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금삿갓이 참가하는 한시(漢詩) 모임인 옥류시사(玉流詩社)에서 지난 연말에 지금까지 지은 회원들의 자작시를 10수 범위 내에서 간추려 첫 시집인 <옥류정(玉流亭)에 올라앉아>를 간행했다. 첫 시집인 만큼 그냥 넘길 수가 없어서 자축(自祝)의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그래서 병오년(丙午年) 벽두(劈頭)인 12일 인사동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래도 명색이 출판기념회인데 수록 작가들인 우리 시사원(詩社員)만 모이긴 뭔가 부족하여 그동안 각자 마음에 빚이 있는 분들 3명 이내로 초대하여 조촐한 행사를 열기로 했다. 출판기념회란 사전적 의미로 책을 비롯한 저작물을 출판할 때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열리는 행사를 말한다. 우리 옥류시사의 출판기념회는 우리의 잔치인 고로, 출간한 책인 시집을 강매(强賣)한다거나 찬조금(贊助金)을 받는 것 없이 그야말로 순수한 우리의 주머니를 털어서 행사를 준비하고, 초청한 내빈들에게 시집을 선물하며, 음식과 주류를 대접하기로 했다. 장소는 인사동 소재 이태리 음식점 겸 갤러리인 <레스토랑 담>에서 45명이 참여한 조촐하면서도 알차고 성대한 출판 기념회를 성공리에 마쳤다.
우리끼리 소박하게 준비한 출판 기념회이다 보니 진행이나 이벤트에 아마추어적인 어설픔이 많았지만 마치 초등학생들의 학예회 같은 마음으로 정성껏 잘 치렀다. 대강의 내용을 보면 아래와 같다.
1. 장소 세팅 :
- 시사 회원 드레스 코드 : 옥색(玉色) 복장이나 치장물
- 출판기념회 축하 현수막 제작 부착(충주 서동형 시백詩伯의 갈필葛筆 휘호)
- 참가자 좌석 세팅
- 방명록 데스크 설치 및 증정용 시집 준비
- 사회자 : 시사 회원 중 1분 담당
2. 식음료 준비 :
- 주메뉴 : 파스타와 새우 리소토
- 사이드 메뉴 : 야채샐러드와 피자
- 주류 : 레드 와인
3. 제1부 행사 :
- 옥류시사 리더의 인사말
- 지도 훈장님 축사
- 내빈 대표 2분 축사
4. 제2부 행사 :
- 건배사 : 회원 중 1분
- 식사 및 음주 환담
5. 제3부 행사 :
- 시집 출판 과정 소개 : 출판담당
- 출간 시인들 각자 자기 및 초청자 소개, 자작시 낭독 또는 장기자랑
- 초청 내빈의 인사말(원하는 사람)
- 지도 훈장의 시창(詩唱) 시연(示演)
- 크로징 멘트.
이런 순서로 진행되었는데, 참석자 모두가 대단히 짜임새 있고 재미있었다는 반응이라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 현실을 둘러보면 곧 지방자치단체 선거일이 다가오고 있다. 현실적으로 출판기념회를 가장 짭짤하게 활용하는 부류들은 정치인들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출판기념회하면 정치인이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출정식(出征式)을 갖는 동시에 정치후원금을 모집하기 위한 행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도 대부분의 출판기념회는 정치인들의 수금(收金) 행사로 변질되어 버렸다. 현실적으로 출판기념회를 하는 횟수를 보면 문학가나 작가보다 정치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서 문학가나 작가들은 이젠 출판기념회를 열지 않고 정치인들과 차별화를 위해 북콘서트 또는 북토크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개최한다.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를 빙자(憑藉)하여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행위를 선호하는 이유는 현행 정치자금법의 입법 미비에 기인된 것이다. 출판기념회에서 책 대금 형식으로 납부되므로, 모금 액수에 상한선이 없고, 모금 내역의 공개 의무나 과세의무도 없다. 또한 이 행사의 수익금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할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거철만 되면 마치 철새들이 돌아오듯이 너도 나도 출판기념회를 열어서 거금을 조성하는 것이다. 더욱 웃기는 것은 선거철이 되면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언제 그리 글을 잘 쓰고, 빨리 쓰는지 단기간에 책을 출판한다.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그 책의 내용을 읽기나 하는지는 둘째 치고, 작가는 자기가 쓴 책의 내용을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의심스럽다.
현실적으로 이 시기는 대필(代筆) 작가들의 호황기이기도 하단다. 이들만 바쁜 것이 아니다. 선거철이 다가오고,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잦아지면 유관기관 및 기업의 대관(對官) 업무 담당자들 또한 바빠진다. 여기저기 출판기념회를 쇼핑하듯이 다니면서 수십만 원씩 기부하고 챙겨 오는 것은 흉내로 한두 권의 책이 고작이다. 어떤 정치인은 출판사에 주는 수수료가 아까워 1인 출판사를 차리는 경우도 있고,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대에 이르는 대필 작가료가 아까워 보좌진에게 집필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 대관 담당자들이 출판기념회 현장에서 봉투에 5만 원권 여러 장을 담아 넣는 것은 기본이다. 국회 보좌진 출신인 기업 대관 담당자는 “의원 출판기념회가 열리면 현금으로 들어온 돈을 일일이 세어 정산하느라 아무도 퇴근을 못 했다.”며 “아무리 못해도 한 번에 최소 7,000만 원은 들어온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국회의원은 똑같은 행사를 서울과 자기 지역구 또는 상임위 소관 기관이 많은 지역에서 순회하면서 개최하기도 한다. 의원 지역구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릴 경우 지역 유지 등 ‘큰손’들의 지갑이 열리기 때문에 단위부터 달라진다고 한다. 대기업의 경우 주요 ‘마크’ 대상 의원에 대해 책값으로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대까지 ‘투자’ 하기도 한다. 세무조사 등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의원실 대신 출판사를 통해 별도로 카드 결제를 하고, 회사에는 ‘연구비’ 또는 ‘자료비’ 명목으로 비용 처리를 하는 식이다. 한 협회 관계자는 “책 수십 권의 값을 치른 뒤 실제로는 한두 권씩만 챙겨 온다”며 “나머지 책값은 사실상 의원이 다 가져가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정치권과 출판계가 안고 있는 웃지 못할 현실이다.(금삿갓 芸史 琴東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