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논어> 안연편(顏淵篇)에서 정치에 대한 자공(子貢)의 물음에 가장 먼저 갖출 것으로 <족식(足食)>을 얘기했다. 최우선 먹을 것이 넉넉해야 바른 정치를 펼 수 있다고 봤다. 노자(老子)도 다스림의 극치는 백성이 각자 음식을 달게 먹고(민각감기식 : 民各甘其食) 옷을 잘 입게(미기복 : 美其服) 하는 것으로 봤다. 제나라 관중(管仲)은 백성들의 본성을 “창고가 차야 예절을 알고(창름실의지예절 : 倉廩實而知禮節), 의식이 족해야 영욕을 안다(의식족이지영욕:衣食足而知榮辱).”고 봤다. 하물며 동막골 이장도 많이 먹여야 잘 따른다는 이치를 알았다. 이렇듯 의식주의 풍족함이 그만큼 중요하다. 부족하면 개인이나 국가나 가난해지고 빚을 지게 된다.
빚진 이는 발을 뻗고 못 잔다는 우리 속담(俗談)이 있다. 돈의 빚이든 마음의 빚이든 그만큼 부담스러운 것이다. 빚은 인간 생활에 필요악적(必要惡的)인 제도이고 조심해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성경(聖經)에서도 빚에 대한 경고가 많이 보인다. 잠언 22장 7절에는 "빚진 자는 채주(債主)의 종이 되느니라."라고 했고, 로마서 13장 8에는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경고했다.
빚의 한자(漢字)인 부(負)와 채(債)의 글자는 재물을 나타내는 조개(貝)와 가시 돋친 돈을 짊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는 빚을 지면 허리가 휘도록 돈을 갚아야 된다는 의미이다. 역사에서 볼 때 개인이나 국가나 빚은 단순히 경제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개인의 빚은 당사자의 사망으로 탕감(蕩減)될 수도 있지만 국가는 멸망(滅亡)만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전 국민이 노예가 되는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만연하는 코로나 팬데믹(Pandemic)의 2년차에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많은 국가가 양적완화(量的緩和)를 통한 인위적인 경기 부양을 노린다. 이러한 정책은 밑돌을 뽑아 위를 막는 것으로 국가 부채의 증가로 이어진다. 예로부터 수많은 국가가 빚더미에 눌려 쇠락(衰落)의 길을 걸었다. 경제사학자인 하버드대 벨퍼센터(Belfer Center)의 니얼 퍼거슨(Niall C. Ferguson) 교수는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갈 때 누가 돈을 빌려주고, 누가 돈을 빌렸는지 하나둘 따져보기 시작할 것”이라며 “빚은 경제 문제를 넘어서 각 나라의 운명과 세계의 지정학적(地政學的) 구도를 바꿀 변수”라고 했다.
16세기 스페인은 전 세계 금은(金銀) 총생산량의 83%를 차지하는 최고 부국이 이었다. 아메리카 대륙 발견과 중남미 식민지, 아프리카 식민지, 필리핀 등 동남아 식민지, 결혼동맹으로 오스트리아 등 합스부르크 영토 합병, 지금의 벨기에와 네덜란드 지역인 플랑드르와 프랑크 공국,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시칠리아 등이 모두 스페인 제국의 영토였다. 최초의 해가 지지 않는 거대 제국이었다. 통치자는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모르고 턱의 교합(交合)이 맞지 않아 파리가 수시로 입속으로 들락거렸다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스페인 국왕인 카를로스 5세(1516~1556)이다. 그는 왕권강화와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되어 재위기간 동안 유럽 통합 전쟁에 몰두했다. 1566년에 아들 펠리페 2세(1556~1598)에게 왕위(王位)와 빚더미를 함께 물려줬다. 말하자면 5년 후까지 모든 국고수입이 저당(抵當) 잡혀 있었던 것이다. 막스 베버(Max Weber)에 따르면 당시 스페인은 국가수입의 70%를 전쟁비용으로 썼다고 한다. 경상수입의 65%~70%가 채권이자 상환에 지출되었다. 1576년에는 군사들의 급료가 국가 수입액의 2.3배에 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펠리페 2세는 등극(登極)한 다음 해에 1차 국가부도를 선언한 이래 재위기간 동안 무려 5차례나 국가부도를 선언하면 경제적 파탄을 만들었다. 경제력의 뒷받침 없는 무적함대는 영국과의 칼레(Calais) 해전에서 처참하게 패하고 스페인도 해가 지는 나라로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했다.
