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로뇨 시가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큰 강인 에브로 강을 건너야 한다. 이 강에 놓인 다리가 삐에드라 다리(Puente de Piedra)이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의 건물 사이로 이어져있는 까미노 싸인을 따라가다 보면 오래된 성벽의 일부처럼 보이는 문이 나온다. 이 문이 레벨린 문(Puerta del Revellín)인데, 이를 통과한 순례자는 광장에 도착하게 되고 여기에서 마르께스 데 무리에따라는 직선도로를 따라 계속 직진하면 로그로뇨 시내이다. 그런데 삐에드라 다리에 이르기 전에 큰 길가에 아주 커다란 시립공원묘지가 있다. 조선 과객이 그 길을 지나가는데 마침 장례식이 열리고 있었다. 과객이 초상집이나 잔치집을 그냥 지나치는 걸 보았나?
옛날 김산갓 선배도 마을에 잔치집이 있으면 가서 축하시 한수 읊어 주고 거하게 대접을 받고, 초상집에도 들어가서 문상을 하고 막걸리와 요기를 해결했던 것이 아닐까. 조선 과객 금삿갓도 바로 길 옆에서 장례식이 열리는데 조문을 하지 않고 서야 발길이 떨어지지 않지. 막걸리나 와인 한 잔을 얻어 마시려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만천하에 밝힌다. 하긴 영화에서 보면 서양 장례식은 그저 형식적인 의례만 하고 손미에게 밥이나 술 같은 음식 대접은 하지 않더구먼. 그런 줄 알고 간 것이니 전혀 술 욕심이 아닌 걸 독자님들은 아실 거다. 거물급 유지의 장례식인지 문상객도 많고 제법 엄숙하게 거행되고 있었다. 조선 과객의 예의범절 상으로 남의 장례식 행사를 사진으로 남길 수는 없어서 공원묘지를 한바뀌 둘러보고 나왔다. 이제까지 순례길에서 거쳐온 마을마다 많은 묘지를 보았지만, 이 로그로뇨시의 묘지가 최고로 크고 무덤과 비석들이 가장 화려하고 비까 번쩍했다. 역시 부자 동네의 묘지는 뭔가 돈을 들여서 뽐낸 티가 완연하다. 마치 후세에 가문이 번성해서 조상들의 무덤을 으리으리하게 새 단장하는 조선의 권세가나 재벌가 행태를 닮았다. 대학자 퇴계선생도 당신의 무덤은 작게 하고 비석은 더욱 소박하게 만들되 당신께서 쓴 자명(自銘)을 넣으라고 했는데.
"이 성스러운 장소에 들어가라. 당신의 고귀한 상태를 기리기 위해"라는 문구를 새겨 놓은 타일 현판이 걸려 있다. 인생의 순례길을 걷다가 누구나 그 길을 끝마치고 사라진다. 다만 남는 것은 살아 있는 자의 기억에서 일 뿐이다. 이 기억을 더 현란하고 더 크게 만들기 위해 경쟁적으로 무덤을 크게 만들고 비석을 더 크고 존재감 있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죽은 후의 일을 알지도 기억하지도 보지도 못한다. 살아있는 남은 자들이 자기만족으로 죽을 자를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것들이 무의미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각자가 각자를 기억하고 기리는 방법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