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화장실에 빠져 죽은 왕 – 진경공(晉景公)

매화틀은 어디 두고, 푸세식에서

by 금삿갓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산서성·하북성·하남성·섬서성에 걸쳐서 700여 년가량 존속되었던 강대한 제후국(諸侯國)이었다. 이런 나라의 제28대 왕이 경공(景公)이다. 성(姓)은 희(姬)이고 씨(氏)는 진(晉 또는 唐)이고, 이름은 거(據)이다. 출생 연도는 불명이고 아버지 성공(成公)이 BC 599년에 죽자 보위에 올랐다. 아버지 성공은 춘추오패(春秋五霸) 중의 으뜸이었던 진문공(晉文公)의 아들로, 문공이 죽고 난 다음 왕족과 권신 간의 왕권 다툼이 극렬하였다. 서로 죽이고 죽는 과정을 거쳐 성공이 등극했으나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다. 아들 경공은 보위에 올라서 나름대로 치적을 쌓아갔다. 초장왕(楚莊王)이 정(鄭) 나라를 치는 것을 방어해 주다가 전투에서 패하기도 했지만 초장왕이 죽은 뒤에 그 아들인 초공왕과 싸워서 복수를 하기도 했다. 또한 북쪽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오는 것도 잘 막아서 나라를 많이 안정시켰다. 나중에 노(魯) 나라와 위(衛) 나라의 군대를 모아 제(齊) 나라를 정벌했는데, 제나라의 경공(頃公)에게 상처를 입히고 안(鞌)에서 제나라 군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제나라가 받들어 왕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감히 그러지 못하고 사양했다. 재위 12년에 처음으로 육군(六軍)을 갖추었다. 나중에 도읍을 강(絳)에서 신전(新田)으로 옮기고 신강(新絳)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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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공 재위 19년(기원전 581) 어느 날 그가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꿈에 한 커다란 노인 귀신이 머리를 풀어 땅에 늘어뜨리고 가슴을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경공 앞에 나타나서 말했다. “나의 자손을 죽인 것은 의로운 일이 아니다. 나는 나의 자손의 원수를 갚고자 이미 천제께 허락을 받았다.”라고 하면서 대문을 부수고 궁궐로 들어온 것이다. 깜짝 놀란 경공이 침실로 도망을 쳐서 방문을 닫아걸었다. 그랬더니 귀신이 또 창문을 부수고 들어오려는 것이다. 너무나 놀란 경공이 소리를 치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그는 아침에 점을 치는 대복(大卜)을 불렀는데, 그가 꿈 얘기를 하지도 않았는데도 경공의 꿈과 같은 내용을 알고 있었다. 마음이 급한 경공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물으니 대복이 말하기를 “올해 햇보리를 드시지 못하실 듯하옵니다.”라고 했다. 즉 5~6월에 추수하는 햇보리도 먹어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니 6월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멀쩡한 목숨이 다 됐다는 말을 들은 경공이 도리어 그날로 마음의 병이 들어 위독한 상태가 됐다. 그래서 나라 안의 용하다는 의원은 모두 불러 치료하게 했으나, 효험이 없자 이웃 진(秦) 나라의 환공(桓公)에게 부탁해 그곳의 명의를 오게 했다. 한글 이름은 같지만 한자가 다른 진(秦) 나라는 천하를 통일하지만 당시에는 약소국이었다. 그래서 강대국인 진(晉) 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환공은 고완(高緩)이라는 최고의 명의를 보낸다.

Screenshot 2026-03-20 at 00.29.27.JPG <매화틀>

진(秦) 나라에서 의원이 채 도착하기 전에 경공이 또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귀신이 노인이 아니라 두 어린아이로 나타났다. 그 하나가 말하기를 “고완(高緩)은 훌륭한 의원이므로 우리를 해칠까 두렵다. 장차 어디로 숨을까?”라고 하자. 다른 아이가 “이 사람 배 속에 황(肓)의 위쪽과 고(膏)의 아래쪽 사이에 숨어 있으면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한의학 용어로 황(肓)은 횡격막 위로 일명 명치끝에 해당하고, 고(膏)는 심장의 아래 등근육 견갑골 안쪽이다. 병이 몸에 깊이 박히는 것을 고황지질(膏肓之疾)이라고 한다. 산수(山水)에서 즐기는 것을 비유하여 천석고황(泉石膏肓)이라고 한다. 얼마 후 의원이 도착하였다. 경공의 병세를 진맥 한 의원이 “임금님의 병은 치료할 수 없습니다. 병이 고황(膏肓) 사이에 있기 때문에 제 힘으로는 치료할 수 없습니다. 침을 써도 닿지 않고, 약도 그곳에 미치지 못합니다. 어찌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경공은 의원의 진단이 꿈에서 본 귀신들의 이야기와 딱 맞았으므로 훌륭한 의원이라면서 후하게 예우하고 돌려보냈다. 아무튼 경공은 그해의 햇보리를 먹고 싶어 경작을 맡고 있는 관리에게 명하여 보리의 생육에 최대한 정성을 바쳐서 조기에 추수를 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그랬더니 정말 올보리가 잘 익어서 예년에 비해 보름 일찍 추수를 하여 요리사가 보리밥과 죽을 끓여서 경공에게 올릴 준비를 했다. 곧 보리 요리 밥상을 받을 경공은 몸도 가뿐하고 식욕도 돌고 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자기가 햇보리를 먹기 전에 죽는다고 한 점쟁이가 엉터리이고 해괴한 점괘로 임금을 농락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보리밥이 차려지는 것을 확인한 후에 어명을 내려 대복(大卜)을 참수하도록 했다. 그러고는 쓸데없는 거짓 점괘에 속아 공연히 걱정해서 마음의 병만 생겼다고 다시 기쁜 마음으로 보리요리를 먹으려고 식사를 대령시켰다. 궁녀들이 요리상을 날러오는데, 경공은 갑자기 속이 부글거리면서 설사가 마려웠다. 할 수 없이 급히 화장실로 가서 용변을 보려고 앉았는데, 일이 터진 것이다. 당시 화장실은 요즘 같은 수세식이 아니라 모두 푸세식이었다. 두 다리를 벌리고 쪼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는 구조였다. 그런데 갑자기 발판이 부러져서 경공은 순식간에 똥통에 빠져서 죽어버렸다. 정말 허무하게 죽음을 맞은 것이고, 점괘도 딱 들어맞았는데 애꿎은 점쟁이만 무고하게 목이 잘리고 만 것이다. 이런 황당한 일 때문인지 몰라도 조선의 왕들은 용변을 화장실에서 보지 않고 방 안에서 이동식 용변기인 매화틀을 사용했다. 임금의 대변을 ‘매(梅)’라고 하고, 소변을 ‘우(雨)’라고 공경해서 불렀으니 처음에는 ‘매우틀’이었데 와전되어 매화틀이 되었단다. 당연히 임금은 혼자 몰래 용변을 볼 수도 없고, 궁녀나 환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용변을 보고, 뒤처리도 궁녀가 대신했다. 진나라에서도 이렇게 했으면 똥통에 빠져 죽지는 않았을 텐데.(금삿갓 芸史 琴東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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