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이 산티아고 순례길로 모여들까? 종교적 이유 때문만을 아닐 것이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왜 이 길을 걷는지 물어본다. 그냥 좋아서, 다른 사람들이 많이 걸으므로, 한 번은 꼭 걷고 싶어서, 체험을 넓히려고, 도전하고 싶어서 등등..... 제각각의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걷기의 끝판왕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서안까지 12,000Km를 걸은 베르나르 올리비에(Bernard Olivier)도, 연금술사의 파울로 코엘료(Poulo Coelho)도 이 길에서 땀을 흘렸고, 삶의 궤적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기도 했다. 영원의 순례길로 먼저 간 순례자를 기리는 길섶의 십자가를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살다 보면 내가 왜 여기에 서있는지 멍하게 생각되는 그런 날이 있다. 모든 걸 훌훌 털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고 싶은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고, 아니면 아직 미련이 남아서 버리고 다른 길을 시작하기에 머뭇거리는 경우도 있다. 인생의 어느 순간이 가장 좋은 기회일까? 그만 두기에, 다시 시작하기에 어느 순간이 가장 좋을까? 40여 년을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아쉬움이 더 많은 길이었다. 800Km를 걸어도 새로운 길이 펼쳐질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체념이 먼저 생각나는 건 용기의 부족일 거다. 특별한 나만의 목적도 없이 그냥 남들이 걸으니까 나도 걸어보는 그런 길이 아니길 소망해 본다. 당장 추구하는 바가 없어도, 무념무상한 채로 몇 시간을 걸으면서 일상으로부터 일탈하는 것 자체가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나만 걷는 넓은 평원, 하늘 끝까지 닿은 아마득하게 쭉 뻗은 길에서 바라보이는 모든 것에 의미가 새겨져 있으리라.
천 년의 세월 동안 무수한 순례자들이 조개껍질을 매달고 이 길을 걸었으리라. 정확히 우리말로 하면 조개 중에 가리비 껍데기이다. 왜 이것을 매달고 길을 걸을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전설이 있는데, 어느 것이 진실인지 확인 불가하다. 첫 번째 전설은 성 야고보의 시신과 관련된 것이다. 야고보는 요한의 형으로 예수의 열두 제자에 속한다. 야고보는 성질이 우직하고 직선적이어서 예수가 복음을 땅끝까지 전도하라고 하자, 예수 사후에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행동했다. 예루살렘이나 로마에서 전도 구역 넓혀 땅끝까지 가는 방법이 아니라 처음부터 땅끝에서 시작하는 방법이다. 그야말로 단순 우직한 방법이다. 그는 지중해를 출발해서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대서양을 돌아 이베리아 반도의 땅끝 마을에 도착하여 전도를 하였다. 그러다가 성모 마리아의 임종 소식을 듣고 다시 돌아왔다가 예루살렘의 헤롯 아그리파스왕에게 예수의 제자 중 최초로 순교하였다. 그의 시신은 제자들에 의해 돌로 만든 배에 실려져서 처음 전도를 떠났던 길을 따라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근처의 연안으로 이동했다. 그때 돌로 만든 배와 시신에 가리비가 잔뜩 달라붙어 있어서 시신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아서 거기에서 장례를 치렀다. 그 후 스페인의 대부분 국토가 무어인의 이슬람교도들에게 점령되어 있을 때, 9세기경 기적적으로 하늘의 별빛이 그의 무덤 있는 곳을 계시해 주었다. 그래서 그의 시신을 찾고, 알폰소 국왕이 그 묘지위에 산티아고 성당을 세워서 지금의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가 되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스페인이 이슬람을 물리치는 전쟁에서 야고보의 기적이 가끔 일어나서 전승을 거두게 되자 성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신이 되었다.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 신도들이 예루살렘이나 로마로 순례여행을 하기가 위험하고 힘드니까 이곳으로 모이게 되어서 천년의 세월 동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리비가 야고보 성인 순례길의 상징물이 된 것이다. 12세기에 발행된 순례길의 안내서인 <칼릭스티누스 고사본(Codex Calixtinus)>에도 야고보 성인이 들고 있는 깃발과 주변에 가리비 껍데기 그림이 별처럼 흩어져 있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템플 기사단의 어떤 말 탄 기사가 바닷물에 빠졌는데 야고보의 도움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물 위로 떠오른 그의 몸에 가리비 껍데기로 싸여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화에 따라 가리비 껍데기가 야고보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치유와 구원의 능력을 뜻하게 됐다. 옛날에 순례자들이 순례길을 걸을 때 우물이나 샘을 만나면 이 가리비 껍데기로 물을 떠서 마시기도 하고, 허기진 순례자들이 음식을 구걸할 때 구걸의 도구로 쓰이는 등 실용성도 있었던 것이다. 르네상스시대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 그림을 보면, 비너스가 나체로 커다란 가리비 껍데기 안에 서있다. 이것은 바로 가리비가 생명의 탄생을 기원하는 뜻일 수도 있겠다. 가리비껍데기가 산티아고 순례자의 필수 품목이 되다 보니 이를 끈에 매달고 800Km를 걷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이 껍데기가 배낭과 부딪혀서 배낭에 구멍이 뚫리기도 한다. 그리고 순례길의 모든 교통 표지판에는 이 가리비 껍데기 표시가 있다. 간략하게 그려놓은 가리비 껍데기는 마치 여러 갈래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최종 종착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가리키는 표지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