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시참을 당해 죽은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
필화(筆禍)화 보다 더한 시의 예지력
필자 금삿갓도 은퇴하고 심심풀이로 한시(漢詩) 습작을 하고, 전국에서 열리는 한시백일장에 참가하여 운 좋게 입상도 하지만, 요즘 세대들은 한시를 버린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한시(漢詩)를 생활화했고, 그중에서 문학적으로 뛰어난 인재들은 개인들이 창작한 시를 평가하고 뒷이야기를 엮어서 책으로 발간했다. 이것이 시화집(詩話集)이다. 이런 시화집에 가끔 시의 내용을 시인의 삶이나 국가의 운명 등과 결부를 지어서 여러 가지 상황이 들어맞는 경우에 이를 시참(詩讖) 즉 시의 예언(豫言)이라고 부른다. 즉 시참(詩讖)은 시의 내용이 개인 수명의 길고 짧음과 출세 여부를 나타내는 수요궁달(壽夭窮達)을 예측하거나, 국가의 흥망성쇠 등을 미리 설명해 주는 경우이다. 참(讖)이란 길흉화복을 점치는 도참(圖讖) 사상을 나타내는 말로 <정감록(鄭鑑錄)>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시참과 도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요참(謠讖)도 있다. 요참이란 어린이나 민중들의 노래로 앞날을 예언하는 것인데, 대체로 어느 누가 여론을 유도할 목적으로 미리 지어서 유포하는 경우가 많았다. 백제 무왕(武王)이 신라의 선화공주(善花公主)를 신부로 얻기 위해 서동요(薯童謠)를 만들어 퍼뜨린 경우가 해당한다. 이런 것은 주로 나중에야 그 결과를 보고 논리적으로 맞추거나 어떨 때는 견강부회식(牽强附會式)으로 꿰어 맞추는 경우도 있다. 서거정(徐居正)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대개 시는 아무런 의도 없이 지어졌더라도 혹 때로는 앞으로 벌어질 일의 어떤 조짐(兆朕)이 되기도 한다.”라고 썼다. “또한 시참(詩讖)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이지 일부러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냥 심심파적으로 살펴보자.
<남용익의 묘지>조선 시대 중기의 문신·학자였던 남용익(南龍翼, 1628~1692)의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곡(壺谷)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그는 17세기를 대표하는 시인 가운데 한 명이자 시 비평가이기도 했으며, 대제학(大提學)·이조 판서를 지냈다. 효종 6년(1655)년에 통신사의 종사관이 되어 일본에 갔다 왔으며, 숙종이 희빈 장씨의 아들을 원자(元子, 훗날 경종)로 부르는 데 반대하다가, 숙종 15년(1689)에 명천(明川)에 유배되어 1592년에 그곳에서 죽었다. 저서로는 신라 때부터 조선 인조 때까지의 시를 모아서 지은 <기아(箕雅)>와 종사관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지은 <부상록(扶桑錄)>·<호곡만필(壺谷漫筆)>이 있고, 시문집으로는 <호곡집(壺谷集)>이 있고 <호곡시화(壺谷詩話)>도 지었다. 그는 어릴 때 총명하여 글도 잘하고 시 짓는 재주가 뛰어났다. 어느 날 어른들이 그에게 ‘누에(蠶)’라는 제목으로 하여 압운(押韻)을 불러 주고 시를 지어 보라고 했다. 그는 노인들의 입에서 운자가 떨어지는 대로 시를 지었다. 이를 두고 옛사람들은 “호운명부(呼韻命賦) 응구첩성(應口輒成)”이라는 문자로 표현했다. 즉 운을 부르는 대로 짓고, 입에 맞춰서 빨리 완성한다는 뜻이다. 그가 지은 율시(律詩)는 8 구절인데, 3~4와 5~6 구는 대구(對句)를 맞추어야 한다. 전체 시는 전하지 않고 3~4구와 7~8 구가 다음과 같이 전해 온다.
