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비굴(卑屈)하지 않겠다고 굴비(屈非)?

by 금삿갓

민족의 명절인 설을 앞두고 있다. 갈수록 각박(刻薄) 해지는 인심이지만 명절이 다가오면 모든 사람들은 마음이 바쁘고 분주하다. 조상을 모시는 차례(茶禮)도 전통 행사이지만 일가친척·친지나 인사를 나누어야 하는 대상과 사업상 거래 상대방 등 다양한 곳에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우리네 관습이다. 그러니 이즈음에 선물의 품목에 자주 오르는 물건이 바로 말린 조기(條鰭)이다. 우린 언제부터 인지 모르게 이 말린 조기를 굴비(屈非)라고 부른다. 굴비가 되기 전에 우선 조기라는 어종(魚種)의 이름은 어떻게 정착되었을까? 조기는 영어로 Small Yellow Croaker라고 하는데, 양쥐돔목(目) 민어과(科)에 속하는 비교적 작은 종들을 칭하는 말이다. 참조기, 수조기, 부세(부세조기), 흑조기, 보구치(백조기), 침조기(긴가이석태), 민어조기(영상가이석태), 대서양조기 등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보통 한국에서 조기라 하면 참조기를 가리킨다. 주요 서식지는 한국의 남서해 바다와 동중국해다.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물을 따라 제주도 이남이나 동중국해로 이동하고 날이 풀리는 2월쯤부터 서해로 올라와 번식을 한다. 번식기는 3월에서 6월까지다. 번식을 끝마칠 때쯤이면 겨울이 찾아올 시기가 되니 다시 남쪽으로 이동한다. 조기는 부레를 움직여서 소리를 낼 수 있다. 소리는 대체로 '뿌욱, 뿌욱'으로 들리며 이는 무리를 지은 참조기 떼가 서로 흩어지지 않게 하거나 암수가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참조기들이 내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는 참조기를 잡을 때 구멍을 뚫은 대나무를 바다에 넣어 울음소리를 파악했다는 내용이 있다. 현재에도 참조기를 잡는 어부들이 참조기 무리의 소리 때문에 밤을 설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정약전은 조기가 때에 맞춰서 물을 따라서 돌아온다고 해서 ‘추수어(追水魚)’라고 기록해 두었다.

조기는 원래 특징으로 물고기 머리 안에 있는 '내이'(內耳) 즉 '이석'(耳石)이 있어서 조선시대에는 석수어(石首魚) 또는 석두어(石頭魚)로 불렀다. 이 돌은 어뇌석(魚腦石), 어두석(魚頭石), 어침골(魚枕骨), 두중석(頭中石), 혹은 이석(耳石)이라고 하는데, 조기가 헤엄을 칠 때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역할을 한다. 한자로 조기는 <조기(條鰭)>라고 쓰는데, 뜻은 지느러미의 골격이 방사형의 나무 가지처럼 보여서 붙인 것이다. 순우리말 이름과 한자어 이름 똑 같아서 한자어가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문헌에는 석수어'(石首魚) 이외에도, 석어(石魚), 구을비석수(仇乙非石首) 등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미 고려 말 이색(李穡)의 시문에 등장하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석수어는 영광군 서쪽의 파시평(波市坪)에서 난다.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때에 여러 곳의 어선이 모두 여기에 모여 그물로 잡는다. 관에서는 세금을 거두어 국용(國用)에 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승정원일기> 기록을 보면 조기는 공납 진상품, 관리의 주급, 상여금, 혹은 성균관 유생이나 훈련도감 관원들의 사기 진작용 등으로 광범위하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보편적인 소비 방식은 통째로 소금에 절여 말려먹는 것이지만 민간에서는 젓갈이나, 채소를 넣어 국을 끓여먹기도 했다. 조기의 한자(漢字)를 위와 같이 표현한다고 했지만, 조기의 어원에 대해서 조선 영·정조 시대의 학자인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은 그의 저서 <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에서 다른 학설을 기록하고 있다. <화음방언자의해(華音方言字義解)>는 중국어 즉 한어(漢語)나 범어(梵語) 등의 어원(語源)을 밝혀, 지명·인명·용어 등 150개 항목의 말을 그 어원과 변천 과정을 비교 설명한 국어학연구서이다. 그의 기록의 원본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我語石首魚(아어석수어). 卽華語鯼魚也(즉화어종어야). 鯼音宗(종음종)之音急而訛爲(지음급이와위)조긔也(야).” 해석을 해 보면, 우리말 석수어는 곧 중국어로 종어이다. 종의 발음은 종이고, 이 음을 급히 말하여 변해서 조긔로 되었다. 즉 중국에서는 종어(鯼魚)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빠르게 발음하니 변해서 조기로 와전되었다고 기록했다. 지금의 발음이나 이름으로 봐서 별로 타당성을 가지지 못할 것 같다. 그 책에는 조기 말고도 붕어·잉어·웅어·숭어 등의 유래와 아들·오라비·누이·아주머니·아저씨·시집 등의 호칭의 유래도 기록해 놓았다.

