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行軍九日思長安故園(행군구일사장안고원)
금삿갓의 漢詩工夫(260203)
行軍九日思長安故園(행군구일사장안고원) / 중양절에 행군하며 고향 장안이 그리워
- 岑參(잠삼)
强欲登高去
강욕등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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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높이 오르려 해도
無人送酒來
무인송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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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보내올 사람도 없네.
遙憐故園菊
요련고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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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어여쁜 고향의 국화는
應傍戰場開
응방전장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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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전쟁터 옆에도 피겠지.
陶公(도공)이 居柴桑(거시상)에 九日(구일)에 太守王弘(태수왕홍)이 使白衣送酒(사백의송주)라.
도공(도연명)이 시상(현 강서성 구강시)에 살 때, 9월 9일에 태수 왕홍이 백의(사환)를 시켜 술을 보내온 것이다.
〇 從軍而思故園之作(종군이사고원지작)이니 言身在軍中(언신재군중)하여 邊驚(변경)이 稍息(초식)하니 當此佳節(당차가절)하여 非無高山可遊(비무고산가유)며 秋色可玩也(추색가완야)로대 其奈無人送酒而此興(기내무인송주이차흥)이 遂闌(수란)하고 軍中稍閑而長安(군중초한이장안)이 擾亂(요란)하여 君上(군상)이 播遷而吾鄕故園之菊(파천이오향고원지국)이 恐應爲戰場開矣(공응위전장개의)리니. 傷哉(상재)라.
종군하며 고향을 생각하여 지은 것이다. 몸이 군중에 있어서 변경이 놀랍고 조금 휴식하면서 좋은 절기를 만나 높은 산에 올라 놀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을빛이 완연한데 어찌 술을 보내오는 사람도 없어서, 이 흥이 마침내 가로막혔다고 말했다. 군중은 조금 한가하나 장안이 요란하여 임금이 피난 갔으나, 나의 고향의 국화가 아마 전쟁 중에도 피었으리니 슬프다.
〇 參(삼)이 肅宗時爲御使(숙종시위어사)하고 時至嘉州刺史(시지가주자사)라. 〇 盛唐(성당)
잠삼이 숙종 시대에 어사가 되었고, 이때에 가주자사에 이르렀다. 성당 사람이다.
* 岑參(잠삼) : 715 – 770 盛唐(성당)의 시인. 호북성 南陽(남양) 사람인데 荊州(형주), 江陵(강릉)으로 옮겨 살았다. 태종 때의 재상 岑文本(잠문본)의 후손으로 玄宗(현종) 天寶(천보) 3년(744)에 進士及第(진사급제)하고, 天寶(천보) 7년(748) 安西 節度使(안서 절도사) 高仙芝(고선지) 장군 밑에서 掌書記(장서기)로 있다가, 安西北庭都護 封常淸(안서북정도호 봉상청)의 節度判官(절도판관)이 되어 新疆(신장)으로 가서 변방 지방의 생활을 체험했다. 安西(안서)는 西邦(서방)을 안정시킨다는 뜻으로, 원래 治所(치소)인 龜玆(구현, 신장성 천산남로 고차庫車)에 都護府(도호부)를 두고 西域(서역)을 警界(경계)하고 있었다. 그곳은 당나라 영토의 서쪽 끝이었다. 그래서 그는 변방의 황량한 풍경, 전장의 참혹함 등을 노래한 변새시(邊塞詩)로 유명하다. 전장 속에서 두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해 가는 군인들의 영웅적 기개나 전장의 비극을 잘 그려내었다. 安祿山(안녹산)의 난 때에는 숙종 아래에서 右補闕(우보궐), 技居郞(기거랑)등을 역임하였고, 괵주자사로 나갔다가 太子中允(태자중윤)이 되고, 여러 벼슬을 거쳐 虞部正郞(우부정랑), 庫部正郞(고부정랑)으로 전직되었다가 지방으로 나아가 嘉州刺史(가주자사)를 역임한다. 그래서 그의 문집을 岑嘉州集(잠가주집)이라 한다. 高適(고적)과 함께 高岑(고잠)이라 칭해지며, 邊塞詩(변새시)의 두 거목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두 시인은 李白(이백)과 杜甫(두보)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