 전하러 왔습니다. 조금 전에 특별히 찾아와서 아름다운 시구를 써서 제를 올려 주심에 감사합니다. 두 분이 수재님의 시와 제사에 대한 답례가 있어 특별히 올립니다."라고 인사했다. 최치원이 깜짝 놀라 물었다. "팔낭자, 구낭자의 성은 누구고, 집은 어디입니까?" 녹삼(綠衫)의 여인이 답했다. "방금 돌을 털어 시를 쓴 곳이 바로 두 낭자의 집입니다." 최치원은 또 한 번 놀랐다. 알고 보니 눈앞에 한 여자 귀신이 서 있었고, 그 여자는 웃음이 가득하여 오히려 일반인보다 더 친근해 보였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손을 뻗어 붉은 봉투를 받았다. 그러자 그 여인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정신을 차린 최치원이 역관으로 돌아와 좌정하고, 먼저 첫 번째 봉투를 풀고 팔낭(八娘)이 쓴 화답시를 보았다.

幽魂離恨寄孤墳(유혼리한기고분) / 죽은 넋이 이별의 한을 외로운 무덤에 맡겨도

桃臉柳眉猶帶春(도검류미유대춘) / 복숭아 뺨 버들눈썹엔 오히려 봄이 어렸구나.

鶴駕難尋三島卟(학가난심삼도계) / 학을 타도 신선이 사는 곳의 점괘는 찾기 어렵고

鳳釵空堕九泉塵(봉채공타구천진) / 봉황 비녀는 부질없이 구천의 티끌에 떨어졌네.

當時在世常羞客(당시재세상수객) / 당시 이승에서는 늘 나그네를 부끄러워했지만

今日含嬌未識人(금일함교미식인) / 오늘은 모르는 사람에게 교태를 품었다오.

深愧詩詞知妾意(심괴시사지첩의) / 심히 부끄럽지만 시로 제 마음을 알리니

一回延首一傷神(일회연수일상신) / 한편은 목을 빼 기다리고, 한편은 상심하네요.

그녀는 시로 자신이 꽃다운 나이에 일찍 죽었다고 애절하게 표현했다. 비록 사람은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지만,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는 마음은 항상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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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은 이어서 두 번째 봉투를 열자, 구낭자(九娘子)의 답시(答詩)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往來誰顧路傍墳(왕래수고로방분) / 오가며 누가 길가의 무덤을 돌아볼까?

鸞鏡鴛衾盡惹塵(난경원금진야진) / 난경 거울, 원앙금침 모두 먼지투성이네.

一死一生天上命(일사일생천상명) / 한번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운명이고

花開花落世間春(화개화락세간춘) / 꽃이 피고 지는 것은 세상이 봄날이라.

每夸秦女能抛俗(매과진녀능포속) / 속세를 버리려고 진나라 농옥(弄玉)처럼 늘 자랑하다가

不学任姬愛媚人(불학임희애미인) / 임희(주 문왕의 모)처럼 사랑스러운 애교를 못 배웠다오.

欲荐襄王雲雨夢(욕천양왕운우몽) / 양왕처럼 깔개에서 운우의 정을 꿈꾸려 하나

千思萬憶損精神(천사만억손정신) / 천만 가지 생각에 정신마저 상한 다오.

그러면서, 덧붙여서 쓰기를

莫怪藏姓名(막괴장성명) / 성과 이름을 감춘 것을 이상히 생각 마세요.

欲將心事說(욕장심사설) / 장차 마음속의 일을 말하려고 하니

能許暫相親(능허잠상친) / 잠시라도 서로 친해질 수 있기를 허락해 주세요.

두 편의 시를 읊조리고 추신까지 읽기를 끝내자 최치원은 "좋은 시다! 좋은 시야!" 하면서 감탄했다. 그러면서 얼른 필(筆)을 들어 답시(答詩)를 지었다.

偶把狂詞題古墳(우파광사제고분) / 우연히 미친듯한 말로 옛 무덤에 읊었더니

豈期仙女問風塵(기기선녀문풍진) / 어찌 선녀가 풍진 세상을 물으리라 기약할까.

