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곡창지대의 밀 수확(7/28)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삶의 빵을 위하여

by 금삿갓

우리 속담에 "밀밭만 지나가도 주정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 민족은 고래(古來)로 쌀 위주의 농사를 짓고, 주식(主食)은 쌀과 보리가 차지했다. 밀은 그야말로 주식의 보조 곡물로 활용되었다. 밀가루를 내어서 각종 식품을 만들고, 밀의 껍질 그러니까 밀기울은 발효시켜서 누룩을 만들어 술을 담그는 원료로 사용했다. 요즘이야 집에서 막걸리를 담그지 않으니까 밀기울이 전량 가축의 사료로 활용된다. 그러니 고려 시대에 서하(西河) 임춘(林椿)이 술을 의인화한 국순전(麴醇傳)을 쓰고,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가 국선생전(麴先生傳)을 쓴 것이다. 조선의 과객 금삿갓이 술을 좋아해서 밀 만 보아도 술 생각이 나서 글이 이렇게 나오고 말았네.

밀은 BC 1만∼1만 5000년경에 재배되기 시작한 오래된 작물 중에 하나이며 석기시대에 이미 유럽과 중국에서 널리 재배하였다고 본다. 원산지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캅카스 지방으로 추정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에 재배되었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조선 과객 금삿갓이 어렸을 때에 식량난으로 허덕일 때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많이 받은 물자 중의 하나가 밀가루와 옥수수 가루였다. 포대에 굳은 악수를 하는 그림과 미국 국민이 기부하는 것으로 팔거나 교환하지 말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그렇게 못 살던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식량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 경제 발전의 덕분이다. 그 당시 최빈국에서 이젠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을 넘보는 수준이 된 것은 정말 모든 국민이 일치 단결하여 경제 발전을 견인한 결과일 것이다.

순례길을 걷다가 정말 오랜만에 밀을 수확하는 것을 보았다. 10일을 넘게 걸어도 추수하는 모습을 못 보았는데, 이곳 메세타(Meseta) 구간에 들어서니 길가에 탈곡한 밀과 보리들이 수북하게 쌓인 더미가 많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마당에 멍석을 펼치고 구 위에 쌓아서 말리겠지만 여기는 그냥 밭옆이나 길옆의 공터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역시 대규모 농업을 영위하니까 농사의 절차도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그 드넓은 밭에는 농기계 한 대가 열심히 밀을 베고 탈곡을 할 뿐 농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릴 때 구슬땀을 흘리며 낫을 들고 보리나 밀을 베면서 가스레기에 온몸이 스멀거리는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농사도 이런 정도면 할 만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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