稚引黑脣迎綠葉(치인흑순영녹엽) / 어린 게 검은 입술 이끌어 녹색 잎을 맞이하고
老拖黃腹上靑梯(노타황복상청제) / 늙어서 누런 배를 끌어서 푸른 사다리에 오르네.
이건 누에의 일생을 절묘하게 묘사한 것이다. 어린누에가 검은 입으로 뽕잎을 먹다가 늙으면 누에고치를 만들려고 솔가지에 오르는 형상을 읊은 것이다.
7~8 구는 이렇다.
失却眞形仍化蝶(실각진형잉화접) / 참모습이 없어지고 그대로 나방으로 변하니
正疑莊叟夢魂迷(정의장수몽혼미) / 장자가 꿈속에서 헤매는 것이 아닌가 정히 의심스럽네.
누에가 고치로 변했다가 다시 나방으로 변화하는 것을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에 비유하여 시를 지으니 대단했다.
<국조인물고의 남용익 편>어른들은 이 시를 보고 칭찬하면서 “이 아이는 반드시 일찍 출세하여 중요한 벼슬을 지낼 것이다. 그러나 늙어서 대관이 될 터이나 그 끝 구절을 보면 부귀를 잘 누리리라는 기상은 없는 듯하다.”라고 평했단다. 과연 그는 인조(仁祖) 24년 18살에 진사(進士)가 되고, 20살에 문과에 급제했다. 벼슬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설서(說書), 성균관 전적(典籍), 삼사(三司)를 지냈고, 병조좌랑과 홍문관 부수찬 등 중앙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24살 때 병이 심하게 걸려 치료를 하던 중에 시를 지은 게 있었다.
絶塞行人少(절새행인소) / 변방에 다니는 사람 적고
羈愁上客顔(기수상객안) / 나그네의 근심이 그의 얼굴에 떠오르네.
蕭蕭十里雨(소소십리우) / 쓸쓸히 10리 길에 비가 내리니
夜渡鬼門關(야도귀문관) / 밤에 귀문관을 지나가는구나.
이 시는 대체로 음산하고 쓸쓸한 분위기에 더구나 마지막 구절의 귀문관은 그야말로 염라대왕이 사는 곳의 문을 통과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24살에 지은 이 시가 그의 미래를 예측하는 시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깊은 학문 덕에 문형(文衡)의 벼슬을 맡고 이조판서도 역임하지만 결국은 시의 내용처럼 끝이 좋지 않았다.
<남용익의 저서>이러한 시참의 사례는 조선시대에 다양하게 존재한다. 대부분 꿈속에서 지은 시의 내용대로 되었다는 것도 있고 평시에 지는 것도 있다. 모든 사례의 내용을 상세히 들 수는 없고, 고경명(高敬命)이 꿈에서 시를 지은 내용대로 부친과 장인의 벼슬이 떨어지고, 허균(許筠)의 형 허봉(許篈)이 귀양을 가고,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요절을 한다. 꿈에서 지은 시로 잘 풀린 경우도 있다. 김시양(金時讓)은 유배에서 풀리고, 류자신(柳自新)의 부인 정씨의 시로 남편이 성천(成川) 고을 원으로 나갔단다. 그런데, 의도적(意圖的)으로 시를 지어서 시참(詩讖)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었으나 허사(虛事)가 되었다. 사육신 하위지(河緯地)의 친구 중에 재주가 뛰어난 최탁(崔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친구들 모임에서 이런 시를 지었단다.
春軒之後菊軒翁(춘헌지후국헌옹) / 봄처럼 살다가 후에 국화처럼 늙으니
壽到稀年兩頰紅(수도희년양협홍) / 나이는 70에 이르러도 두 뺨에 홍조네.
一事只應方寸愧(일사지응방촌괴) / 하나의 일만 단지 마음에 부끄러우니
謾將樗櫟爲三公(만장저력위삼공) / 쓸모없는 이 몸이 장차 삼공이 되겠구나.