1789년에 유럽과 미국에서 세계사적인 일이 발생한다. 유럽에서는 프랑스혁명이 발생하여 결국 부르봉(Bourbon) 왕조가 멸망하고 3~4년 후 루이 16세와 적자부인(赤字婦人)이라는 별명의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Marie Antoinette)는 단두대(斷頭臺)의 이슬로 사라졌다. 미국에서는 독립국 초대 대통령으로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취임한다. 켄터키(Kentucky) 주 버번 카운티(Bourbon County)에서 술을 좋아하는 필자(筆者)에겐 아주 의미 있는 일이 하나 더 일어난다. 일라이저 크레이그(Elijah Craig) 신부가 옥수수를 주원료(主原料)로 증류한 버번위스키(Bourbon Whiskey)를 처음 만든 것이다. 버번 카운티에서 만든 술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대혁명과 부르봉 왕조의 몰락은 루이 14세부터 16세까지 왕들의 재정 파탄이 제일 큰 원인이다. 특히 루이 16세는 국가 재정 수입의 절반 이상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빚을 갚는데 들여도 모자라서 계속 기채(起債)를 해야 했다. 더구나 캐나다 퀘벡(Quebec)을 영국에 빼앗긴 악감정으로 없는 살림에도 미국 독립전쟁에 막대한 재정과 군사력을 투입했다. 부르봉 왕조는 망했지만 미국은 도와준 은혜에 보답하여 옥수수 주산지(主産地)를 버번 카운티로 명명(命名)하였다. 부르봉 왕조는 미국의 위스키 병(甁)에 살아있는 것이다. 재정적자의 여파는 혁명 후에 집권한 나폴레옹에게도 닥친다. 영국과의 경쟁으로 재정 압박이 심했던 프랑스는 뉴올리언스(New Orleans)와 루이지애나(Louisiana)를 포함한 미국 중부의 땅을 1,500만 불에 넘겼다. 말하자면 나폴레옹이 매국노(賣國奴)가 된 것이다. 그 땅이 규모는 우리나라의 열 배가량인 214만㎢였고 지금의 15개 주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사 통계 전문가 브라이언 미첼(Brian R. Mitchell)의 <International Historical Statistics: Africa, Asia and Oceania, 1750-1993>에 제정(帝政) 러시아의 재정 통계가 자세히 나온다. 당시 러시아는 러일전쟁 이전인 1894년~1903년 10년 사이에 매년 평균 1.3억 루블 정도의 재정 적자였다. 그런데 러일전쟁 기간인 1904년에는 종전의 5.5배인 7.2억 루블, 1905년에는 무려 9배인 11.8억 루블의 재정 적자를 낸다. 니콜라이(Nicholas) 2세는 이 자금 마련을 위해 내국채 6억, 외국채 6.8억 총 12.8억 루블을 연리 5%로 발행했다. 러일 전쟁으로 입은 러시아의 손실은 직접 전쟁 경비와 물자 파괴 등 간접손실을 포함해서 60.5억 루블에 달했다. 그리고 얼마 후 또 제1차 세계대전에 가담하여 막대한 재정 적자를 더하자 국내는 굶주림과 노동자의 파업 등 혼란의 연속이었다. 결국 1917년 2월(러시아 달력으로 3월) 혁명이 일어나서 로마노프(Romanov) 왕조는 몰락하고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이듬해 형장(刑場)의 이슬로 사라진다. 당시 러시아의 국가 재정이 연간 20억 루블 정도였는데, 볼셰비키 혁명 후 국가부도와 채권 무효화를 할 때 채권액이 90~100억 루블이나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도 왕조의 몰락 50년 전인 1867년에 크림전쟁의 재정 부담으로 알래스카를 720만 불에 미국으로 판 전력이 있다.
우리의 조선(朝鮮)은 더 심했다. 조선 후기 들어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의 문란은 국사책의 단골 메뉴니까 생략하겠다. 조선은 원래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전남대 김재호 교수의 논문 <조선 후기 중앙재정과 동전 : 부역실총(賦役實摠)을 중심으로>에 보면 1794년 국가 총 재정규모는 쌀 178.2만 석이고, 중앙재정이 97.8만 석이었다. 양반들의 조세저항과 상공업에 대한 증세가 별로 없어서 조선 후기까지 국가 재정은 이 규모를 크게 상회하지 않았다. 반면에 씀씀이는 점점 커지고,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의 수탈이 점차 심해져 백성들은 도탄(塗炭)에 빠지고 민란이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재원이 없어 군인의 봉급마저 13개월이나 체불하다가 모래와 겨를 섞은 쌀로 주니 반란이 안 일어나겠는가? 나라를 누가 지킬까? 그런데도 국정 최고책임자인 고종은 사치와 방종을 일삼으며 꿈속을 헤매면서 서서히 나라를 말아먹고 있었다. 조선일보 박종인 기자가 쓴 <매국노 고종 :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도자>에 그 실상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대원군의 개혁은 경복궁 복원만 제외하면 대부분 당시의 현실에 부합했다고 볼 수 있다. 고종은 아버지를 부정하여 지우고 조선을 국가가 아니라 자기의 재산 정도로 인식했다. 민비(閔妃)와 함께 경쟁하며 매관매직으로 자기 곳간은 채우고 나라는 헛간으로 만들었다. 일본에 나라를 야금야금 팔아 뒷돈을 챙겼다. 러일전쟁의 전쟁터 제공 명목으로 뇌물 30만 엔, 경부선 철도 이권(利權)으로 주식 1,000주와 5만 원을 받았다. 