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見渭水思秦川(견위수사진천)

금삿갓의 漢詩工夫(260203)

by 금삿갓

見渭水思秦川(견위수사진천) / 위수를 보면서 진천을 그리워하다.

- 岑參(잠삼)


渭水東流去

위수동류거

●●○○●

위수는 동쪽으로 흘러가서


何時到雍州

하시도옹주

○○●○○

어느 때에 옹주에 도착할까?


憑添兩行淚

빙첨양행루

○○●●●

두 줄기 눈물을 핑계로 보태어


寄向故園流

기향고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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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을 향하여 흘려보내리.

* 渭水(위수) : 甘肅省(감숙성) 위원현, 조서산에서 발원하여 함양, 위남을 지나 화음에 흘러 黃河(황하)와 합류하는 강.

* 秦川(진천) : 장안을 중심으로 한 산서성과 감숙성을 아우른 平野地方(평야지방)의 범칭.

* 雍州(옹주) : 長安地方(장안지방)을 예로부터 부르던 지명.


渭水(위수)는 出隴西郡(출농서군)하여 東至京兆入河(동지경조입하)라. 雍(옹)은 在秦中(재진중)하여 流爲秦川(류위진천)이라. 雍州(옹주)는 參之故國也(삼지고국야)라.

위수는 농서군에서 나와서 동으로 경조(서울)에 이르러 황하에 들어간다. 옹은 진나라 가운데 있어 흐르면 진천이 된다. 옹주는 잠삼의 고향이다.

〇 渭水秦川(위수진천)이 只隔秦嶺(지격진령)하여 爲兵戈阻塞而不得通故(위병과조새이부득통고)로 見渭水東流而問其何時(견위수동류이문기하시)에 到雍州耳(도옹주이)라.

위수와 진천이 다만 진령으로 막혀 군사적 요새가 되어, 통할 수 없으므로 위수가 동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는 어느 때나 옹주에 이를까 물은 것이다.

參(삼)이 在軍中(재군중)하여 思家之切(사가지절)하여 通故園者(통고원자)는 惟有此水故(유유차수고)로 將兩行眼淚(장양행안루)하여 憑此渭水以寄到故園而已(빙차위수이기도고원이이)라.

잠삼이 군중에 있어서 집 생각이 간절하여, 고향으로 통하는 것는 오직 이 물 뿐이므로, 장차 두 줄기 눈물을 흘려서 핑계 삼아 이 위수의 물에 보내어 고향에 이르게 할 뿐이다.

亦是從軍中(역시종군중)하여 不得顧家(부득고가)하여 無暇爲思家之意也(무가위사가지의야)라.

또한 종군 중이므로 집을 돌아볼 수 없어 집 생각을 할 여가가 없다는 뜻이다.

* 岑參(잠삼) : 715 – 770 盛唐(성당)의 시인. 호북성 南陽(남양) 사람인데 荊州(형주), 江陵(강릉)으로 옮겨 살았다. 태종 때의 재상 岑文本(잠문본)의 후손으로 玄宗(현종) 天寶(천보) 3년(744)에 進士及第(진사급제)하고, 天寶(천보) 7년(748) 安西 節度使(안서 절도사) 高仙芝(고선지) 장군 밑에서 掌書記(장서기)로 있다가, 安西北庭都護 封常淸(안서북정도호 봉상청)의 節度判官(절도판관)이 되어 新疆(신장)으로 가서 변방 지방의 생활을 체험했다. 安西(안서)는 西邦(서방)을 안정시킨다는 뜻으로, 원래 治所(치소)인 龜玆(구현, 신장성 천산남로 고차庫車)에 都護府(도호부)를 두고 西域(서역)을 警界(경계)하고 있었다. 그곳은 당나라 영토의 서쪽 끝이었다. 그래서 그는 변방의 황량한 풍경, 전장의 참혹함 등을 노래한 변새시(邊塞詩)로 유명하다. 전장 속에서 두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해 가는 군인들의 영웅적 기개나 전장의 비극을 잘 그려내었다. 安祿山(안록산)의 난 때에는 숙종 아래에서 右補闕(우보궐), 技居郞(기거랑)등을 역임하였고, 괵주자사로 나갔다가 太子中允(태자중윤)이 되고, 여러 벼슬을 거쳐 虞部正郞(우부정랑), 庫部正郞(고부정랑)으로 전직되었다가 지방으로 나아가 嘉州刺史(가주자사)를 역임한다. 그래서 그의 문집을 岑嘉州集(잠가주집)이라 한다. 高適(고적)과 함께 高岑(고잠)이라 칭해지며, 邊塞詩(변새시)의 두 거목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두 시인은 李白(이백)과 杜甫(두보)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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