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한자(漢字)로 점을 보는 사람들
파자(破字) 유희(遊戱)의 달인들
한자(漢字)는 표의문자(表意文字) 즉 뜻글자이다. 그러다 보니 글자의 생김새에 따라서 그 내포하는 의미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는 한자의 원류(源流)인 갑골문자(甲骨文字) 시절부터 글자를 분해하거나 조합하여 그 의미를 가지고 길흉(吉凶)을 점치는 일이 많았다. 이러한 것을 중국에서는 측자(測字)·상자(相字)·탁자(拆字)·파자(破字) 등으로 불렀다. 측자(測字)·탁자(拆字)·파자(破字)는 문자를 편(偏)·방(傍)·관(冠)·각(脚) 따위로 분해하여 그 뜻에 따라 일의 길흉을 점치는 점복의 용어이다. 상자(相字)는 우리가 관상(觀相)·수상(手相) 즉 얼굴이나 손금을 봐서 길흉을 예측하듯이 글자의 모양을 봐서 점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파자(破字)라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점복(占卜) 보다는 언어유희(言語遊戲)로 많이 활용되었다. 특히 방랑시인 김삿갓이 파자시(破字詩)를 잘 활용하기도 했다. 이런 점복술의 기원은 한 대(漢代)로 거슬러 올라가며, <후한서(後漢書)·채무전(蔡茂傳)>에 따르면 채무(蔡茂)는 해자(解字)를 통해 길흉을 점쳤다. 이런 점술을 수나라 시대에 <수서·경적지(隋書·经經志)>에 <파자요결(破字要訣)>로 기록되어 파자(破字)라고 불렸고, 송나라 시대에는 상자(相字)라고 불렸다. 남북 송(宋) 시기에는 이런 점복 기술이 크게 발전하여, 이를 업으로 하는 술사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송나라의 사석(謝石)은 파자 점술로 뛰어났다고 한다. 당나라 시절의 고사가 있는데, 후세에서 지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당헌종(唐憲宗) 연간에 회서·채주(淮西·蔡州, 하남성 주마점시) 절도사 오원제(吳元濟)가 반란을 일으키자 재상 배도(裴度)를 토벌대장으로 파견했다. 배도가 채주 근처에 당도하여 군영을 설치하는데, “鷄未肥(계미비), 酒未熟(주미숙)”이라고 쓰인 돌이 나왔다. 모두들 이상해서 이를 해독을 해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침 군영에 측자(測字)에 소질이 있는 자가 있어서 해독을 시켰다. “닭이 살찌지(不肥) 않으면 ‘살찔 비(肥)’에 고기 ‘육(肉)’이 없어서 ‘파(巴)’이지만, 살이 워낙 없으니 ‘몸 기(己)’가 되고, 술이 아직 익지 않으면 물이 생기지 않았으니 ‘술 주(酒)’에 ‘물(水)’을 빼면 ‘닭 유(酉)’라는 글자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이 토벌 작전은 기유년(己酉年)에 끝난다고 설명했다. 청대(靑代)에는 주력원(周櫟園)이 파자점술에 관한 책 <자촉(字触)>을 저술하기도 했다.
명나라 말기에 신산(神算)이라 불리는 파자점의 귀재인 주선생(朱先生)이 있었다. 그는 원래 소주(蘇州) 출신으로 어릴 때 집안이 가난했지만, 나중에 한 이인(異人)을 만나 그에게 파자법을 배웠다. 그는 이후 사람들에게 파자점을 보아주었으며, 매우 영험하여 명성을 널리 떨쳤다. 그는 한 가지 규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매일 한 글자만 측정하고, 한 냥의 은자를 받았다. 그를 찾아 점을 보려는 사람은 반드시 미리 예약해야 했다. 당시 오삼계(吳三桂)는 반란을 일으킬 생각이 있어 몰래 식량을 준비하고 돈을 모으고 있었다. 당시 강소성은 전국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었고, 관부(官府)의 창고에는 은전과 식량이 가장 많이 남아 있었다. 오삼계는 당시 강녕(江寧)의 순무(巡撫)였던 모천안(慕天顔)을 찾아가 창고에서 큰돈을 빌리려고 했다. 모천안은 빌려줄지 말지 고민되어 주선생을 찾아 점을 봤다. 점쟁이는 그에게 책상 위에 있는 종이에서 한 글자를 선택하던가 글자를 쓰라고 했다. 모천안이 글자가 안 보이게 뒤집어져 있는 종이를 집어 젖히자 바를 ‘정(正)’ 자 쓰여 있었다. 주씨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돈을 빌려주지 못하게 했다. 주선생의 말은 정(正) 자가 ‘왕(王)’ 자와 비슷하다. 그런데 ‘왕(王)’ 자처럼 가지런하지 않고 엉클어져 있다. 