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絶句 又(절구 우) / 또 절구
금삿갓의 漢詩工夫(260108)
絶句 又(절구 우) / 또 절구
- 杜甫(두보)
江動月移石
강동월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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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일렁이니 달빛은 바위로 옮겨가고
谿虛雲傍花
계허운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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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시내에 구름이 꽃같이 피어나네.
鳥棲知故道
조서지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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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옛 길을 알아 깃들고
帆過宿誰家
범과숙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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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돛배는 누구 집에 묵을까?
江波搖動(강파요동)하고 江月照耀(강월조요)하여 宛然月移江邊之石(완연월이강변지석)하고 谿谷空虛(계곡공허)하고 谿雲靉霴(계운애체)하여 遠見雲傍江上之花(원견운방강상지화)라. 尋捿之鳥(심서지조)는 能知故道而飛去(능지고도이비거)하니 泛江之舟(범강지주)는 今何誰家而宿止乎(금하수가이숙지호)아. 此(차)는 江上所見之物(강상소견지물)을 吟而歎之也(음이탄지야)라.
강의 물결이 요동치니 달이 강을 밝게 비추어 완연히 달빛이 강가의 바위로 옮겨가서, 계곡이 텅 비고, 계곡에 구름이 끼어 멀리 구름가로 강변의 꽃이 보인 것이다. 찾아 깃드는 새는 옛길을 알아 날아가니, 강에 뜬 배는 이제 어찌 누구의 집에서 묵을 까 하였으니, 이는 강가에 보이는 물건을 읊고 탄식한 것이다.
* 杜甫(두보, 712~770) : 자는 자미(子美). 본관은 양양(襄陽, 현재 후베이 샹양)이며, 공현(巩縣, 현재 허난성 공의)에서 태어났다. 이백(李白 : 701~762)과 더불어 중국의 최고 시인으로 일컬어진다(중국문학). '두릉(杜陵)의 포의(布衣)' 또는 '소릉(少陵)의 야로(野老)'라고 자칭한 것은 장안(長安)의 남쪽 근교에 있는 두릉 땅에 두보의 선조가 살았기 때문이다. 만년에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의 관직을 지냈으므로 두공부(杜工部) 또는 두습유라고 불리기도 한다. 두보는 7세 때부터 시를 지었다는 조숙한 소년이었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낙양의 숙모 밑에서 자랐는데 그의 시에 대한 재능은 일찍이 낙양의 명사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과거에 급제를 하지 못하고 곤궁한 생활을 계속해야 했다. 두보의 눈은 차츰 사회의 모순으로 향하게 되었고, 그의 시는 사회의 불합리한 실정을 여실히 그려냈다. 두보는 "부잣집에서는 술과 고기냄새가 나지만, 길에는 얼어 죽은 해골이 뒹굴고 있다."고 하며 빈부의 차가 너무나도 현격한 세상에 대해 분노를 토로했다. 계속되는 전란 속에서 관직 생활과 귀향의 길을 오가면서 병을 얻어, 겨우 연명하다가 고된 일생을 마쳤다. 1400여 수의 시가 <두공부집(杜工部)>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