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Cize) 언덕의 오리손 산장을 뒤로하고,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피레네의 품속 깊숙이 들어간다. 돌아보면 저 멀리 아득히 운해(雲海)가 가득하고 시뻘건 태양은 다시 구름에 그 얼굴을 가린다. 온통 초록색뿐인 주변의 경관에 눈망울이 맑아지는 듯하다. 언덕길을 오르면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자 숨막히게 환상적인 풍경속에 숨어있는 오리손 산장의 모습에 저절로 탄성을 지르게된다.
간밤에 잠을 설쳤지만 맑은 공기와 산뜻한 풍경 들이 정신을 똘망똘망하게 한다. 완만한 아스팔트 포장길을 걸어 올라가면 길섶의 풀과 야생화가 반기기도 하지만 주변목장에서 이동하기 위해 길을 나선 소와 말, 양들과 마주치기도 하고, 이들이 도로 위에 마구 배설한 똥무더기들도 신발 바닥을 조심하게 만든다.
제2일 차 숙박 장소인 론세스바예스 까지는 아직도 17km를 걸어야 한다. 배낭의 무게와 마실 물의 무게가 더해져 약 12kg 정도 나가니 양 어깨와 다리가 조금씩 불편해 온다. 주변 경관도 보고 사진도 찍으면서 천천히 페이스를 유지하면 걷는다.
아침 식사를 하러 나온 양 떼들과 길에서 조우한다. 모든 양들의 목에 방울을 달아 놓아서 아침 안개와 풀잎의 이슬처럼 방울소리가 청초하게 들린다. 이 녀석들이 길을 빨리 비켜주지 않고 마치 자기네 전용도로로 활용한다. 갈길 먼 순례객도 좀 배려해 줄려무나. 목동들이 몰고 다니는 개들을 시켜서 양떼들의 진로를 도로 옆쪽으로 정리해 주어서야 겨우 지나갈 수 있었다. 밤새 비를 맞은 양떼들이 두틈한 양털이 흠뻑 젖어서 무거워 보인다. 털깎이 계절이 다가오는 것인가?
도로에서 크로아티아에서 온 세 여자들과 만났다. 이들은 마치 남자처럼 큰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걷는다. 세 사람이 친구사인데 의기 투합해서 순례길에 올랐단다. 덩치도 크고 활동적이며 성격도 서글서글했다. 2km를 같이 걸으면서 사진도 찍고 했다. 이들과는 그날 저녘에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도 함께 했다. 순례길의 인연은 계속된다. 이들과는 앞으로 쭉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