조선시대에 굴비라는 말과 비슷한 ‘구을비석수(仇乙非石首)’라는 표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굴비의 유래에 여러 가지 설(說)이 있을 것 같다. 그중에서 스토리텔링이 가장 우수한 <이자겸(李資謙) 설화>를 살펴보자. 이 설화는 법성중고 교장을 지낸 신명희(申明熺) 선생이 지은 <법호견문기(法湖見聞記)>에 실려 있었는데, 이것을 영광군에서 굴비와 군의 홍보 마케팅에 활용하면서 마치 정설(正說)처럼 굳어지고 있다. 아무튼 그 이야기를 살펴보자. 이자겸은 인천 이씨 출신으로 고려 중기의 대표적인 외척세력이었다. 성(姓)인 이(李) 자를 파자(破字)하여 십팔자위왕(十八子爲王)이라는 도참설(圖讖說) 퍼뜨리기도 했다. 할아버지 때부터 왕후자리를 독식하던 집안이라서, 1108년에 그의 둘째 딸을 16대인 예종(睿宗)의 왕비(순덕왕후)로 보내고, 그녀가 낳은 아들인 태자가 15살일 때 사위인 예종이 죽는다. 태자가 어려 예종의 형제들이 왕위를 노릴 때 이자겸이 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외손주를 인종(仁宗)에 즉위시킨다. 그리고 자기의 3~4녀를 외손주의 왕비로 맺어주는 것이다. 인종의 입장에서는 이모 둘을 부인으로 삼은 것이다. 또한 외조부가 장인을 겸했다. 이런 혈연관계를 이용하여 권력을 움켜쥔 것도 모자라 아예 왕권을 통째로 삼켜서 이씨의 나라로 만들려고 작당을 했다. 인종이 이자겸의 심복인 무장 척준경(拓俊京)을 이용하여 이자겸을 사로잡아 그 야욕을 꺾고 난을 평정했다.

<이자겸 집안의 혼인관계>

후속 조치를 하면서, 외조부이자 장인이라서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이자겸을 영광의 법성포로 유배를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이모이자 왕비였던 두 사람은 왕후에서 폐하고 서인(庶人)으로 살게 했다. 법성포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이자겸은 그곳의 특산물인 마른 조기를 먹어보니 맛이 기가 막혔다. 그래서 혼자 먹기가 아까웠는지 외손주인 왕에게 마른 조기를 선물로 보내게 된다. 그는 이 건어물을 진상품으로 보내면서 그 물목(物目)을 특별히 ‘굴비(屈非)’라고 이름을 붙였단다. 원전(原典)에는 비굴하게 왕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그렇게 붙였다고 하지만, 논리적으로나 정황상으로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도리어 필자 금삿갓이 추론하자면, 고려의 왕이지만 혈연관계로 보았을 때 인종은 그의 외손자이면서 사위였다. 그러니 손위의 어른이 손아래 사람에게 선물을 보내면서 무릎을 꿇고 바치기는 인간적인 예의가 아니다. 즉 반란을 일으킨 것은 왕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니 왕으로 대접하지도 않고, 그저 핏줄로서 외손주와 사위니까 선물을 보내되 허리를 굽히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굴비(屈非)라고 적었을 것이다. 이자겸은 유배 온 지 2년째 되던 해에 사망했다. 굴비 명칭이 이자겸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설은 하나의 이야기일 수 있다. 18세기 중엽 조선 후기 영조 때 각 고을의 읍지를 모아 완성한 전국 지리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각 지방의 특산물과 그 특산물 중 궁궐에 진상되는 물품을 기록한 내용도 열거되어 있다. 조기와 굴비는 주로 전라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진상품으로 올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진상품으로 올린 굴비의 명칭을 기록한 것을 보면 ‘석수어구을비(石首魚仇乙非)’, ‘구을비 석어(仇乙非石魚)’, ‘석수어굴비(石首魚屈非)’, ‘세린석수어구을비(洗鱗石首魚仇乙非)’, ‘세린석수어구구비(洗鱗石首魚仇仇非)’, ‘석어구을비(石魚仇乙非)’, ‘세린석수어구산비(洗鱗石首魚仇山非)’ 등 다양하게 표기되어 있다. 굴비(屈非)라는 글자는 영광현과 고부군(현재 정읍)에서만 표기되어 있고, 구을비(仇乙非)라는 굴비의 이두식 표기가 더 많은 것으로 보아 이자겸 굴비 어원설은 후대에 만들어진 민간어원설로 생각된다. 아무튼 이런 스토리텔링으로 보아 굴비의 진상품이나 선물의 역사는 천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은 품목임에는 틀림없다. 한때 조기의 어황이 부진할 때 금가루를 뿌리 상품(上品)의 굴비 한 세트가 백화점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呼價)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명절에 정을 주고받는 것은 좋지만 자칫 김영란법이 무색한 고가의 선물들이 정치권이나 공직자들에게 쏠리는 폐습(弊習)은 근절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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