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題蒼頡造字臺(제창힐조자대)
금삿갓의 漢詩工夫(260203)
題蒼頡造字臺(제창힐조자대) / 창힐의 글자 만든 재에서 짓다.
- 岑參(잠삼)
野寺荒臺晩
야사황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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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의 절 황폐한 누대에 날 저문데
寒天古木悲
한천고목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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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차고 고목만이 쓸쓸하구나.
空階有鳥跡
공계유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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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섬돌에 새 발자국이 있으니
猶似造書時
유사조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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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글자를 만들던 그때 같네.
* 蒼頡(창힐) : 중국 고대의 전설상에 한자를 창제했다는 사람. 황제 때의 사람으로 누대(樓臺)에 있는 새(鳥)의 발자국(足跡)을 보고 처음으로 문자(文字)를 만들었다고 전(傳)한다.
此(차)는 參(삼)이 題蒼頡造字臺(제창힐조자대)라. 見荒蕪之古臺(견황무지고대)가 屹立於野寺中(흘립어야사)하고 蕭條之古木(숙조지고목)은 自悲於寒天下(자비어한천하)하니 追思古人(추사고인)에 曠感(광감)이 自多(자다)하고 空虛無人之階砌(공허무인지계체)에 有飛鳥之跡(유비조지적)하니 于今(우금)에 猶似蒼頡(유사창힐)이 造書之時也(조서지시야)라.
이 시는 잠삼이 창힐의 조자대에서 지었다. 황량하게 우거진 옛 누대가 들판의 절에 우뚝 서 있는 것을 보고, 쓸쓸한 고목의 가지가 추운 세상에서 스스로 슬퍼하니, 고인을 추모하여 생각함에 공허한 느낌이 절로 많다. 텅 비어 사람 없는 섬돌에 나는 새의 발자취만 있으니 지금에도 오히려 창힐이 글자를 만들던 옛 시절과 같다는 말이다.
* 岑參(잠삼) : 715 – 770 盛唐(성당)의 시인. 호북성 南陽(남양) 사람인데 荊州(형주), 江陵(강릉)으로 옮겨 살았다. 태종 때의 재상 岑文本(잠문본)의 후손으로 玄宗(현종) 天寶(천보) 3년(744)에 進士及第(진사급제)하고, 天寶(천보) 7년(748) 安西 節度使(안서 절도사) 高仙芝(고선지) 장군 밑에서 掌書記(장서기)로 있다가, 安西北庭都護 封常淸(안서북정도호 봉상청)의 節度判官(절도판관)이 되어 新疆(신장)으로 가서 변방 지방의 생활을 체험했다. 安西(안서)는 西邦(서방)을 안정시킨다는 뜻으로, 원래 治所(치소)인 龜玆(구현, 신장성 천산남로 고차庫車)에 都護府(도호부)를 두고 西域(서역)을 警界(경계)하고 있었다. 그곳은 당나라 영토의 서쪽 끝이었다. 그래서 그는 변방의 황량한 풍경, 전장의 참혹함 등을 노래한 변새시(邊塞詩)로 유명하다. 전장 속에서 두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해 가는 군인들의 영웅적 기개나 전장의 비극을 잘 그려내었다. 安祿山(안록산)의 난 때에는 숙종 아래에서 右補闕(우보궐), 技居郞(기거랑)등을 역임하였고, 괵주자사로 나갔다가 太子中允(태자중윤)이 되고, 여러 벼슬을 거쳐 虞部正郞(우부정랑), 庫部正郞(고부정랑)으로 전직되었다가 지방으로 나아가 嘉州刺史(가주자사)를 역임한다. 그래서 그의 문집을 岑嘉州集(잠가주집)이라 한다. 高適(고적)과 함께 高岑(고잠)이라 칭해지며, 邊塞詩(변새시)의 두 거목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두 시인은 李白(이백)과 杜甫(두보)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