그러니 왕심(王心) 즉 왕의 마음이 어지럽다. 더구나 글자가 쓰인 종이를 뒤집어 들었기 때문에 반란의 전조이다. 빌려 주면 반란자의 재정으로 쓰인다고 했다. 나중에 오삼계가 과연 반란을 일으켜 주선생의 예측이 맞았다. 주선생의 아들도 그 기술을 배워서 계속 파자점을 보면서 생계를 꾸렸다. 어느 날 과거 응시생 세 사람이 찾아와서 점을 봤다. 첫 응시생이 인할 ‘인(因)’ 자를 뽑았다. 주씨는 이를 보더니 합격하여 대성한다고 했다. 이유는 나라 ‘국(囗)’ 자 안에 큰 ‘대(大)’이니 나라 안에서 큰 인물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다음 응시생이 똑같은 글자를 지적했다. 그러지 그는 불합격이라고 했다. 그 응시생이 저 서생은 합격인데, 나도 똑같은 글자를 골랐는데 왜 불합격이라고 따졌다. 그러니까 점쟁이는 “인(因)은 은혜 은(恩) 자에서 마음 심(心)이 빠진 것이다. 그대는 마음에도 없이 먼저 사람을 따라갔으므로 낙방이다. 나중에 은혜로운 사람을 만나면 합격할 수 있다.”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온 사람이 들고 있던 부채로 또다시 ‘인(因)’를 집었다. 그러자 점쟁이는 단번에 불합격이고 영원히 합격할 수 없다고 했다. 이유는 부채로 ‘인(因)’ 자에 세로로 놓으면 ‘곤(困)’ 자로 변하니까 영원히 고단하고 피곤한 삶이란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송(宋)나라 하원(何薳)이 쓴 <춘저기문(春渚纪聞)>과 홍매(洪邁)가 지은 <이견지보(夷堅志补)>에 사석(謝石)의 점술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느 날 송휘종(宋徽宗)이 아침 ‘조(朝)’ 자를 써서 환관을 시켜서 사석에게 가서 점을 보게 했다. 그러자 사석이 그 글씨를 보더니 깜짝 놀라면서 남이 쓴 글씨로 점을 볼 수 없다고 했다. 환관이 계속 종용을 하자 그는 점을 풀어서 밀봉을 해 줄 테니 글씨를 쓴 사람에게 개봉해 보라고 했다. 그가 휘종에게 봉투를 바쳐서 개봉해 보니, 이 분은 귀하고 최고로 높은 분인데 10월 10일에 탄생한 사람이라고 쓰였다. 이유는 ‘조(朝)’를 양분(兩分)하면 ‘십일(十日)과 시월(十月)’이란다. 휘종이 자기 생일이 10월 10일임이 확실한지라 대단히 신통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벼슬을 내렸으나 사석이 받지를 않았다. 그리고 한 번 더 시험을 하려고 이번에는 물을 ‘문(問)’ 자를 써서 궁녀를 시켜서 점을 보게 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밀봉한 봉투를 주었다. 거기에는 ‘좌위군(左爲君) 우위군(右爲君) 천자만세(天子萬歲)’라고 쓰였다. 즉 ‘문(問)’ 자를 ‘문 모양(門)’을 둘로 나누고, ‘입 구(口)’ 자를 합하면 왼쪽으로 보나 오른쪽으로 보나 ‘임금 군(君)’ 자이다. 그러니 천자 만세라고 한 것이다. 이런 일이 소문이 나자 어떤 도관(道觀)에 있는 도사(道士)가 똑같이 문(問) 자를 써서 보냈다. 답이 오기를 “문이 큰집에 살지만 식구는 하나뿐이네.”였다. 마침 그 도사는 제자들이 없어서 혼자 도관에 기거하고 있었단다. 그래서 화가 나서 입 구(口)가 많은 ‘그릇 기(器)’를 써서 보냈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개 한 마리만 안에 있고, 사람들은 모두 바깥에서 들어오지 않는구나.”라고 해석했다. 그제야 도사도 탄복했단다. 송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의 파자점 얘기도 있다. 그가 미복(微服)을 하고 민생을 살피다가 파자점술가에게 벗 ‘우(友)’를 써 보이니까, 그가 큰절을 하면서 반역의 조짐이 있다고 했다. 우(友) 자의 반(反) 자의 왼쪽과 위쪽으로 획이 튀어나와 있으므로 적어도 두 곳에서 반군이 생긴단다. 바로 북쪽 즉 위족에서 후금(後金)이 쳐내려 오고, 옆쪽에서 이자성(李自成)이 난을 일으켰던 것이다. 기분이 언짢은 숭정제가 글자를 잘못 골랐다며, 있을 ‘유(有)’ 자를 골랐다. 그러자 그는 이건 더 황망하다고 했다. 나라의 반을 잃은 형국이란다. 이유는 ‘유(有)’는 ‘대명(大明)’과 같은데, 대(大)에서 오른쪽 다리가 잘려나갔고, 명(明)에서 일(日)이 떨어져 나간 것이니 나라의 반을 잃은 형국이란다. 내심 깜짝 놀란 임금이 다시 닭 ‘유(酉)’ 자를 제시했다. 