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밧줄, 탯줄, 목줄 – 줄줄이 엮인 끈

by 금삿갓

인간은 끈인 탯줄에 연결되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 끈(줄)을 잘라야 비로소 하나의 개체로서 독립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한평생 살면서 바로 이 끈이나 줄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어떻게든 끈이나 줄을 잇던가 좋은 줄을 찾아 줄을 잡기도 한다. 줄로 인해 성공도 하지만 줄로 인해 망하기도 한다. 어떤 인간은 결국에는 이 끈(줄)에 묶여서 교수형(絞首刑)으로 인생을 마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형벌이 아니더라도 알프스의 빙하 속에서 죽은 지 5,100년 된 초기 인류의 얼어붙은 시신에서 밧줄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설인(雪人)은 1991년 빙하가 녹으면서 겹겹이 쌓인 층에서 발견되었는데, 화살을 맞아 죽었다. 밧줄이 없었으면 활이 없고, 따라서 그가 화살을 맞고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을 위해 목줄인 넥타이를 매고, 가방끈을 어깨에 걸치고, 신발 끈을 묶고서 집을 나서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과 밧줄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인류의 오래전 선조 중 누군가 가느다란 섬유질 몇 가닥을 꼬아서 줄을 만들면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도구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실행한 결과이다. 역사상 밧줄이 없었다면 피라미드는 건설되지 못했을 것이며, 콜럼버스는 대양을 건너지도 못했을 것이고, 또한 아메리카도 얻지 못했을 것이며, 에베레스트 정상에도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밧줄의 역사는 인간이 문래로 실을 잣거나 천을 짤 수 있기 이전, 식물의 섬유나 동물의 털이나 힘줄 따위를 꼬아서 그물이나 덫 제작용 끈을 만들던 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밧줄은 프랑스 남동부의 한 동굴에서 출토된 5만 년 된 것으로, 아마도 네안데르탈인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네안데르탈인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풀과 같은 식물의 섬유를 얻어 이를 꼬아서 세 가닥으로 만들고, 그 세 가닥을 다시 반대 방향으로 꼬아서 밧줄을 완성한 것이다. 이 동굴에서 발견된 것은 바로 세 가닥으로 된 밧줄이다. 따라서 네안데르탈인의 사고력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발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피라미드 건설 상상도>

밧줄은 짐승을 수레에 연결하고, 화살을 활에 연결시켰으며, 한때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Xerxes)는 아시아를 유럽에 연결시키기 위해 밧줄을 사용하였다. 그리스 침공 때에 그는 헬레스폰트(Hellespontos) 해협을 건너는 두 개의 다리를 건설했는데, 그 다리들은 아마(亞麻)와 파피루스로 꼰 6개의 거대한 뱃줄로 300척의 닻을 내린 배를 묶어서 만든 것이었다. 군인들은 배에서 배로 건너뛰어 그리스로 침공해 들어갔다.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인들을 격퇴한 후, 크세르크세스의 빗줄을 걷어다가 신에게 바쳤다. 잉카 제국과 같은 문명에서는 기록을 보관하는 데 밧줄을 사용했다. 그들은 이를 키푸(Khipu)라고 불렀다. 가로로 놓인 밧줄에서 세로로 늘어진 밧줄들을 연결하고, 그 세로 밧줄에는 매듭을 묶었다. 매듭의 위치와 종류로 숫자를 나타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인구 조사 데이터나 농업 정보 같은 다양한 데이터를 제국 전역에 전달할 수 있었다. 잉카인들이 구축한 훌륭한 도로망을 따라 전령들이 이 키푸를 운반했다고 한다. 그리스인들은 뛰어난 줄타기(Funambulism)의 명수로 이름이 높았다. "저 줄타기꾼들"이라고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을 경멸하는 투로 불렀으나 벌거벗은 연기자가 관중들의 머리 위에서 줄을 타는 묘기는 로마에서도 매우 인기가 높았다. 어느 날 젊은 공중곡예사가 떨어져 죽자 동정심 많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줄타기를 위한 하나의 관례를 만들었다. 즉 그는 그 후부터 줄타기 곡예를 진행할 때에는 반드시 그 밑에 안전그물을 설치하도록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벽화나 그림에는 밧줄을 만드는 과정이 도해로 나타나 있는데, 그 과정은 본질적으로 오늘날에도 바뀌지 않았다. 섬유를 시계방향으로 꼬아서 실을 만들고, 실을 다시 시계 반대방향으로 꼬아서 가닥을 만들며, 가닥들을 다시 시계방향으로 꼬아서 밧줄을 만든다. 이렇게 방향을 바꾸어 가면서 꼬는 것이 밧줄에 결합력과 힘을 주는 비결이다.