모두는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는 자신이 장수도 누리고 삼공의 지위에 오를 거라고 장담을 했단다. 또 한 번은 과거 시험 날짜를 앞두고 이런 시를 지어서 하위지를 방문하여 보여 주었단다.
金輪洞口昔同遊(금륜동구석동유) / 금륜사 동구에서 함께 놀던 옛날
屈指如今二十秋(굴지여금이십추) / 손꼽아 헤어보니 어언 이십 년
今日訪君應有意(금일방군응유의) / 오늘 그대 찾은 건 응당 뜻이 있나니
欲將詩句換龍頭(욕장시구환용두) / 장차 시로 장원자리를 바꾸고자 함이네.
하위지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지었느냐고 물으니, 자기가 곧 있을 과거에서 장원을 할 거니까 먼저 지은 것이라고 했다. 과거 시험 결과는 하위지가 장원하고, 그는 낙방하여 시골로 물러나서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본인의 욕심대로 되지는 않아도 금삿갓이 보기에 그는 시참을 정확히 한 것 같다. ‘환용두(換龍頭)’ 즉 장원 자리를 바꾸었으니, 자기 대신 하위지가 장원이 된 것이다. 바라던 시참을 이루지도 못하고 비웃음만 산 결과이다.
<남용익의 시문>허균과 함께 뛰어난 시인이었던 석주(石洲) 권필(權韠)의 시참 하나를 더 소개하고 마치려 한다. 그는 뛰어난 문재로 과거의 초시와 복시 모두 장원을 했으나, 왕실의 금기어(禁忌語)를 써서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러자 벼슬을 않고 방랑 시인으로 지냈는데, 조정을 비판하는 <궁류시(宮柳詩)>를 지었다가 권신(權臣) 유희분(柳希奮)의 분노를 사서 곤장을 맞고 44살 봄철에 유배 길에 오른다. 동대문을 벗어나 어둠이 찾아오자 어느 주막에 들어가서 하루를 묵었다. 거기서 같이 묵었던 길손이 권하는 술잔을 받아 마시고 잠들었는데, 이튿날 그는 죽어 있었단다. 사람들이 방 안을 둘러보니 벽에 시가 한 수가 적혀 있었는데, 당나라 시인 이하(李賀)의 <장진주(將進酒)>의 마지막 4 구절이었다.
況是靑春日將幕(황시청춘일장모) / 하물며 이 청춘의 해는 저물려 하고
桃花亂落如紅雨(도화난락여홍우) / 복숭아꽃 붉은 비처럼 어지러이 떨어지는데
權君終日酩酊醉(권군종일명정취) / 권군은 종일토록 정신없이 취기 속이니
酒不到劉冷墳上土(주부도유령분상토) / 술은 유령의 무덤 위까지 가지 못하리.
봄의 끝 무렵 주막집 울타리 옆의 복숭아꽃은 바람에 흩날려 떨어지고, 권필은 술에 취하여 잠을 자는 듯이 죽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에서 두 번째 구의 첫 글자 ‘권(權)’은 원래 이하의 시에서는 권할 ‘권(勸)’인데 누군가 잘못하여 권세 ‘권(權)’으로 오기(誤記)를 했다. 그런데 그것이 하필 권필을 지칭하는 권군(權君)이 된 것이다. 유령(劉伶)은 서진(西晉)의 문인으로 술을 좋아하여 <주덕송(酒德頌)>을 지었다. 누군가 틀리게 써서 붙여 놓은 주막의 그 방에 하필 권필이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죽었으니 시참(詩讖) 제대로 예언한 것인가? 하긴 곤장을 맞아 장독(杖毒)이 오른 몸에 술을 상극일 텐데, 음주를 했으니 사달이 난 것이다. 아무튼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시참을 꺼려서 시를 쓸 때에 ‘낙(落)·사(死)·훙(薨)·망(亡)·고(苦)·병(病)·애(哀)’ 등의 글자를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경향이 있다.(금삿갓 芸史 琴東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