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Gore물로 Deco(장식)하는 과감한 여체

그로테스크한 여성 해체로 새로운 에로스를 쓰다.

by 금삿갓

일전에 종로의 한 미술관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아주 쇼킹하고 그로테스크(Grotesque)한 그림을 보았다. 장파(본명 장소연) 작가의 그림이다. 필자 금삿갓이 미술에 문외한이지만 이런저런 들은풍월과 얼치기 눈높이에서 보고 느낀 대로 잡글을 쓰는 <금삿갓의 Eros, 애로서(曖露書)>를 연재하면 해외 작가의 기괴한 그림은 많이 보았다. 그런데 국내 작가의 그림은 아직 살펴보지 못하고 있다가 뒤통수가 띵하게 울리는 작품들을 보고 급히 몇 글자 적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든 작품이 그런 건 아니지만 금삿갓의 눈길을 유독 사로잡은 작품들이 너무 멋지다. 먼저 아래 자품은 <Gore Deco-Emily> 이다. 캔버스 전체에 흘러넘치는 선홍색과 그에 대조되어 간간히 양념 바르듯이 조화를 이룬 다양한 색감이 우선 눈을 현란하게 한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전통적인 여성의 아름다음에서 오는 성적 욕망과 에로티즘을 완벽하게 해체하고, 특별하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뭔가 색다른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에로스의 근원을 보는 것 같다. 금삿갓의 눈에는 “눈과 입과 여성 성기”라는 비슷한 모양의 구멍들을 특별히 무시하거나 강조하여 여성성을 해체한 것처럼 보인다. 세상의 모든 억압과 생각, 물질 등 그로부터 발생하는 속박과 부조화를 온몸 가득 끌어안고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항의하는 듯하다.

<Gore Deco - Emily>

다음은 <Torso - The Holy Portal>이다. 토르소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품 중 머리와 팔다리가 잘려나간 몸통만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조각품들이다. 그러다 보니 소수의 여성 토르소도 있지만 대부분 남성상의 토르소가 주류를 이룬다. 울룩불룩한 식스팩의 근육을 자랑하는데 비해 조금은 형편없이 축소된 남성 성기을 달고 있는 조각말이다. 이 여성 몸통 그림은 괴물적 여성, 절단·변형된 ‘그로테스크’ 한 여성 나신을 해체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여성의 신체는 외부의 환경에 미세하게 반응한다. ‘음악’에 노출된 반쪽은 젖가슴이 흥분으로 팽창되고, 모든 신경세포의 연결조직과 유선(乳腺)들이 하나의 꼭지점인 젖꼭지로 집중되어 오뚝하게 발기되는 것이다. 그러나 ‘잡음’에 노출된 다른 한쪽은 전혀 즐겁지도 흥분되지도 않는다. 유방의 신경조직과 유선들은 제멋대로 흩어지고 산발적으로 움직인다. 프랑스 철학자 줄리아 크레스테바(Julia Kristeva)가 더럽거나 불결한 오브젝트(Abject)가 혐오감을 유발하지만 오히려 인간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던가? 은밀히 포장되어 있어야 할 여성 성기는 마치 무한한 유혹과 비밀을 감춘 채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동굴 같다. 이 정도면 문정희 시인의 <치마> 정도로는 감춰질 수 없는 심연의 본능에 가깝다.

<Torso - The Holy Porta>

그녀의 많은 작품은 고전 여성상과 거리가 먼 기괴함의 극치로 시각화된다. 과감한 노출과 뻔뻔스러운 자세, 기형적·변태적 형상은 화면을 흘러넘치는 분홍과 선홍색의 붓 터치로 효과가 증폭된다. 유혹적이면서 불길해 보이는 핏빛 핑크 화면은 그로테스크한 과장으로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며 부계적(父系的) 상징계로부터 모계적(母系的) 상상계로의 탈출이라는 대역전의 기시감을 안겨준다고 어느 평론가는 말했다. 좋은 말들이다. 다만 금삿갓의 입장에서는 미술이라는 것이 너무 현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어서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이다. 그러려면 차라리 철학서적을 읽는 게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에 기억해 두는 것이 편하고 좋다. 그녀의 원색적인 그림도 좋지만 드로잉 작품들 또한 금삿갓의 눈에는 정말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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