그는 곧바로 지존(至尊) 즉 임금이 곧 사라질 운세라고 했다. ‘유(酉)’는 높을 ‘존(尊)’ 자의 머리와 다리가 잘려 나간 것이란다. 숭정제가 놀라고 노여움을 참으며 외투 자락을 입에 물고 은자를 꺼내어 대금을 치르자 점쟁이는 연신 손을 내저으며 “그 돈은 내가 받을 수 없습니다. 수건을 입에 물고 있는 것은 바로 조문할 ‘조(吊)’ 자인데, 이렇게 불길한 돈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숭정제는 갑자기 사색이 되어 넋을 잃고 환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하고 화가 풀리지 않아서 환관을 시켜서 다시 점을 보게 했다. 먼저 자기 이름 주유검(朱由檢) 중의 한 글자인 ‘유(由)’ 자를 보이고, 나중에 그윽할 ‘유(幽)’ 자를 보이라고 했다. 환관이 가지고 돌아온 풀이는 이랬다. ‘유(由)’는 밭 ‘전(田)’ 혹이 튀어나온 것이다. 밭 전 자는 가로로 보나 세로로 보나 임금 왕인데, 왕의 머리 위로 혹이 튀어나온 것은 반란이고, 그 반란은 농민이 일으켰다고 풀이했다. 또 ‘유(幽)’는 너무 불길하다. ‘유(幽)’는 뫼 ‘산(山)’과 실 ‘사(絲)’가 합해진 글자이다. 이 사람이 아마도 산에서 키가 큰 나무에 목을 매어 죽을 운명이라고 했다. 분기탱천(奮起撑天)한 숭정제가 그 점쟁이를 당장 잡아 오라고 병사들을 보냈으나 이미 도망치고 없었단다. 일설에는 점쟁이가 이자성의 부하로서 민심을 선동하고 황제의 마음을 흐려서 도성을 쳐들어오기 쉽게 하려던 심리전의 한 방법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숭정제는 결국 자금성(紫禁城) 뒤의 경산(景山)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우리나라에도 파자점에 대한 일화가 많았다. 그중 대표적으로 사제지간이었던 서산대사(西山大師)와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일화이다. 어느 날 두 대사가 묘향산(妙香山) 보현사(普賢寺)에서 강원도 월정사(月精寺)를 가게 되었다. 가던 도중 길 가 나무 그늘에서 쉬는데, 저 쪽 개울 건너 풀밭에 소 두 마리가 편안히 누워있었다. 한 마리는 붉은색이고 한 마리는 검은색이었다. 장난기가 동한 사명당이 서산대사에게 “스님, 저 두 마리 소 중에 어느 소가 먼저 일어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스승이 궁금하면 점을 쳐 보라고 했다. 사명당이 파자점(破字占)을 치니, 불 화(火) 자가 나왔다. 서산대사가 그럼 무슨 소가 일찍 일어날지 맞혀 보란다. 사명당은 불이니 빛이 붉을 거니까 붉은 소가 먼저 일어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스승인 자기는 검정 소가 먼저 일어난다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은 사명당이 기다려서 결과를 보고 판단하자고 했다. 그래서 한참을 기다리니 아니나 다를까 검정 소가 먼저 일어났다. 깜짝 놀란 사명당이 머리를 긁적이며, 스승님은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서산대사가 불이라는 것이 먼저 연기를 피우고 난 뒤에 붉게 타오르지 처음부터 붉게 타지를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어 어느 주막집에 들러서 유숙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들어오면서 주모가 부엌에서 안반에 밀가루 반죽을 주물거리는 것은 사명당이 슬쩍 보았다. 그리고 둘은 방에 들어가서 염불을 읊으면서 저녁상을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저녁상이 나오지 않자, 사명당이 낮에 스승에게 파자점을 진 것이 안타까워 다시 도전하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스승에게 오늘 저녁 공양이 무엇인지 맞추기를 하자고 했다. 또 스승이 파자를 뽑으라고 해서 뽑으니 ‘뱀 사(蛇)’ 자였다. 사명당은 옳거니 생각했다. 들어올 때 반죽 하는 것을 눈으로 봤으니 당연히 국수라고 먼저 얘기를 했다. 서산대사는 지긋이 생각을 하더니 둥근 만두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사명당은 이번에는 반드시 이겨서 스승님을 골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저녁상을 기다렸다. 