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나폴레옹이 먼저 놀란 선비의 멋 – 갓

by 금삿갓

금삿갓의 고향 마을에서는 “갓끈이 길다.”라는 말은 학벌이나 학문이 있다는 뜻이고, “갓끈이 짧다.”라는 말은 그 반대로 여겼다.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않는다는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라는 말보다 더 많이 듣고 자랐다. 중국에 절영지회(絶纓之會) 또는 절영지연(絶纓之宴)이라는 고사가 있는 걸로 봐서 그들도 오래전부터 갓을 쓴 모양이다. 춘추시대 중국 초(楚) 장왕(莊王)이 신하들과 연회를 베푸는데 자신의 후궁들이 시중을 들게 했다. 연회가 한창 진행되던 중,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연회장의 촛불들이 일순간에 꺼졌다. 그 순간 한 여인이 앙칼지게 외쳤다. 어둠을 틈타서 누군가가 가슴을 만지고 볼에 입맞춤을 하기에, 자신이 그 자의 갓끈을 뜯었으니 장왕께서는 어서 불을 켜서 그 무엄한 자를 처벌해 달라고 했다. 자신의 후궁을 희롱한 무례한 신하가 괘씸하고 자신의 위엄이 희롱당한 것 같은 노여운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 순간 장왕은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 자리는 내가 아끼는 이들의 공을 치하하기 위해서 만든 자리다. 이런 일로 흥을 깨면 온당치 않으니 이 자리의 모든 신하는 내 명을 들어라!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갓의 끈을 모두 잘라 버리도록 하라!” 그리고 모든 신하가 갓끈을 자른 뒤에야 연회장의 불을 켜도록 했다. 그래서 아무 일 없이 흥겨운 연회를 계속할 수 있었고, 범인도 무사했다. 몇 해 뒤에 큰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장왕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초나라의 수호신이 되어 온몸이 붉은 피로 물들며 흡사 지옥의 야차(夜叉)처럼 용맹하게 싸워서 장왕을 구하고 초나라를 승리로 이끈 장수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그 범인이었다.

<바질 홀(Basil Hall)이 기록한 조선 여행기>

우리의 갓은 고려 공민왕 대에 검은색의 갓에 수정으로 만든 정자(頂子)를 달아서 양반이 쓰고, 흰 갓은 평민이 쓰는 법을 정했다고 하니, 지금 우리에게 친숙한 양반의 갓인 흑립(黑笠)은 이때 본격적으로 등장한 셈이다. 하지만 갓이 널리 유행한 것은 조선시대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대군(大君)은 금정자, 정 3품 이상은 은정자,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원·관찰사·절도사는 옥정자, 감찰은 수정 정자를 사용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갓은 우리 선조들의 머리 장식 형태인 상투와 결합하여 아주 자연스러운 복식이다. 조선 시대 양반의 멋과 품위인 갓의 문화가 유럽에 알려지자 감탄을 발한 사람이 나폴레옹이란다. 200년 전 유럽을 뒤흔들었던 나폴레옹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대패하고 결국 실각하여 세인트헬레나섬에 감금된 채 실의에 빠져 여생을 보냈다. 당시 영국 해군 장교였던 바질 홀(Basil Hall, 1788∼1844)은 1816년에 조선의 서해안과 일본 류구국(琉球國)오키나와를 탐사하고 돌아가는 길에 나폴레옹이 유배(流配)돼 있던 세인트헬레나섬에 들렀다. 세상을 모두 잃고 좌절한 나폴레옹은 적국인 영국의 하급 장교와 만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홀의 아버지 제임스 홀(James Hall)이 나폴레옹과 군사학교 동창이라 마지못해 만났다. 하지만 홀이 가져온 조선의 그림을 보는 순간 나폴레옹은 눈을 반짝이며 깊은 관심을 보였다. 나폴레옹은 “노인네가 큰 모자, 긴 흰 수염에 손에는 기다란 파이프를 쥐고 있네. 정말 멋진 그림이야!”라며 감탄했다. 나폴레옹 이후 구한말 한국을 여행한 서양 여행가들은 ‘한국은 모자의 나라’라고 감탄하며 작은 키를 커버하고 화려한 패션을 자랑하는 훌륭한 예술 작품이라 격찬했다. 그러던 갓이 우리나라에는 아직 인기가 없었는데, 200년이 흐른 뒤에 K-Pop를 타고 다시 세계적인 인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2019년 넷플릭스에 오픈한 한국판 좀비물 <킹덤(Kingdom)> 속 조선의 갓과 모자는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로 인해 2025년 현재까지 한국 드라마로서는 시리즈 4까지 계속 제작되고 있으며, 전 세계인은 한국의 갓과 모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2025년 전 세계는 판타지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열광하고 있다. 그중 사자보이즈가 쓴 갓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때문에 바티칸에 세워져 있는 김대건 신부상까지 더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김대건 신부의 갓이 사자보이즈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외국인이 한국의 갓에 열광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나폴레옹 이래로, 100여 년 전에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조선의 모자에 주목했다. 샤를 바라(Charles Varat)는 <조선기행(Deux Voyages en Coree)>에서 "조선은 모자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이들의 모자 패션은 파리인들이 꼭 알아둘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모자는 당시 서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에는 조선의 모자가 매우 독특했을 것이다. 그 당시 조선은 모자의 니라이다. 의관 정제(衣冠整齊)를 중시하였던 조선의 성인 남자들은 잠을 잘 때 이외에는 언제 어디서나 반드시 모자를 썼다. 모자를 쓰지 않은 '맨 상투차림'은 유교적 예(禮)에 어긋나는 일로 여겼고, 모자의 왕국이라 불릴 만큼 때와 장소 및 신분에 따라 다종다양한 모자를 착용하였다. 공식적인 자리에는 공복(公服)에 사모(紗帽)를, 즉위식이나 왕실 제례 등 의례적인 행사에는 조복(朝服)에 금관이나 제관을 썼다. 평상시 밖에 나갈 때는 갓을 비롯하여 패랭이·초립(草笠)·벙거지·방립(方笠)·삿갓 등을 썼다. 물론 실내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탕건(宕巾)·정자관(程子冠)·방관(方冠)·복건(幅巾)·동파관(東坡冠)·충정관(沖正冠) 등 유건(儒巾)을 썼다. 추운 겨울에는 이엄(耳掩)·휘항(揮項)·풍차(風遮) 등 방한용 모자를 썼다. 그래서 모자의 종류별 명칭은 관(冠)·면(冕)·건(巾)·변(弁)·모(帽)로 나뉜다. 이러한 많은 조선의 모자들 중에서 선비들이 가장 애호한 모자는 갓(黑笠)이다. 선비들은 대나무와 말총을 주재료로 삼은 초립(草笠)이나 마미립(馬尾笠)을 사용하였고, 먹칠과 흑칠을 더한 흑립을 착용하였다.