KakaoTalk_20260207_223238515_01.jpg <중국 CCTV 본사 청사 유리창 청소 모습>

기계가 그 작업을 담당하기 전까지는 빈터나 지붕이 덮인 긴 헛간에서 빗줄을 만들었다. 기원전 4천 년 전에 이집트인들도 활용하던 방법은 한 사람이 걸음을 옮기면서 천천히 섬유를 꼬며 뒷걸음질 치도록 되어 있다. 로프워크(Ropewalk)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처음 실을 만들 때 뒤로 걸어가는 모습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대양을 항해하기 시작하면서 상선과 해군 함선들은 튼튼한 밧줄에 대한 엄청난 수요를 갖게 되었다. 따라서 밧줄 제조는 항구 도시에서 큰 사업이 되었다. 모든 항구 도시에 밧줄 공장이 있었다. 예를 들어, 1794년 보스턴에서는 기계공 노동자 중 가장 큰 집단이 밧줄 제조공이었다. 가장 값비싼 유기물 밧줄은 마닐라삼, 사이잘초, 황마, 대마로 만든 것인데, 이러한 섬유는 모두 식물의 잎이나 껍질을 벗긴 것들이다. 말총이나 낙타털, 쇠가죽, 그리고 풀도 밧줄의 재료로 사용된다. 밧줄 제조에 있어서 가장 큰 혁명은 합성섬유와 금속이 도입되면서 일어났다. 낙하산 덮개용 밧줄로 가장 먼저 사용되었던 나일론은 자일을 타고 내려오는 산악인, 수상스키 타는 사람, 450k짜리 수송아지를 올가미를 던져 잡는 목동들이 높이 평가하는 탄성을 가지고 있다. 나일론은 마닐라삼에 비해서 두 배나 강할 뿐만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합성섬유와 마찬가지로 세균활동에 따른 부식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와이어로프(Wire rope)를 발명한 사람은 1830년대에 활동한 윌리엄 알베르트(William Albert)라는 독일 엔지니어이다. 그의 발명에 힘입어 고층빌딩이나 엘리베이터, 거대한 현수교가 건설될 수 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 위의 외줄타기>

줄은 육해상 운송, 공중 이동, 건설, 통신(해저 케이블), 전송(電送), 엔터테인먼트(밧줄 묘기) 스포츠(등반, 패러글라이딩, 수상스키, 줄넘기 등), 우주 탐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반면에 이는 또 구속, 연결, 고통 유발, 그리고 죽음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현대 사회를 네트워크 사회라고 일컬을 때, 이 또한 보이지는 않지만 줄이나 끔으로 연결된 것이다. 6단계를 연결하면 누구라도 미국의 트럼프대통령이나 그린란드의 원주민에게 연결될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인생을 살아가는데 끈이 없으면 안 되지만 그 줄을 잘 잡는 것도 중요하다. 잡은 것이 동아줄이 아니고 썩은 새끼줄이면 낭패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치껏 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어름사니인 곡예사(曲藝師)의 줄타기라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겠지만 정치적 줄타기는 사람들의 지탄을 받기가 일쑤다. 세계적인 줄타기의 명수는 1859년 여름에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넌 장 프랑수아 그라블레(Jean François Gravelet, 별명: 그레이트 블론딘)가 당시 가장 유명했다. 그는 미국에서 캐나다로 건너가서 다시 콜코드라는 남자를 업고 다시 건넜다. 두 사람의 신뢰감이 이를 성공으로 이끈 것이다. 밧줄의 역사 및 인류와의 얽힌 이야기가 궁금하면 Tim Queeney가 지은 <Rope : How a Bundle of Twisted Fibers Became the Backbone of Civilization(밧줄 : 꼬인 섬유 다발이 어떻게 문명의 근간이 되었을까?)>를 읽어 보기 바란다.(금삿갓 芸史 琴東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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