을사늑약 3개월 전에 탁지부(度支部) 재정고문인 일인 최초의 하버드대 출신 메가타 다네타로(目賀田種太郞)로부터 궁중 용돈 150만 엔을 떡값처럼 받았고, 1주일 전에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서 황실 내탕금 10만 원을 받는데 그중 2만 원은 자기 개인용으로 받았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벌어졌을 때 대한제국의 예산이 1,310만 원인데 국가채무가 1,300만 원이었다. 왜 이리 빚이 많았을까? 고종이 자기 과시의 돈을 물 쓰듯 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었다. 독일제 철모와 영국제 군복을 사고, 미쓰이(三井) 물산으로부터 적당히 치장한 고물 상선을 즉위 40주년 기념 예포를 쏠 순양함이라고 속아서 군부예산(軍部豫算)의 26.7%인 110만 원에 샀다. 황제 옥새(玉璽)를 새로 파는데 황금 천냥, 생일상에 올릴 프랑스제 식기를 사는 데 예산을 썼다. 돈은 신경 안 쓰고 무당굿을 하고, 용왕과 물고기를 위해 몇 백 석 밥을 지어 한강에 내던졌다.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도 고종과 민비 부부의 실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무당·박수·통역관이 인사를 좌우하고, 금강산 암자마다 굿판이 즐비했고, 곳간을 채우기 위해 매관매직을 경쟁적으로 일삼았다. 관찰사와 부사직은 아예 공시가격을 매겨서 팔다 보니 자주 교체를 해야 수입이 컸다. 한성판윤의 경우 고종 27년(1890년) 한 해 동안 무려 29명을 갈아치웠다. 고종 재위 44년간 서울시장을 385명이나 갈았으니 나라가 무슨 수로 안 망하겠는가?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7차례나 외국의 공관을 찾았으나 문전박대(門前薄待)를 당하다가 겨우 아관파천(俄館播遷)을 한 국왕에게 백성은 그저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였다. 메이지(明治) 일왕(日王)과 1852년 동갑으로 태어나서 메이지 보다 4년 먼저인 1863에 즉위했으나, 한 사람은 국가의 중흥조(中興祖)가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망국노(亡國奴)가 되었다.
코로나 창궐로 재정 수요 증가와 재정적자가 대부분의 국가에서 발생한다. 미국은 2020 년 3.13조 달러 적자에 2021년에는 2.3조 달러로 26.5%가량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웃 일본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2021년 지출예산이 106.6조 엔인데 수입예산이 57.4조 엔으로 49.2조 엔이 적자다. 더 심각한 것은 지출예산 중 사회보장비 35.8조 엔, 국채이자 23.7조 엔으로 전체의 55.8%를 차지한다. 2020년 말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을 보면 미국 108%, 일본 266%, 영국 116% 등 OECD 평균이 110%이다. 우리나라는 OECD 기준 연금부채를 포함해서 93% 정도로 조금 낮은 편이다. 2020년 IMF가 집계한 코로나19 대응 재정투입액의 GDP 비율과 (괄호) 속의 수치인 GDP 대비 재정적자율을 보면, 일본 11.3%(-13.9%), 독일 8.3%(-7.6%), 캐나다 12.5%(-19.8%), 미국 11.8%(-16.7%), 영국 9.2%(-15.5%), 한국 3.5%(-3.7%)이다.
수치상으로 봐서 우리나라가 조금 나은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 정치권에서 100조 원 규모의 자영업자 손실보상제와 추가로 제4차 재난지원금의 시행을 논의 중이다. 선거를 앞두고 선심용·인기영합용 무상복지가 더 나올 수가 있다. 그러면 올 말의 국가 부채는 1,100조 원 대에 이르고 국가부채비율도 OECD 평균에 육박할 전망이다. 수치상 미국과 일본이 더 심각하다 하겠지만 그들은 기축통화국이고 일본의 국채는 많은 부분은 국내의 기업과 개인이 보유하고 있어서 우리와 사정이 다르다. 야당 대표 시절 국가부채가 40%를 넘으면 위험하다고 주장하더니 정작 본인이 집권하고부터 나라 빚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으면서 집권 4년 말에는 60%(연금충당부채 제외)로 전망된다. 미래세대의 등에 무거운 짐을 지워 허리가 휘게 하는 것이다. 더욱이 2020년 인구가 전년보다 2.8만 명 감소한 결과를 볼 때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과 부채함정(Debt Trap)이 동시 다발로 올까 두렵다. 가계부채나 국가부채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게 무엇인가? 바로 금리이다. 금리가 오르면 무너지지 않은 장사가 없다. 더구나 금리 수준을 주도적으로 결정할 권리가 없는 우리나라는 바람 앞의 등불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권에서 미래에 대한 아무 생각 없이, 선거용 인기 영합적 정책이나 입법 활동은 마구잡이로 시행하는 것을 적극 근절(根絶)하여야 할 것이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를 보라. 독일이 코로나19로 293조 원의 나라 빚을 냈지만 그는 2023년부터 이를 갚는 계획을 국민들께 분명하게 밝혔다. 그가 15년 이상 장기 집권한 이유이다. 모든 정책과 입법은 철저하게 수입 대책을 동시에 강구하는 페이고(PayGo : Pay as you go) 제도와 실명제(實名制)를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