翠襟猶帶瓊花艶(취금유대경화염) / 취금 조차 옥 꽃 같은 아름다움을 지녔으니,

紅袖應含玉樹春(홍수응함옥수춘) / 붉은 소매는 응당 봄날의 고운 나무 빛을 머금었어라.

偏隱姓名欺俗客(편은성명기속객) / 이름을 숨기고 속세의 나그네를 속이는 건 실례인데,

巧栽文字惱詩人(교재문자뇌시인) / 교묘한 문자로 시인을 고뇌하게 하는구나.

斷腸唯願陪歡笑(단장유원배환소) / 애끊는 마음은 오직 모시고 웃고 즐기길 바라니

祝禱千靈與萬神(축도천령여만신) / 모든 영혼과 신에게 축원 기도드린다.

그런데 이렇게 시를 짓자마자 졸음이 쏟아졌고,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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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어 삼경 무렵, 최치원은 두 여자를 생각하며 마음이 초조하여 뜰을 거닐고 있었다. 그러다가 막 문을 나서려는데, 문득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대문 밖의 오솔길에서 취금 아가씨가 두 여주인을 부축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과연 한 쌍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최치원은 놀라고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서, "소생은 반도의 미천한 태생이고 속세의 말단 관리라, 어찌 외람되게 선녀들이 범부를 돌아볼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냥 장난으로 쓴 글인데 문득 아름다운 발걸음을 드리우셨군요." 하면서 거실로 안내했다. 두 여자가 살짝 웃을 뿐 별 말이 없으니 최치원이 물었다. "낭자들은 어디에 사셨고, 친족은 누구인지요?" 붉은 치마의 여자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와 동생은 율수현의 초성향(楚城鄕) 마을 장씨의 두 딸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현의 관리가 되지 못하고, 초현역의 역참 관리인이 되어 부를 이루고 얼마간 사치도 부렸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둘을 매우 아끼셔서 어릴 때부터 직접 가르쳤습니다. 여동생과 나는 서예와 도리를 알고 재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규수였습니다. 제 나이 18세, 아우의 나이 16세가 되자 부모님은 혼처를 의논하셨습니다. 염상인(鹽商人) 유대인(劉大人)이 나를 마음에 들어 했는데, 그래서 저는 소금장사 유대인과 정혼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유대인은 이미 오십이 넘었고, 우리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나는 죽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유대인의 위세에 눌려 나를 시집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저는 이미 사모하는 사람이 있어서 굴복하고 싶지 않았지만, 부모님을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을 품고 자살했습니다. 뜻밖에도 유대인은 아버지에게 여동생으로 혼인시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성격이 강직하여 원망과 분노로 병이 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따라 지하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동생은 아직 소녀의 몸입니다. 배우자 없으니 선산에 갈 수 없고, 황야에 시체를 버리고 '고혼(孤魂)' '야귀(野鬼)'가 될뿐더러, 비석을 세워 이름을 남길 수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우리 둘이 불쌍해서 이 화산 기슭에 명당자리를 골라주고, 호화로운 거대한 무덤을 만들어 우리 둘을 한 곳에 묻어서 서로 의지하고 지냈습니다."

