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이떼로 델 까스띠요를 지나서(7/29)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지상에서 영원으로

by 금삿갓

오늘 아침 온타나스(Hontanas)에서 출발하여 9Km를 걸어서 까스뜨로헤리스(Castrojeriz) 마을을 지나 해발 901m인 모스뗄라레스 언덕(Alto de Mostelares)을 넘어야 된다. 그리고는 이떼로 델 까스띠요(Itero del Castillo) 마을까지는 9.6Km인데, 계속 메세타(Meseta) 구간이다. 까스뜨로헤리스 마을에서 나오면 오드리야 강(Rio Odrilla)에 놓인 나무다리를 건너게 된다. 강이라고는 불리지만 우리나라의 개울 수준이니 간단하게 나무다리가 놓여있다. 다리를 지나서는 점차 순례길이 오르막길이다. 메마른 날씨에 뜨거운 태양아래서 언덕길을 오르는 것이 순례객들에게는 고역이다. 다행히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다. 언덕의 기슭에 올라서면 저 멀리 줄지어 늘어선 풍력 발전기들이 열일을 하고 있다. 언덕 꼭대기를 한참을 걷다 보니 카미노 조형물이 커다랗게 서있다. 돌탑을 쌓아 만든 것인데 스페인어로 뭐라고 써 놓았는데 글자가 마모되고 햇빛에 반사되어 사진으로 찍어도 글자를 해독하기가 곤란했다. 그 옆으로 철십자가가 있는데, 누군가가 등산화와 모자를 벗어서 걸어 놓았다. 언덕의 정상에는 음료수대도 없지만 그래도 구난처 구실을 하는 나무로 지은 쉘터(Shelter)가 강한 바람을 견디도록 낮은 지붕으로 세워져 있다. 역시 쉘터 안과 바깥은 순례자들이 남긴 낙서로 어지럽다. 역시 호모 스크리벤스(Homo Scribens) 답게 빈틈없이 자기의 흔적을 남기는 인간이다.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

모스뗄라레스 언덕을 지나서 내리막 즈음에 도착하니 지상에서 영원으로 떠난 순례객을 추모하는 기념물이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순례를 하다가 2008년 9월 25일 같은 장소에서 사망한 말라가 출신의 순례자 마누엘 피카소 로페스(1964-2008)를 기리기 위해 2009년에 세워진 기념비이다. 청동은 말라가 조각가 라울 뜨릴요(Raúl Trillo)가 제작했다. 그리스도와 희망의 동정녀 얼굴이 새겨진 부조이다. 부조는 철근 콘크리트 바닥에 새겨져 있으며, 그 위에는 프란시스코 루이스 히메네스 발베르드(Francisco Luis Jiménez Valverde)의 글과 함께 마누엘 피카소의 인물을 기념하는 사진이 새겨져 있다. 사람들은 왜 순례길을 걷는 것일까? 순례길에서 마주치고 헤어지는 사람들에게 왜 순례길을 걷느냐고 매번 물어보았다. 종교적인 이유로 걷는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깊은 대화가 불필요하니까 그냥 건성으로 종교적 이유라고 대답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나는 왜 순례길을 걷는가? 나는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실행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걷다가 보니 이 길이 좋고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푸근하다. 피카소 로페스는 한창 젊은 나이인데 무슨 연유로 영원한 안식에 들었을까? 과거에는 아픈 몸으로 순례길에 나선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순례길에서 마지만 인생을 보내고 하늘로 가는 것이 천국에 이르는 길로 생각한 것이다.

황량한 고원지대에 그늘도 물도 없다. 다행히 프드트럭이 멀리서 보였다. 그런데 아직 오아시스의 역할을 하기에 준비가 더 필요한 모양이다. 문도 열리지 않았고 사람도 없었다. 터덜터덜 걸어서 이떼로 델 까스띠요 마을에 당도했으나 마을은 보이지 않고 길가에 이탈리안이 운영하는 기부제 숙소인 산 니콜라스(San Nicolas) 알베르게만 덩그러니 있었다. 이 알베르게는 순례객들의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자선 숙소이다. 별도의 숙박비나 식비를 받지 않고 각자 자기 마음의 기부금을 내고 식사 준비도 서로 도우면서 함께하는 공동체 숙소이다. 많이 먹고 적게 내면 다음에 도착하는 순례객이 적게 먹고 많이 내야할 지도 모른다. 이곳도 그냥 패스하고 걸었다.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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