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수의 세상 읽기(210119)
역대 어느 정권이나 범죄자의 사면(赦免)에 대한 정치적 결정으로 인하여 많은 논란에 직면하게 된다. 사면이란 헌법에 근거하여 형벌에 대한 선고(宣告)의 효력 또는 공소권 상실, 형 집행을 면제시키는 국가원수의 고유 권한을 말한다. 고대국가에서는 왕이 국가의 모든 형벌권(刑罰權)을 행사하였기에 형벌의 면제에 대한 은전(恩典)도 군주의 고유 권한이었다. 동양 역사서에 최초로 사면이 언급된 것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에 나온다. 효문제(孝文帝)가 이복동생인 회남여왕(淮南厲王) 유장(劉長)이 BC177년에 벽양후(辟陽侯) 심이기(審食其)를 철추(鐵鎚)로 죽인 사건이 있었다. 그가 모친의 원수를 갚았다고 그의 뜻을 가엾게 여기고 또한 형제간이라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고 회남여왕(淮南厲王)을 사면했다.(孝文傷其志, 為親故, 弗治, 赦厲王.)” 서양은 BC1,750년경 함무라비 법전에 간통범들은 끈으로 묶어서 같이 익사(溺死)시키는데, 간통한 아내를 남편이 용서하면 국왕이 상간남(相姦男)도 사면하는 기록이 있다.
우리 역사에는 부여국(夫餘國)에서 추수감사제인 영고(迎鼓) 의식을 할 때 죄질이 가벼운 죄수를 풀어주었다는 기록이 중국의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 부여조(夫餘條)>에 전한다. 국내 역사서에는 최초로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2년에 시조의 묘소에 제사를 지내고 죄수들을 크게 사면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제도는 고려, 조선으로 이어져 왔다. 실록에서 사면(赦免)은 사유(赦宥)·유사(宥赦)·탕척(蕩滌)·반사(頒赦)·대사(大赦)·방면(放免) 등 다양한 용어로 쓰였다. 사면은 천재지변, 국가적 행사, 왕실의 경조(慶弔) 등의 사유로 시행하는데, 대체로 크게 두 가지로 구분했다. 사면 대상 범위와 성격에 따라 일반적인 사유에 해당하는 상사(常赦)와 어떤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특사(特赦)가 있다. 상사는 전국적 범위로 시행하는 대사(大赦)와 어느 특정 지역에 한하는 곡사(曲赦)가 있었다. 사면의 시각은 매상(昧爽)이라고 하여 특정한 날의 먼동이 틀 무렵을 기준으로 했다.
실록의 태조 원년(1392) 7월 28일에 즉위교서를 내리면서, 역성혁명(易姓革命)에 반대한 사람인 이색(李穡) 등 56인의 죄를 사(赦)하면서 이미 발각된 것이든지 발각되지 않은 것이든지 모두 이를 사면(赦免)했다. 또 정종 즉위년(1399) 8월 8일에 사면하면서, 이미 발각되었거나 발각되지 않았거나, 이미 형량이 결정(結正)되었거나 결정되지 않았거나, 모두 용서하여 면제하라고 했다. 이것은 기결수, 미결수를 따지지 않고 또한 특정 시점 이전의 발생된 범죄행위를 모두 사면한 획기적 조치였다. 이러한 제도는 형벌권의 국왕 독점 시대의 은전권 제도로 삼권분립의 민주 법치국가로 이행되어 사법권을 침해하는 소지가 다분하다.
그래서 전국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관중(管仲)은 <관자(管子) 법법편(法法篇)>에서 이렇게 썼다. “은혜는 사면을 많이 하는 것인데, 시작은 쉬워도 뒤에는 어려워지니, 오래되면 그 화를 감당하지 못한다. 법은 시작은 어려워도 뒤에는 쉬워지니, 오래되면 그 복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면은 백성의 원수이며 법은 백성의 부모이다.(惠者, 多赦者也, 先易而后难, 久而不胜其祸:法者, 先难而后易, 久而不胜其福。故惠者, 民之仇雠也;法者, 民之父母也。) 또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명장(名將)이면서 재상인 오한(吳漢)이 병으로 위독하자 문병을 가서 유언을 물으니 ”신무사(愼無赦)“ 즉 신중히 하여 사면하지 말라고 고했다. 수(隋) 나라 학자 왕통(王通)의 저서인 문중자(文中子)에도 ”사(赦)가 없는 나라는 형벌이 반드시 공평한 법이다.(無赦之國, 其刑必平)“라고 했었다. 은혜를 베푼다고 사면을 남발(濫發)하면 법령이 바로 서지 않고 국가 기강(紀綱)이 흐트러져 그야말로 법 없이도 사는 선량한 백성이 도리어 힘들어진다는 뜻일 것이다.
