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이 한 달을 경과하고 있는데 종전(終戰)의 기미는 희미하다. 연일 맹폭(猛爆)을 퍼붓는데 인간의 목숨 줄은 질기다. 석유기지와 발전소를 폭파하면 못 버틸 거라 생각하지만 그건 오산(誤算)이다. 가장 핵심적인 숨통이 바로 물줄기이다. 인간은 석유나 전기 없이도 살 수 있지만 물을 마시지 않으면 4일을 버틸 수 없다. 지구상에 물과 땅의 표면적 비율이 7:3이지만 마실 수 없는 해수(海水)가 97%이고 고작 3%가 마실 수 있는 담수(淡水) 즉 민물이다. 지구가 가지고 있는 민물의 69%가 빙하(氷河), 30%가 지하수이고 강과 호수 등의 물이 고작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 부족 국가가 아닌 나라도 담수가 귀중한 자원인데, 이란을 포함한 아랍지역 사막 국가의 지표수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니까 이란이 쿠웨이트의 해수 담수화 시설을 공격한 것이다. 이는 매우 비인도주의적인 행위로 상호 간에 금지되어야 할 행위이다. 이란도 물 부족은 올해 들어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는 20년 중 가장 건조한 해였다. 이런 이란이 해수 담수와 시설과 더불어 이용하는 시설이 바로 그들 고유의 관개(灌漑) 시설인 카나트(Qanat)이다.
카나트(Qanat)는 페르시아인들이 고대로부터 산악지대 만년설(萬年雪)에서 흘러내린 물을 농경지로 끌어오기 위해 만든 지하수로의 명칭이다. 페르시아어로는 카나트(Qanat) 또는 카리즈(Kariz)로 불리고, 이 시설이 각지로 퍼져나가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는 카리즈(Kariz), 북아프리카 지역은 포가라(Foggara), 모로코는 케타라(Ketthara), 요르단과 시리아는 카나트라고 부른다. 스페인을 통해 남미까지 전해졌고, 중국 서북쪽의 고산지대에도 전해져 칸얼징(堪爾井)이라 부르는데, 세계에서 가장 긴 5,272km의 수로를 형성하고 있다. 카나트가 정확히 언제 생겨났는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역사적 연구와 증거에 따르면 카나트는 적어도 2천 년 전부터 이란의 해발 1마일 고원에 존재해 왔다. 카나트의 기원은 헨리 고블롯(Henry Goblot)에 의해 처음으로 연구되었다. 그의 저서 <카나트: 물을 얻는 기술>에서 그는 기원전 1천 년 초, 몇몇 소규모 부족들이 이란 고원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그곳은 이들이 원래 살던 지역보다 강수량이 적었다. 그들의 농업 기술에는 이란 고원에서 이용 가능한 물의 양에 비해 과도한 양의 물이 필요했다. 따라서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산에서 발원하는 강과 샘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농부로서 이들은 물 부족에 직면했데, 우연히 구리를 찾아 파낸 아카디아 (Acadian) 광부들이 파놓은 터널을 통해 흐르는 지하수를 발견했다. 이 농부들은 광부들에게 더 많은 물을 공급하기 위해 더 많은 터널을 파달라고 요청했다. 광부들은 구리를 캐는 대신 돈을 받고 농지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한 카나트(Qanat)라는 기본 시스템을 구축했다. 카나트 굴착은 과거 이란에서 전통적인 가족 사업이었으며, 카나트를 파는 사람을 무칸니(Muqanni)라고 불렀다. 이란의 22,000개의 카나트는 273,600km에 달하는 지하 수로를 모두 수작업으로 건설하여 초당 총 552,200 m³의 물을 공급하는데, 이는 메소포타미아 평원으로 흘러드는 유프라테스강 유량의 75%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 물 생산량은 만약 전적으로 농업에 사용된다면 300만 에이커의 건조한 땅을 관개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카나트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곳은 “태양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호라산(Khorasan) 주변이다. 이곳은 옛날부터 고대 곡물인 호라산밀 즉 요즘의 카무트라 불리는 곡물 재배지였다. 호라산은 만년설에 덥혀 있는 하자르 산(3,146m)과 비날루드 산(3,211m)에서 늘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그래서 산 밑에는 많은 오아시스가 있는데, 이 물을 주거지역으로 끌어오기 위해 카나트가 만들어진 것이다. 호라산은 비단길의 요충지였다. 지금도 호라산 주변에는 아랍인·몽골·한족 등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사는데 이들의 교역을 통해 카나트도 자연스럽게 확산되었을 것이다. 아시리아(Assyria)의 사르곤(Sargon) 2세 왕이 기원전 714년 페르시아 원정 중 지하수로를 발견했다는 비문이 있다. 그의 아들 센나케리브(Sennacherib) 왕은 이 지하수로 기술을 니네베(Nineveh) 주변에 관개 시설을 건설하는 데 활용했다. 기원전 331년부터 550년까지 페르시아의 지배력이 인더스 강에서 나일 강까지 확장되었던 시기에 카나트 기술은 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아케메네스(Achaemenid) 왕조는 카나트 건설자와 그 후손들에게 새로 건설된 카나트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5대에 걸쳐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그 결과 수천 개의 새로운 정착지가 건설되고 기존 정착지는 확장되었다.
아무튼 수세기에 걸쳐 이러한 관개 수로 시스템은 척박한 사막이나 고원지대에서도 곡물을 재배하고 올리브나 대추야자 등의 과일을 수확할 수 있도록 했다. 지구의 기상이 급격히 변화하고 지표의 사막화가 더욱 심하게 진행되는 관계로 중동지역의 카나트 시스템도 많이 축소되고 있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내려다보면 마치 개미굴처럼 땅 위에 오밀조밀하게 구축도니 카나트의 수직 우물들이 보인다. 지상으로 흐르는 강과 호수들은 척박한 토양과 건조하고 뜨거운 태양 열기에 급속히 증발되어 금세 바닥을 드러내지만 지하를 흐르는 이러한 카나트는 수 세기동안 그들의 생명수가 되어 준 것이다. 가장 오래되고 잘 알려진 규모가 큰 카나트는 이란의 도시 고나바드(Gonabad)에 있다. 연평균 기온이 24도이고 강수량이 130mm인 삭막한 이 도시에 2700년이 지난 지금도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농업용수와 식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주요 우물은 깊이가 360m 이상이며, 그 길이만 해도 45km에 이른다. 이란인들은 벌써 기원전 328년에 이런 카나트의 물을 부족민들이 공정하게 분배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펜잔(Fenjaan)이라 불리는 물시계를 발명하였단다. 2016년 유네스코는 이란의 주요 11개 카나트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이것이 바로 이란의 마지막 목숨 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