한참 후에 주모가 저녁상을 들고 들어왔는데, 정말 둥그런 만두들이 가득한 접시가 올려져 있었다. 사명당이 두 눈으로 확인하고, 파자점을 뱀 사 자로 뽑았건만 또 패배한 것이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한 사명당이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여쭈었다. 서산대사의 대답은 뱀은 낮에는 먹이를 잡으로 돌아다니느라 길게 늘어져서 국수로 판정을 하지만, 밤이 되면 잠을 자기 위해서 똬리를 틀어서 둥글게 만드니 당연시 국수가 아니라고 했다. 역시 수행의 경지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는 것이다 모든 점사도 같은 괘(卦)를 뽑아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점술사의 경지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파자(破字)는 점술만이 아니라 문사(文士)들 사이에서 언어유희나 도참(圖讖)으로 많이 사용되기도 했다.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의 중심 피해 인물이 조광조(趙光祖)을 함정에 빠뜨린 것도 바로 이런 파자법이다.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 써 놓자 벌레들이 꿀을 따라 잎을 먹어서 글자 모양대로 새겨지게 되었다. 즉 ‘주초(走肖)’ 두 자를 합치면 나라 조(趙) 자가 되므로 조씨가 왕이 된다는 도참(圖讖)이다. 이걸로 조광조를 몰아서 처형한 것이다. 파자법이 정치에 오남용(誤濫用)된 사례이다. 김삿갓 선배님이 파자시에는 명수였다. 대표적인 한 수를 보자.
仙是山人佛不人(선시산인불불인) / 신선은 곧 산 사람이고 부처는 사람이 아니지
鴻惟江鳥鷄奚鳥(홍유강조계해조) / 기러기는 오직 강에 새요, 닭이 어찌 새일까?
氷消一點還爲水(빙소일점환위수) / 얼음(氷)에 점 하나 사라지면 다시 물이 되고
兩木相對便成林(양목상대변성림) / 두 그루 나무가 마주 보면 곧 숲을 이룬다네.
한자를 분해해서 그 뜻으로 지은 시이다. 신선(仙)은 곧 사람(人)+산(山)으로 이루어졌고, 불(佛)은 사람(人)+아닐(弗=不)로 구성된다. 기러기(鴻)는 강(江)+새(鳥)의 합이고, 닭(鷄)은 어찌(奚)+새(鳥)가 모인 것이다. 어름(氷)에서 점(‘)을 빼면 물(水)만 남는다. 숲(林)은 나무(木)와 나무(木)들이 모여서 이룬다. 파자 일화 하나 더. 김삿갓 선배님이 어느 날 저물녘에 유숙하기 위해 시골 양반집 사랑에 들렀다. 뱃속에서는 꼬로록 소리가 나는데,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도 저녁상이 들어오지 않았다. 한참 후에 밖에서 안주인이 영감에게 “인양복일(人良卜一) 하오리까?”라고 묻는다. 그러자 같이 있던 바깥주인인 “월월산산(月月山山)이요.”라는 게 아닐까. 무슨 소리인가 가만히 생각해본 김삿갓이 이것이 파자(破字) 문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집 주인장들의 속셈을 보니 밥도 안 주고 축객령(逐客令)이 내릴 태세니 버티고 있어보았자 허사라 생각한 그는 짐짓 일어서 사랑을 나왔다. 그냥 떠나기 괘씸한 그가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다. “정구죽천(丁口竹天)이로 소이다.” 무슨 뜻일까? 인(人)+양(良)=식(食)이고, 복(卜)+일(一)=상(上)이니 식상(食上)이다. 바로 밥을 올릴까요 라는 뜻이다. 대답인 월(月)+월(月)=붕(朋)이고, 산(山)+산(山)=출(出)이니 붕출(朋出)이다. 곧 벗이 나가거든 올리란다. 김삿가의 대꾸인 정(丁)+구(口)=가(可)이고, 죽(竹)+천(天)=소(笑)이니 가소(可笑)이다. 김삿갓을 무식한 나그네로 생각한 구두쇠 둘 부부의 파자 놀음이 가소롭다고 비아냥거리면 떠난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옛사람들은 이렇게 글자들을 가지고 다양한 놀이나 정치적 술수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대만이나 중국에는 아직도 파자법을 가지고 각종 놀이를 하거니 심지어 TV 프로그램에서 경연 대회를 하기도 한다. <측자현기(測字玄機)>·<측자취담(測字趣談)> 같은 기술에 관한 다양한 도서들도 출판된다(금삿갓 芸史 琴東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