반면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다산시문집 제10권 원(原) 편(篇)>의 원사(原赦)에서 사면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형벌(刑罰)의 의의는 그를 아프고 괴롭게 함으로써 허물을 고쳐 착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만약 사면이 없다면 어쩌다 형벽(刑辟)에 빠졌을 때 곧 자포자기(自暴自棄) 하게 된다. 더구나 죄상이 모두 다 정확할 수도 없고, 참소(讒訴)와 무고(誣告)도 있고, 혹은 격노(激怒) 끝에 엉겁결에 국금(國禁)을 범해 형벌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옛 성인(聖人)은 조심해서 백성들을 돌보는 방향으로 형을 집행하지, 되도록 놓아주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다산은 사면을 꼭 필요한 것으로 봤다. 다만 국가의 경사가 있을 때 무턱대고 일괄 대사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형량에 따라 일정 기준 기간의 복역을 필한 경우에 사면하는 것이 법을 두려워하여 요행수를 바라지 않고 개과천선(改過遷善)하는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은 태조의 즉위 때 사면을 한 이래 수백 차례의 사면을 실시하였다. 실록에 나타난 기록을 보면 사면(赦免)이 404회, 사유(赦宥)가 1,295회, 대사(大赦)가 405회, 반사(頒赦)가 347회 방면(放免)이 271회, 탕척(蕩滌)이 261회, 유사(宥赦)가 154회 등 언급이 된 것으로 보아 사면은 매우 자주 실시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사람을 두 번씩 죽인 동물도 사면을 받았다. 일본 쇼군(將軍) 원의지<源義持 : 미나모토 요시모치 –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의 아시카가 요시모치(足利義持)로 보임>가 보낸 코끼리가 태종 12년(1412) 12월 10일에 공조전서(工曹典書) 이우(李瑀)를 밟아 죽인 사건이 있었다. 이우(李瑀)가 그 꼴이 기이하고 추함을 비웃고 침을 뱉었는데 코끼리가 노하여 밟아 죽였단다. 법에 따라 코끼리를 죽이는 게 맞지만 죄를 사하고 전라도의 해도(海島 : 지금의 장도獐島)라는 섬으로 보내 기르도록 했다. 그 후 충청도 공주로 옮겨서 기르는데 또 노비를 밟아 죽였다. 그래도 처벌받지 않고 천수를 누렸다.
현대에 와서 사면의 실시 현황을 보면, 일반사면(一般赦免)은 1948년 9월 27일 정부 수립 기념 일반사면령을 비롯해 70년간 7차례를 실시하여 비교적 드물게 실시하였다. 이승만 정부 1차례, 박정희 정부 4차례, 전두환 정부 1차례, 김영삼 정부 1차례 등으로 권위주의(權威主義) 정부 시절 민심 회유책(懷柔策)으로 대규모 일반 사면이 단행되었다. 1995년 12월 2일 김영삼 정부의 일반사면으로 총 747만 명이 혜택을 받았고, 면제받은 벌과금과 범칙금의 총액이 518억 원에 달했다. 일반사면은 국회 동의(國會同意)라는 요건이 까다로워 역대 어느 정권이나 특별사면을 즐겨 사용했다. 특별사면은 대통령 취임, 석탄·성탄일, 광복절, 개천절, 삼일절 등을 기념하여 실시하였다. 삼권분립의 법치국가에서 사법부가 법에 따라 정당하게 단죄(斷罪)한 죄인을 대통령이 정권유지의 수단이나 정치적 목적, 선심용(善心用) 등으로 빈번하게 방면하면 법의 형평성과 사회 정의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특별사면 사례를 정부별로 보면 정치적 목적이 강한 면을 볼 수 있다. 박정희 정부는 25회, 전두환 정부 13회, 노태우 정부 8회, 김영삼 정부 9회, 김대중 정부 8회, 노무현 정부 8회, 이명박 정부 7회, 박근혜 정부 3회, 문재인 정부 4회를 기록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를 제외하고 모든 정부가 집권 기간 평균 1년에 1회 이상의 특사를 단행했다. 집권 기간 1년 평균 실시 빈도(頻度)를 보면 전두환 정부 1.86회, 김영삼 정부 1.8회, 노태우·김대중·노무현 정부 1.6회, 박정희 정부 1.43회, 이명박 정부 1.4회, 박근혜 정부가 가장 낮은 빈도이다. 빈도만을 보면 권위주의 정부 시절 특사를 남발(濫發)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문민·국민·참여정부 시절이 오히려 박정희 정부보다 더 빈도가 잦다.