그제야 여동생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언니는 도련님과 마음이 많이 닮았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가 이 초현관을 운영할 때, 젊은 인재들이 자주 이곳에 와서 숙박했습니다. 언니는 재능과 외모를 겸비하여 널리 유명했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언니도 재능 있고 뜻이 있는 청년을 사모하며, 17살 되던 해에 율수현의 한 현위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현위는 문무를 겸비하고 풍채가 당당하여, 그야말로 낭재여모(郎才女貌)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염상인 유대인이 강제로 언니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언니는 죽을지언정 따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언니가 죽은 후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보고 싶어서 이곳을 떠나기 싫어 고혼야귀(孤魂夜鬼)가 되었습니다. 언니가 외로울까 봐 나도 같이 기다렸어요. 오늘 하늘이 개안(開眼)해서 도련님이 드디어 오셨습니다. 도련님은 그 현위의 환생을 닮았습니다. 도련님이 묘문에서 시를 지어 정을 나눌 때, 언니는 기쁨에 겨워 울었습니다. 하느님이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렇게 백 년의 숙원이 끝나고, 우리 자매도 안심하고 이곳을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을 마친 자매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최치원은 구낭의 진심 어린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모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 팔낭과 구낭의 눈물을 닦아 주며 "오늘 인연이 닿았으니, 마땅히 기뻐해야 할 텐데, 우리 어찌 시를 읊고 화답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주방에 가서 술과 안주를 가져와서 말하였다. "세속의 정취를 물외(物外)의 사람에게 바쳐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두 여인이 대답했다. "우리 둘은 원래 굶주림도 갈증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귀신입니다. 오늘 운 좋게도 공자를 만났는데, 어찌 거절할 도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셋이 마주 앉았고, 취금이 옆에서 술을 따랐다. 술이 세 순배 돌면 담소하고, 시를 읊고 화목하며, 서로에 대한 애모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이때, 밝은 달은 그림 같고, 맑은 바람은 가을과 같아서 더욱 무한한 정취를 더해주었다. 팔낭은 이렇게 아름다운 날에 달(月)을 주제로, 바람(風)을 운(韻)으로 삼아 시를 지어 흥을 돋우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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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최치원이 손뼉을 치며 첫 연을 지었다.

金波滿月泛長空(금파만월범장공) / 금빛 물결의 둥근달이 긴 하늘에 떠있고

千里愁心處處同(천리수심처처동) / 천리의 근심은 곳곳마다 한결같구나.

다음에 팔낭이 받아서 읊조렸다.

輪影動無迷旧路(륜영동무미구로) / 달그림자는 옛길을 헤매지 않고 구르며,

桂花開不待春風(계화개불대춘풍) / 계수나무 꽃 봄바람 기다리지 않고 피었네.

구낭도 이어서 읊조렸다.

圓輝漸皎三更外(원휘점교삼경외) / 둥근 빛 삼경너머 점점 밝아오는데

離思偏傷一望中(리사편상일망중) / 한번 바라보니 이별 생각에 가슴만 상하구나.

최치원은 동생의 문재(文才)와 시정(詩情)에 매료되었다. 최치원이 더욱더 감탄하여 말하였다. "이러한 때 앞에 연주하는 음악이 없다면 좋은 일을 다 누렸다 할 수 없겠지요." 이에 언니인 붉은 소매의 여자가 하녀 취금을 돌아보고서 최치원에게 "현악기가 관악기만 못하고, 관악기가 사람 소리만 못하지요. 이 애는 노래를 잘 부른답니다."라 하고 노래를 부르라고 명하였다. 취금이 옷깃을 여미고 한 번 노래하니, 그 소리가 청아해서 세상에 다시없을 것 같았다. 이제 세 사람은 얼큰히 취했다.

최치원이 두 여자를 꼬여 말하였다. "일찍이 노충(盧充)은 사냥을 갔다가 홀연 좋은 짝을 얻었고, 완조(阮肇)는 신선을 찾다가 아름다운 배필을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그대들이 허락하신다면 좋은 연분을 맺고 싶습니다." 두 처녀가 모두 허락하며 말하였다. "순(舜)이 임금이 되었을 때 두 여자가 모시었고, 주랑(周郞)이 장군이 되었을 때도 두 여자가 따랐지요. 옛날에도 그렇게 했는데 오늘은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최치원은 뜻밖의 허락에 뛸 듯이 기뻐하였다. 정갈한 베개 셋을 늘어놓고 새 이불 하나를 펴놓았다. 세 사람이 한 이불 아래 누우니 그 곡진한 사연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운우(雲雨)의 폭풍이 두 차례 거듭 치고, 향긋하고 아련한 살 냄새가 방안을 가득 매웠다. 밤 깊어가는 줄 모르는 세 남녀의 엉킴은 무아지경으로 흐르는데, 어느새 달이 지고 새벽닭이 울자 두 처녀가 모두 놀라며 그에게 말했다.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이별은 길고 만남은 짧은 거지요. 이는 인간 세상에서도 귀천을 떠나 모두 애달파하는 일인데, 하물며 삶과 죽음의 길이 달라 늘 대낮을 부끄러워하는 헛된 유령이야 더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다만 하룻밤의 즐거움을 누리다 이제부터 천년의 길고 긴 한을 품게 되었군요. 처음에 동침의 행운을 기뻐했는데, 갑자기 기약 없는 이별을 탄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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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처녀가 각각 시를 읊었다.

