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를 나서며(7/31)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영원한 순례자

by 금삿갓

산티아고길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Carrion de los Condes) 마을에서 아침 6시 10분경에 출발했다. 아직 여명(黎明)이 찾아오기 전이라 가로등이 없는 길은 손전등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 마을을 나오는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건물의 모퉁이에 커다랗게 붙어있다. 산티아고까지 401Km(A Santiago 401)라고 표시가 되어 있다. 이제 순례길도 반을 걸었고 이제는 그야말로 내리막길이라고 생각하자 힘이 솟는다. 마을 주변의 공원에 순례객을 상징하는 커다란 석조 조형물이 새벽의 어스름한 기운을 받아서 장엄하게 서있다. 동판에는 <인생에서 당신은 신의 영원한 순례자>라고 쓰여 있었다. 어쩌면 매우 지당한 말이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순례자일지도 모른다. 순례자 복장을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앞쪽의 남자와 아기를 안은 여성을 향하여 무언가 갈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이 예수나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조형물의 안내판을 볼 수가 없었다.

오늘의 코스는 첫 번째 마을인 깔사디야 데 라 꾸에사(Calzadilla de la Cueza) 마을까지 17Km 걷는 동안 전혀 마을이나 민가, 음수대조차 없는 그냥 넓은 평원뿐이다. 이 구간이 전체 순례길 중에서 마을과 마을 사이가 가장 긴 코스이다. 드넓게 펼쳐져 있는 밀밭 사이로 드문드문 나무들이 보이고 순례길이 그 나무들을 이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한 참을 걸어가니 들판의 오아시스인 푸드트럭이 간이 판매소를 설치하여 아침밥을 거르고 걸어온 순례객들에게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가 한 참이라고 하는 말은 원래 조선시대에 관리들이나 과객이 길을 갈 때 역참(驛站)에서 요기를 하거나 잠을 자고 출발하여 다음 역참(驛站)까지 거리를 말한다. 역참과 역참사이의 거리 단위로 한 참(站)을 사용하다가, 이 거리를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뜻이 변화한 것이다. 즉 하나의 역참을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 개념이 된 것이다. 그것이 보통 30여 리 정도였다. 그러면 요즘으로 치면 12~15Km 정도의 거리이다. 우리는 아침을 준비하여 브라운백(Brown Bag)으로 이동하므로 이곳을 통과하여 좀 더 걸어서 공원의 쉼터에서 아침을 해결한다. 도로의 표지판이 중구난방이다. 마을에서 401Km 표지를 보았는데 여기서 다시 더 멀어진 거리인 405Km 표지판이 나온다. 하긴 어느 길로 가느냐에 따라서 다를 것이다.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

공원의 숲 쉼터에는 먼저 지나간 순례객이 남긴 흔적이 있다. 쉼터의 시멘트 탁자 위에 먹다가 남은 빵 조각과 벗어 놓은 고깔모자가 얌전하게 남아있다. 빵 조각 옆에는 친절하게 안내 문구로 써 놓았다. 7월 30일 즉 어제 구입한 애플파이인데 다 먹지 못해서 남겼고, 아직 신선하니까 뒤에 도착하는 순례객중 필요한 사람은 안심하고 섭취하라는 문구이다. 순례길이 이렇게 넉넉한 인심이 돋보인다. 가끔 스틱이나 반창고 같은 것들을 남겨 놓고 뒤에 오는 사람이 사용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고깔 모자는 조선 과객 금삿갓의 모자와도 흡사했으나 약간 더 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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