특사의 빈도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정치적 의도나 정략적(政略的) 목적이 더 잘 나타나고 있다. 김영삼 정부의 특사는 문익환, 이부영 등 시국사범(時局事犯)을 대거 사면하고 전두환·노태우를 포함한 12·12 사태 주역(主役)에 대한 사면을 단행했다. 김대중 정부는 비전향장기수(非轉向長期囚)와 시국사범에 대한 사면을 많이 단행했다. 노무현 정부는 선거법 위반 정치인(政治人), 대북송금 관련자, 김홍일·김현철 등 전직 대통령 아들, 측근(側近) 안희정·강금원, 경제인 김우중·박용성 등에 대한 특사를 했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사범(經濟事犯) 정몽구·최태원·김승연·이건희·이학수 등을 사면하고, 자기 측근인 최시중·천신일 등을 임기 말에 사면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사범 최태원·이재현을 사면했다. 현 문재인 정부는 4차례 사면을 하면서 자기편인 이광재·곽노현·한상균·정봉주 등을 끼워 넣었다. 아직 임기가 남아서 추가로 몇 번의 특사를 더 할지 두고 봐야 한다.
각 정부에서 실시한 특별사면의 대상자를 면면히 보면 사법 정의가 구현되고 있는지가 개탄(慨嘆)스러울 뿐이다. 돈 있으면 벌을 받지 않는 유전무벌(有錢無罰)이요, 힘 있으면 징역살이를 하지 않는 유권무역(有權無役)이다. 돈 많은 재벌그룹의 회장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명목으로 짧은 형기만 복역하고도 일찍 사면을 받고 더욱이 전과자(前科者)인데도 두세 번 사면은 기본이다. 경제 살리기 효과는 허상(虛像)이고 경제 범죄를 부추기는 도구로 이용될 뿐이다. 김두얼 명지대 교수가 대검찰청 연구용역으로 쓴 <경영범죄와 기업성과>라는 보고서에는 범법 경영자가 처벌을 받을 때 오히려 당기순이익이 개선된다고 나왔다. 힘 있는 정치인이나 고급 관료의 사면 효과도 또한 마찬가지다. 전과기록인 별을 한 두 개 정도 달아야 도리어 선거에서 대접받는 후진적 정치문화이다. SBS의 조사 결과 두 번 이상 사면을 받은 힘 있는 사람들이 77명이고, 세 번 이상 사면받은 사람이 12명이었다. 이들은 힘만 있는 게 아니고 재범(再犯) 삼범(三犯)을 밥 먹듯이 하는 골수 범죄 습성을 지닌 사람들에 다름 아니다.
노태우 정부 이후 특사(特赦)가 된 고위층 666명의 구성은 경제인 261명, 정치인 242명, 고위공직자 146명, 대통령 친인척(親姻戚) 17명이다. 이들이 유죄 판결 후 사면까지 걸린 기간을 보면 고위공직자 582일, 대통령 친인척 588일, 경제인 620일, 정치인 984일이다. 평균 2년이 되지 않았는데 사면되는 것이다. 심지어 노무현 정부 시절 임동원·신건 전(前) 국정원장은 형 확정 5일 만에 사면되고, 김대중 정부 시절 유현근·박영하 전 대우 임원은 형 확정 7일 만에 초특급 사면되었다. 정말 사면제도를 가지고 정권의 입맛에 맞게 장난을 친 것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지금까지 사면이 4차례 있었고, 그것도 수사(搜査)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 확인된 경우에 한하여 사면을 시행할 수 있다. 프랑스는 부패공직자와 선거사범(選擧事犯)은 아예 사면 대상이 아니다. 덴마크도 정부 각료(閣僚)들에게는 사면이 금지되어 있다. 미국도 유죄 판결을 받은 후 최소한 5년이 경과하여야 사면 청원(請願)을 할 수 있다.
삼권분립의 법치국가에서 사면제도는 공공복리(公共福利)의 증진을 위한 전제 하에 평등의 원칙에 따라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사면 제도를 정치적으로 남용(濫用)하거나 당리당략적(黨利黨略的) 차원이나 선거 전략용으로 시행하는 것은 엄격히 배격(排擊)하여야 한다. 자기 또는 자기편 사면을 위하여 상대방을 끼워 넣는 족집게 사면이야말로 정치적 술수(術數)의 극단적인 사례이다. 더 이상 사면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장난을 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금삿갓 芸史 琴東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