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부르고스(Burgos)에서 6시 40분에 출발하여 고된 메세타(Meseta) 고원 지대를 32km가량 걸어서 온타나스(Hontanas) 마을에 도착했다. 온타나스도 해발 800m가 넘는 고원지대이다. 마을 이름이 스페인어로 샘을 뜻하는 온타나(Hontana)이니까 이 마을 주변에 샘이 많은 모양이다. 언덕에서 내려올 때 이 마을에 있는 알베르게의 광고판이 여러 개 있었지만 눈여겨보지도 않았고, 마을 입구에 들어오니 너무 피곤하여 가장 먼저 마주치는 알베르게를 숙소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잡은 곳이 알베르게 후안 데 예페스(Albergue Juan de Yepes)이다. 겉 보기엔 돌로 쌓은 건물이 낡아 보였지만 안으로 들어와 보니 내부는 완전히 수리를 한지 얼마 안 된 깨끗한 숙소였다. 침대도 철제가 아닌 원목으로 튼튼하게 만들어졌고, 특히 정원을 향한 전면이 온통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마치 한강변의 아파트 거실처럼 시원했다. 정원에는 야외 수영장도 있고 아담한 정원도 잘 가꾸어져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주인장이 마음에 들었다. 젊은 여성인데, 성격도 발랄하고 시원시원하며, 영어도 아주 훌륭하게 구사했다. 주방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아주머니도 유머가 있고 요리 솜씨가 보통이 넘었다. 체크인을 하는 중에도 오늘 저녁은 자기가 솜씨를 발휘하여 정말 맛있는 식사를 제공할 테니 기대하란다. 무작정 들어온 숙소가 대박인 것이다. 기분이 좋아서 따로 식사를 하지 않고 숙소에서 제공하는 저녁을 단체로 먹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땀에 젖은 옷가지를 모두 벗어서 손빨래를 해 빨랫줄에 널어놓고 나서 한숨을 돌린다. 숙소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식당에서 생맥주 한잔을 시켜서 마셨다. 아직 저녁 시간이 되려면 낮잠을 한숨 자거나 수영장을 이용하거나,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다. 낮잠도 그렇고, 수영복이 없으니 수영도 못하고 그냥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사진이나 찍어야겠다. 동네 산책 후에 돌아오니 저녁 식사 시간이다. 주방장이 장담을 했으니 무슨 맛있는 요리가 나올까 싶어서 얼른 식당으로 모였다. 벌써 동숙자들이 먼저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조선 과객 금삿갓 맞은편에 젊은 남자 친구들 셋은 팜플로나에서부터 순례길에서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길 여러 번 했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온 대학생 친구들이다. 금삿갓 옆에 앉은 여성은 일본 순례객으로 도쿄에서 왔으며, 미국계 회사에서 일한다. 그 옆은 여성은 프랑스 출신으로 파리에서 왔다. 맨 마지막 젊은 남성은 영국에서 온 순례객이다. 음식은 전식(前食)으로 바케트 빵과 야채샐러드, 와인이 제공되었다. 야채샐러드는 양상추와 토마토, 파프리카, 삶은 옥수수, 달걀 등의 재료인데 드레싱이 정말 신선하고 플레이팅도 손색없이 잘 되었다. 모두들 맛있게 먹고 마시면서 메인 디시(Main Dish)를 기다렸다.
그랬더니 주방장과 주인장이 두 손으로 무겁게 들고 나타난 게 바로 커다란 빠에야(Paellla) 무쇠솥이었다. 정말 커다란 철판 솥에 한가득 빠에야를 만들어 들고 온 것이다. 맘껏 먹으란다. 빠에야는 원래 스페인이 회교를 믿는 무어인들의 통치를 받았을 때, 무어인들이 즐겨 먹던 이슬람식 쌀 요리인 플라우(Pilav, 필라프)를 현지식으로 변형한 음식이다. 당시 사용한 조리기구를 '파에야'라고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했다. 쌀을 많이 재배하는 발렌시아가 파에야의 원조로 본다. 모두들 즐거운 함성을 질렀다. 요리를 즐기기 전에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요리 탁자에 가장 가까이 앉은 덕분에 자원해서 오늘의 저녁 배식을 담당하기로 했다. 조선 과객 금삿갓이 군대 생활을 할 때 전해오는 전설이 하나 있다. 당나라 군대에 불문율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경계(警戒)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지만, 배식(配食)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 배식이 공평하지 않으면 불평불만이 생기고, 그에 따라 사기가 떨어져서 자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삿갓이 공평하고 공정하게 배식을 하려고 노력했다. 모두들 만족한가 보다. 병에든 포도주를 남기지 않고 모두 비운다. 얼큰한 취기가 돌자 서로에 대한 경계심도 풀리고 대화도 자연히 술술 풀리게 되는 것이다. 각자 자기소개와 순례길의 소회를 얘기하다가 발동이 걸려서 <오빠는 강남 스타일>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모두들 유튜브에서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오빠는 강남 스타일>을 유튜브로 틀어놓고 급기야 춤판이 벌어졌다. 역시 춤과 노래가 대화보다 더 빨리 인간적 유대관계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모두들 순례길의 피로를 싹 씻고 즐거운 춤판으로 스트레스를 날린 광란의 만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