<도포에 갓을 쓴 금삿갓>

갓은 색상에 따라 흑립(黑笠)·백립(白笠)·주립(朱笠)으로 나뉘며, 재료와 사용하는 용도에 따라 분류된다. 흑립은 평상시에 사용하는 검은색 갓으로, 대나무나 말총으로 갓의 몸체를 만들고 그 위에 비단이나 무명 등으로 싼 후 검은색 옻칠을 한 것이다. 백립은 상중(喪中)에 쓰는 갓으로, 대나무로 갓 틀을 만든 뒤 흰색 베를 입힌 것이다. 주립은 붉은색 갓으로, 갓 모양을 만든 후 붉은 옻칠을 한 것이다. 주립은 조선시대 문무 당상관이 융복(戎服)인 철릭을 입을 때 착용한 것이다. 주립에는 호랑이 수염 장식인 호수(虎鬚)를 꽂고 색깔이 있는 구슬로 만든 갓끈을 단다. 현종(顯宗)은 온천에 거둥 할 때 보리 풍년이 크게 든 것을 매우 기뻐하여 수행하는 신하들에게 보리 이삭을 꽂아 풍년을 기념하게 하였고, 그 후 영조 때에는 가난하여 호수(虎鬚)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보리 이삭으로 대신한다고 하였다. 턱 아래에서 묶어 갓을 머리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갓끈(纓)은 실용적인 목적의 직물로 된 것과 장식용으로 나뉜다. 장식용 갓끈은 신분에 따라 재료가 정해져 있다. 1품에서 3품까지는 금이나 옥을 사용하였으며, 1502년(연산군 8)에는 산호(珊瑚)·유리(瑠璃)·명박(明珀)의 사용을 금하였다. 1522년(중종 17)에는 마노(瑪瑙)·호박(琥珀)·산호(珊瑚)·청금석(靑金石)의 갓끈은 당상관 이외에는 일절 금한 기록이 있다.

<갓의 구조 : 서울역사박물관>

갓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면 상투와 머리 부분에 쓰는 대우, 햇빛을 가기는 챙인 양태(凉太)와 묶는 줄인 갓끈(립영, 笠纓)으로 구성된다. 이런 멋진 모자인 갓을 쓰는 데도 그에 알맞은 방법이 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갓 쓰고 망신당하기 일쑤이다. 그래서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사소절(士小節)>에서 갓을 쓸 때 주의할 점을 몇 가지 기록해 두었다. “첫째, 갓의 끈이 넓어서는 안 된다. 갓이 비록 낡았더라도 단정하게 쓰도록 해야 한다. 둘째, 망건(網巾)은 머리를 거두기만 하면 되므로 바짝 졸라매서 이마에 눌린 자국이 있도록 해서는 안 되고, 느슨하게 매어 살쩍이 흐트러져 있게 해서도 안 된다. 눈썹을 덮어 누르도록 해서도 안 되고 눈초리가 당겨 올라가도록 해서도 안 된다. 셋째, 선비가 비록 바쁘고 피곤하더라도 머리 위에는 잠시라도 갓이 없어서는 안 된다. 다만,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나 부모의 상(喪)을 당하여 머리를 풀고 있는 자식은 갓이 없어도 좋다. 넷째, 갓을 푹 눌러쓰고 갓 밑에서 곁눈으로 남의 기색을 살피는 것은 바른 기상을 가진 자라면 할 짓이 아니다. 다섯째, 갓을 쓸 때는 갓을 젖혀 써서도 안 되고, 갓끈을 손으로 잡고 있어서도 안 되며 흐트러지게 해서도 안 된다. 또한, 갓끈이 귓등으로 지나가게 해서도 안 된다. 여섯째, 갓에 대로 만든 갓끈을 다는 것은 시골에서는 무방하나 도시에서는 삼가는 것이 좋다. 복건(幅巾)에 갓을 덧쓰는 것은 편리한 점이 있으나 그런 모습으로 문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정말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 선비의 자세를 강조하는 듯하다. 옛 선비들의 멋이 21세기에 들어와서 후손들보다 더 세계인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열광하는 것을 보니 우리 민족의 멋에 대한 콘텐츠 확장이 무궁무진한 것 같다.(금삿갓 芸史 琴東秀)

매거진의 이전글32. 출판기념회라는 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