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다닐 때 이런저런 해외출장이 많았다. 그러니 자연 항공 마일리지가 쌓였고, 회사가 고맙게도 개인들의 항공 마일리지에 대한 규제을 하지 않고 고스란히 개인이 재량 껏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덕분에 회사 은퇴 후에 그동안 항공마일리지와 신용카드 사용 마일리지를 활용하여 2개월의 북미와 중미를 맘 편히 돌아다녔다.
은퇴 후 벌써 8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동안 비씨 플래티늄카드를 마구마구 쓰진 않았지만 1,000원에 1마일이 모여 14만 마일이 되었다. 국적기가 대한항공으로 합병하면서 마일리지 소진 방식 변경이 계획되고, 오래된 마일리지가 자동 소멸 위기에 처한다는 것을 알았다.
코로나로 3년간 비행기를 못 탔으니 방랑벽(放浪癖)에다 역마살(驛馬煞) 끼도 조금 있는 필자 금삿갓은 과감히 마일리지를 소진하기로 작정했다. 마일리지 무료항공권으로 유럽을 두 사람이 왕복할 수 있는 실적이었다. 쾌재를 부르면 즉각 생각한 것이 평소 버킷리스트 순번 2번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이다. 공짜 항공에 숙박비, 음식값 싸고, 현지 교통비는 오롯이 두 발로 걸으니 경비가 너무 저렴하다. 은퇴한 백수에겐 최고의 방랑 여행지다. 아무런 계획 없이 덜커덕 항공스케줄을 예약했다. 7/11일 파리로 들어가서 9/7일에 마드리드에서 나오는 여정이다.
맨날 다른 카드 쓰라는 각종 마케팅을 못 들은 채 줄창 비씨플래티늄만 쓴 결과가 이렇게 이로울 줄이야. 더구나 전 세계 공항에서 공항라운지를 무료로 20회를 이용할 수 있다니, 이것은 덤이다. 자.....떠나자. 동해바다로가 아니고, 산티아고 순례길로. 급히 배낭, 침낭 사고 자질구레한 준비물을 챙겨 무작정 인천으로 향했다. 공항 가는 전철 또한 무료다. 정말 대한민국 좋은 나라다.
휴가철이라 붐빌걸 예상해서 서둘러 나왔지만 별로 할 게 없다. 탑승절차를 모두 인터넷으로 했고, 짐은 배낭 하나여서 짊어지고 타면 된다. 라운지로 가서 느긋하게 공짜 식사하고 각종 음료나 축내면서 기다리자. 요즘 촌스럽게 면세점 기웃거리는 것도 꼴불견이다.
대한항공은 우리 것이어서 그런가 기내식이 묵밥이 나오네. 양코뱅이들이 묵밥을 알 것인가? 두 끼 식사와 간식 한 번을 챙겨 먹고서야 파리 드골공항의 활주로가 보인다. 물론 그 시간에 넷플릭스에서 못 보던 영화 두 편 때렸다. 카드 많이 써서 호강하는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