星斗初回更漏阑(성두초회경루란) / 두성도 처음으로 돌아가고 물시계 다하니

欲言離緖淚不干(욕언리서루불간) / 이별의 말하려 하나 눈물이 마르지 않네.

從此更結千年恨(종차갱결천년한) / 이제부턴 천년의 한이 다시 맺히고

無計重尋五夜歡(무계중심오야환) / 깊은 밤의 즐거움 거듭 찾을 기약 없구나.

또 다른 시를 이렇게 읊었다.

斜月照窓紅臉冷(사월조창홍검랭) / 지는 달빛 창에 비추자 붉은 뺨 차가워지고

曉風飄袖翠眉攢(효풍표수취미찬) / 새벽바람에 옷깃 나부끼자 비취 눈썹 찌푸리네.

辞君步步偏腸断(사군보보편장단) / 그대와 이별하는 걸음걸음 애간장만 끊어지고

雨散雲歸入夢難(우산운귀입몽난) / 비 흩어지고 구름 돌아가 버려 꿈꾸기도 어려워라.

두 여인은 차례로 목소리와 감정을 녹여, 글자 글자마다 눈물과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최치원은 시를 보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두 처녀가 최치원에게 말하였다. "오늘 헤어지면 우리 둘은 인연이 다했고 대장부는 천리 길을 갈 테니 이러한 정을 탐내어 포부를 잊지 말도록 하십시오. 혹시라도 다른 날 이곳을 다시 지나가게 되신다면 황폐한 무덤이나 다듬어 주십시오." 말을 마치자 이때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두 여인은 급히 옷을 차려입고 침대에서 내려와 스르르 모습을 감추었다. 최치원은 비틀거리며 문밖으로 쫓아 나와 역로 쪽을 바라보았다. 비몽사몽간에 구름 속에서 두 여인이 그를 향해 자주 손을 흔드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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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최치원은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한 느낌에 그 무덤가로 가서 쓸쓸히 거닐면서 긴 시를 지어 읊조렸다. 그는 깊이 탄식하며 이번 생에는 반드시 출세하여 그녀들과의 깊은 정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최치원은 신녀들의 비호를 받은 듯 중국에서 수년간 벼슬길이 순탄하였고, 귀국한 후에도 가문을 일으키고, 벼슬을 버리고 유유자적하면서 신선 같은 삶을 살다가 학을 타고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전설도 있다. 최치원의 지팡이는 해인사 학사대 전나무로 살아있고, 그는 가야산의 산신이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오늘날 중국 사람들은 한·중 문화교류의 시조이자 가장 모범적인 인물로 최치원을 얘기하고 있다. 2007년 중국 강소성(江蘇省) 양조우시(揚州市)는 외교부의 승인을 받아 양주혁명열사 기념관 앞쪽에 최치원기념관과 최치원 동상을 건립하였다. 중국 외교부가 승인한 첫 번째 외국인기념관이었다. 2007년부터 양주시는 매년 10월 15일을 한중 우호교류의 날로 정하고 있으며, 경주최씨 중앙종친회는 20여 년간 이곳에서 제향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모티브는 중국에서 <쌍녀정연(雙女情缘)>이라는 역사극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쌍녀분 이야기는 그간 전설처럼 전해졌다. 그런데 율수현에서 당 시대의 쌍녀분이 발견되어 최치원과 두 처녀 귀신이 나눈 사랑이야기가 역사적인 사실로 정립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편찬된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에 수록되어 전한다. 중국에서는 당대에 <육조사적편(六朝史籍編)>이란 책에 쌍녀분기담(雙女墳奇談)이란 내용으로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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