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타나스(Hontanas)에서 즐거운 밤을 보내고 7월 29일 아침 6시 40분경에 숙소를 나섰다. 오늘도 평원을 가로 딜러 걷는 길이다. 마을을 빠져나와서 가르반수엘라 시내(Arroyo de Garbanzuela)를 건너서 약간의 오르막 지대를 올라간다. 언덕의 중간쯤에 거대한 석탑 모양이 눈에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석탑이 아니고 허물어진 유적의 일부였다. 바로 산 비센떼 성당(Ermita de San Vicente)의 유적이다. 까스뜨로헤리스(Castrojeriz) 마을로 향하는 언덕 기슭 까미노의 오른쪽으로 서있는 건축물로 현재는 모퉁이의 벽체만 남은 유적이었다. 과거 순례길이 번창하였을 때 있었던 성당인데 이제 그 잔해만 남아 옛 영광을 기록하고 있다. 성당의 집터와 주변의 돌담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농경지로 변했다. 벽체의 남은 부분이 곧 쓸러 질까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서 있어서 조선 과객이 보기에 안타까운 모습이다.
온타나스에서 7kM가량을 걸어오면 산 안톤 수도원(Convento de San Anton)의 유적이 웅장하게 서 있다. 이 유적은 1146년 알폰소 7세(Alfonso VII) 왕이 이곳에 병원 설립을 허가하였고, 1093년 프랑스 귀족 가스톤(Gaston)과 게랭 드 발루아르(Guérin de Valloire)에 의해 설립된 안토니안 기사단의 구성원들이 수도원과 대규모 병원을 건설했다. 병원은 카스티야 왕조와 포르투갈의 여러 왕국에 있는 성 아콘니우스 총사령부의 본부였으며, 20개가 넘는 종속 군령(가옥, 수도원, 병원)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매우 중요한 거점이었다. 13~14세기에 만들어진 이 건물들의 일부가 보존되어 있으며, 이 중 첨두아치형 문과 순례자들이 밑으로 지나가도록 되어 있는 커다란 아치가 돋보인다. 남아있는 유적들의 규모를 보아서 당시의 성대했음을 짐직할 수 있다. 이 수도원장의 원장으로 알려진 성 안톤은 기독교 금욕주의자였으며, 그의 생애는 성 아타나시우스가 기록했다. 그는 이집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나중에 그는 재산을 팔고 은둔자가 되었다. 그의 유물은 오랫동안 알렉산드리아에 보관되었다가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가 마침내 프랑스로 인도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중세에 순례자들은 ‘산 안똔의 불(Saint Anton's Fire)’이라는 병으로 고생했다. ‘산 안똔의 불’은 맥각증(麥角症 : Claviceps Purpurea)이라는 병으로 몸속에 불이 나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져서 당시에 그렇게 불렸다. 심해지면 손발의 끝이 썩어 들어가는 괴저병의 일종이다. 호밀이나 벼 등에 기생하는 맥각균이 일으키는 독성 알칼로이드로 인해 중독을 일으킨다. 습한 저장고에서 많이 번식하기 때문이다. 산 안똔 병원은 오래전부터 안토니오회 수사들이 운영하면서 ‘산 안똔의 불’에 걸린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곳이었다. 산 안똔 수도회는 이 병자들에게 모포를 제공하고 환자들을 극진히 돌보았다. 병에 걸리지 않은 나머지 순례자들에게도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였다. 병자들을 간호하는 수사들은 자신들의 감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나무로 만든 타우 십자가를 지니고 다녔단다. 수사들은 환자들의 병이 심한 경우 사지 절단 수술을 하도록 훈련받았으며, 병이 나은 환자들은 나무나 밀랍으로 완치된 사지를 만들어서 수도원에 이를 헌납했습니다. 수사들은 환자의 절단한 사지를 수도원에 전시했다고 한다. 이들이 환자의 팔이나 다리를 절단할 때 병원의 벽돌벽에 팔이나 다리 크기의 구멍을 뚫고 그곳에 팔다리를 끼워서 고정시킨 후에 벽 반대편에서 절단했다고 한다. 북부 유럽에서의 주식이 라이보리나 호밀이었기 때문에 이 병이 널리 퍼진 것인데, 병자들은 스페인을 순례하면서 깨끗한 밀로 만든 빵이나 음식을 먹음으로 인해 자연스레 증상이 완화되곤 했다. 산티아고에 도착할 즈음이면 완치가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도 야고보와 안토니오회 수사들의 도움으로 ‘산 안똔의 불’이 낫는다고 믿게 되었단다.
이 수도원 유적에 요즘도 순례객들이 묵었다 갈 수 있는 알베르게가 있다. 모든 것을 자원봉사자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숙소인데, 아주 원시적 생활을 동경한다면 한번 숙박해 봄도 좋다. 숙박비는 무료이고 기부금으로 운영한다. 석식과 조식도 무료인데 참가자는 같이 조리를 해야 한다. 가장 힘든 것이 이곳에는 따듯한 물이 나오지 않고, 전기도 없다. 이러한 불편을 감수하면 1,000년이 넘은 오래된 숙박 시설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경험도 좋을 것이다. 밤이면 은하수와 스페인 북부 고원지대의 별밤을 관찰하기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