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팜플로나를 떠나서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를 거쳐서, 마네루(Maneru)까지 29km를 걸어야 한다. 중간에 해발 770m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이 고개가 페르돈 고개(Alto del Perdon)로 정상에 순례자들을 위한 철로 만든 조각물이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조선의 과객 금삿갓은 약간의 꾀를 내어 본다. 발 병도 나고, 무거운 인생의 무게를 줄이기도 했지만 모든 게 정상이 아니다. 이틀간 팜플로나에서 쉬고 약국에서 약을 사서 발가락과 발에 발랐지만 낫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돌부리와 자갈이 촘촘한 고행의 순례자 전용길을 가자니 너무 힘들게 뻔하다. 어차피 자동차나 자전거, 오토바이, 말 등 탈 것을 이용하지 않고 온전히 걸어서 다음 숙영지(宿營地)로 도착하면 어느 길이든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느님도 눈 감아 주시겠지. 그래서 거리의 길고 짧음을 떠나서 자동차가 다니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순례길로 택하기로 했다. 숙소를 나와서 다음 목적지까지 가는 방향을 잡아서 부지런히 아스팔트 갓길을 걸어갔다.
오늘의 일정을 밝혀줄 아침 해도 찬란하게 솟아올라서 조선 과객의 발걸음을 응원해 준다. 그런데 문제는 이른 새벽에 아침잠 없는 스페인 노인들이다. 이들은 무슨 일로 꼭두새벽에 도로를 다니면서 참견이란 말인가? 조선 과객 금삿갓이 최신 병기인 한국의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으로 미국 놈들이 만든 구굴 지도와 네비를 검색해서 어련히 산티아고 가는 길을 잘 찾아가는데, 이들의 방해공작이 클 줄이야. 조선이나 서반아나 노인들의 참견이 극성이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그냥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알아들을 수도 없는 스페인 말로 이쪽으로 가면 안 되고, 산티아고 가는 길은 저쪽으로 돌아서서 다시 이쪽저쪽으로 가야 한다고 갈길 바쁜 금삿갓의 가는 길을 막기 일쑤다.
지나가는 사람만이 아니다. 지나가는 승용차도 가다가 서서 금삿갓에게 클랙션을 울리면서 창문을 내리고 저쪽으로 가란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왜 남의 일에 그렇게 참견을 하시나요? 서반아 아저씨, 아주머니들.
그나마 도로의 커다란 조형물과 길섶의 예쁜 꽃들만이 참견 않고 웃으면서 순례길을 재촉해 주는 것 같다. 늘 일출이 되기 전에 출발을 하다 보니 일출이 되면 조선 길손의 그림자 길이 즉 키가 정말 길고 크다. 어릴 적 시골 냇가의 미루나무처럼 길다. 어린이 대공원의 키다리 아저씨는 상대도 안 된다.
<아침 햇살에 그림자 놀이도 해본다.>무슨 꽃인지 모르지만 길섶에 향기로운 꽃들이 지천이다. 피곤한 발걸음을 꽃향기에 빌어서 잊어 보기도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 아스파라거스 농장 : 금삿갓>
길 옆으로 아스파라거스 농장이 끝없이 길게 펼쳐져 있다. 7월의 태양과 바람이 이들은 아주 무성하게 키워내고 있다. 아직 식용으로 하는 아스파라거스의 대궁이 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 심은지 1~2년생인 모양이다. 아스파라거스는 다년생 식물인데, 뿌리가 튼실하면 맛있는 아스파라거스 대궁이 그야말로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른다.....여기서는 아직 대궁이 안 올라온다.
버스 정류장도 보이는데, 은근히 버스를 타고 싶은 유혹도 생긴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누가 검사하는 것도 아닌데 버스를 타든 택시를 타든 무슨 상관이겠나. 하지만 순례길을 완보(完步)하겠다는 스스로의 생각이 모든 것을 물리친다. 조선 과객 금삿갓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을까?
벽난로 공장도 지나가고......
성모 마리아 십자가도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