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무하유(無何有)>에서 노닐고 싶을 때

by 금삿갓

일전에 고교 동기생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필자 금삿갓과 3년을 동문수학했지만, 직장 생활부터는 띄엄띄엄 보면서 50년 이상을 보낸 사이다. 그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은퇴하자 뒤도 안 돌아보고 훌쩍 안동의 학가산(鶴駕山) 밑으로 낙향했다. 그곳에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짓던 전지(田地)와 구옥(舊屋)이 있었다. 고향에 바늘 하나 꽂을 땅이 없는 금삿갓이야 돌아가려도 갈 곳이 없어서 한양에 머물지만 그런 결단을 한 그 친구가 대단하다. 그곳에서 사과 과수원을 하면서 가을이면 동창생들에게 손수 농사를 지은 사과의 맛도 보여주고 제법 여유 있는 생활을 한다. 필자 금삿갓이 은퇴하고, 고향 안동대에서 3년간 교편을 잡을 때 교정에서도 우연히 몇 번 조우(遭遇)했다.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농업 기술연수 과정을 공부한다고 했다. 요즘은 공부하지 않는 농부는 농사를 지을 수 없다고 한다. 귀농한 지 몇 년 만에 2025년도 ‘경북 농업 명장 및 농업인 대상’의 과수 화훼(花卉) 부문 농업인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희(古稀)를 넘긴 늙은 농부가 그것도 한평생 농사를 짓지 않고 직장 생활하다가 귀농해서 적응하기도 어려울 텐데, 대상까지 받은 그가 존경스럽다. 그는 겨울의 농한기나 농사일 짬짬이 농업 기술 공부도 하지만 매우 보람 있는 취미활동도 한다. 서울에서 언제부터 익힌 솜씨인지 몰라도 대금(大笒)을 연주하는 것이 악사 수준이다. 거주하는 집에 시설을 설치해서 틈나는 대로 연주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룹 연주단을 만들어 지방의 경로잔치나 각종 행사에 무료로 재능기부 연주 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있다. 개인의 예술적 재능을 활용하여 지역사회에 문화의 향기를 보급하는 것이 필자의 눈에는 최고의 보람으로 보인다. 이런 친구가 전화로 불쑥한다는 말이 집을 손수 그럭저럭 꾸몄단다. 정원이랑 방실(房室)을 마련했으니 뜻이 통하는 친구와 친지들을 불러 모아 같이 즐기는 장소로 활용하고 싶단다. 그래서 거기에 합당한 이름을 하나 지어 달라는 것이다. 학문도 일천(日淺)하고, 과문(寡聞)한 금삿갓이 무슨 재주로 이름을 짓겠냐고 사양했지만, 동기 중에 한시(漢詩)도 짓고 글줄이나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필자에게 부탁하니 무조건 작명하라고 강권(强勸)이다. 이렇게 되어 팔자에 없는 작명소 역할을 하게 된 경위를 밝히는 바이다.

무릇 사물에 이름이 없을 수 없다. 김춘수 시인의 <꽃>을 암송해 보아도 그 이름의 중요함을 더 말해 무엇하랴. 사물은 대체로 처음 발견하거나 만든 사람이 이름을 붙이는 게 관례(慣例)다. 사람의 이름은 예로부터 여러 가지 형태로 사용했다. 본명·아명(兒名)·관명(冠名)·별호(別號)·시호(諡號)·능호(陵號) 등 다양하다. 집이나 정원은 사물이나 없던 이름을 붙일 수 있고, 새로 조성할 때 이름을 짓기도 한다. 사람 이름 중 본명은 대체로 세대의 항렬자가 음양오행 등의 방법으로 가문마다 정해져 있어서, 성을 뺀 이름 두 자 중 오롯이 자기를 나타내 글자는 대부분 한 글자이다. 기타 이름은 대체로 짓는 사람의 뜻에 따라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짓는다. 물론 시호나 능호는 조정의 예조(禮曹)에서 대상자의 삶과 공적 기타 상황을 감안하여 그를 잘 나타내는 글자로 격식에 맞게 짓는다. 개인의 별호를 짓는 방법에 대해서는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가 <백운거사어록(白雲居士語錄)>에 일찍이 잘 정리해 두었다. 그는 중국의 사례를 참고하여 첫째, 소거(所居) 즉 거처하는 곳의 지명이나 사물의 이름을 차용하며, 둘째는 소축(所蓄)으로 그 집 안팎에 두고 즐기는 사물을 가지고 호로 하거나, 셋째는 소득(所得)인데, 이는 자기의 처지에서 이루고 싶은 소망이나 포부를 나타내는 말로 짓는 것이다. 후대에 다양한 작호법을 여러 사람들이 주장했지만 대체로 이 범주이고, 약간의 변화가 있을 뿐이다. 사람의 별호도 이를진대, 그 친구가 설명해 준 정원과 방실의 용도와 바라는 바를 잘 들었으니 여기에 합당한 것을 지으면 될 듯하다. 이는 바로 이규보의 소득지호(所得之號)에 해당하겠다.(이름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으면 https://brunch.co.kr/@0306a641d711434/19 참조 바람.)

우선 집의 외부를 형성하고 더 넓은 공간인 정원의 이름을 3 글자로 표현해 달라고 해서, 필자 금삿갓은 <무하유(無何有)>로 정했다. <무하유(無何有)>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의 준말이다. 그 '어디에도 있지 않은 그런 곳'이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 편에 나오는 말이다. 이는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도(道)가 실현된 이상적인 곳으로 생사, 시비, 지식, 마음, 행위 등 모든 대립과 분별이 사라진 평화로운 상태를 상징한다. 즉 장자는 이 경지를 “끝없이 넓은 들판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곳”으로 묘사하며, 세속적 욕망과 집착을 벗어난 초월적 세계로 표현할 수 있다. 서양의 유토피아(Utopia) 즉 이상향과 동양의 물질적 표현으로는 무릉도원(武陵桃源)에 해당하겠다. 위(魏)나라의 사상가 혜자(惠子)가 장자에게 구불어지고 혹이 있으며 크기만 하고 쓸모없는 나무에 빗대어 장자의 학설이 쓸모가 없다고 하자, 장자가 반박하면서 한 이야기다. “今子有大樹(금자유대수), 患其無用(환기무용), 何不樹之於無何有之鄕(하불수지어무하유지향), 廣莫之野(광막지야), 彷徨乎無爲其側(방황호무위기측), 逍遙乎寢臥其下(소요오침와기하)? 不夭斤斧(불요근부), 物無害者(물무해자), 無所可用(무소가용), 安所困苦哉(안소곤고재)! / 지금 자네는 큰 나무가 있어도 그것이 쓸모없다고 걱정하네. 왜 그것을 어디에도 없는 곳의 그 드넓은 들판에 심어서, 그 주변을 느긋하게 어슬렁거리거나 나무 아래에서 유유자적 낮잠이나 청하지 않는가? 도끼에 잘릴 일도 없고 달리 해를 끼치는 자도 없을 것일세. 그러니 쓸모없다는 것이 어찌 근심거리가 되겠는가?” 이 말은 훗날 시인들의 시에도 인용된 것이 많다. 하나만 들면 이인로(李仁老)의 <독도잠전희성정최태위(讀陶潛傳戲成呈崔太尉) / 도연명전을 읽다가 즐겁게 지어서 최태위에게 주다>의 마지막 구절이다. “不醉亦不醒(불취역불성) 徑到無何有(경도무하유) / 취하지도 깨지도 않아, 어느새 무하유에 이르네.) 이 이름은 그 친구 거소가 소재하는 지역과도 잘 연결된다. 바로 학가산(鶴駕山) 기슭에서 흘러나오는 정기가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학가(鶴駕)란 말은 옛날부터 신선들이 타고 다니던 교통수단이다. 신선들은 학(鶴)이나 난(鸞)을 타고 다녔단다. 그러니 이곳이 신선이 노닐던 곳이고, 현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신선들의 세상인 것이다. 또한 주변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봉정사도 있다.

다음은 방실(房室)의 이름이다. 건축물 전체를 나타내는 용어는 그 규모나 격에 따라 대체로 전(殿)>당(堂)>각(閣)>합(閤)>재(齋)>헌(軒)>루(樓)>정(亭)의 순(順)이다. 합(閤)이 각(閣)보다 위라는 학설도 있다. 그런데 요청 사항은 건축물 전체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방(房) 하나를 4 자의 글자로 표현해 달라고 했다. 마음 맞는 벗들과 모여서 정답게 밤 지새우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공간의 의미를 담아달란다. 그래서 필자 금삿갓은 그 이름을 <이연공촉(怡然共燭)>으로 정했다. 그 뜻을 보면 이연(怡然)은 즐겁고 편안하거나 기뻐하는 상태를 의미하니 행복하거나 만족스러운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공촉(共燭)은 같이 촛불을 밝히는 것으로 밤새도록 정담을 나누는 상황을 말한다. 문학적으로 공촉은 다른 말로 전촉(剪燭)이라고도 하는데, 촛불의 타버린 심지를 가위로 잘라내어 불심지를 돋으면서 정담을 나누는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쁘고 즐겁게 벗들과 밤새워 촛불을 밝히는 곳'이다. 금삿갓이 이 낱말을 세상에서 초연한 시인이었던 두보(杜甫)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당(唐) 나라 숙종(肅宗) 때인 758년에 두보가 형부상서 방관(房琯)을 위한 상소를 올렸다가 화주(華州) 사공참군(司工參軍)으로 강등되어 임지로 가다가 포주(蒲州)에 은거하고 있는 옛 친구인 위씨(衛氏) 집안의 8번째인 위대경(魏大經)의 조카를 찾아가서 회포를 읊은 시이다. 제목은 <증위팔처사(贈衛八處士)>로 오언배율(五言排律)인데, 오랜만에 만난 벗과의 절절한 우정이 두보의 감성으로 잘 나타나 있다. 필자 금삿갓이 이렇게 이름 지으면서 바람도 또한 그 친구를 찾아오는 벗들이 이런 감정으로 그 방에서 밤을 새기를 기원해 본다. 시의 전문을 싣는다.

人生不相見(인생불상견) 動如參與商(동여삼여상)

인생에서 서로 못 보는 것이 저녁별과 새벽 별의 움직임과 같네.

今夕復何夕(금석부하석) 共此燈燭光(공차등촉광)

오늘 밤은 또 어느 밤이기에 이렇게 같이 등불을 밝히나?

少壯能幾時(소장능기시) 鬢髮各已蒼(빈발각이창)

젊은 시절이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각자 머리가 세었나.

訪舊半爲鬼(방구반위귀) 驚呼熱中腸(경호열중장)

옛 친구들 찾아보니 반은 죽었고, 놀란 소리에 속이 타구나.

焉知二十載(언지이십재) 重上君子堂(중상군자당)

어찌 알았겠는가, 스무 해 뒤에 다시 그대의 집에 오게 될 줄.

昔別君未婚(석별군미혼) 兒女忽成行(아녀홀성항)

옛 이별 때 자네는 미혼이었는데, 아이들이 홀연히 줄을 이루었네.

怡然敬父執(이연경부집) 問我來何方(문아래하방)

기쁘게 아비의 친구를 공대하며 내게 어디서 왔는지 묻는구나.

問答乃未已(문답내미이) 驅兒羅酒漿(구아나주장)

문답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을 시켜 술상을 차려오네.

夜雨剪春韭(야우전춘구) 新炊間黃粱(신취간황량)

밤비에 봄 부추 베어서, 기장을 섞어 새로 밥을 지었네.

主稱會面難(주칭회면난) 一舉累十觴(일거누십상)

주인은 만나기 어려웠다며, 일거에 십여 잔이로다.

十觴亦不醉(십상역불취) 感子故意長(감자고의장)

열 잔에도 취하지 않는 것은 그대의 오래고 긴 정을 느꼈기에.

明日隔山岳(명일격산악) 世事兩茫茫(세사량망망)

내일이면 산들이 사이를 막아 세상일이 둘 다 아득할 테니.(금삿갓 芸史 琴東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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