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호빵이 생각나는 계절
금동수의 세상 읽기(201118)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도 계절은 흘러 어느덧 입동(立冬)이 지나고 소설(小雪)을 앞두고 있다. 필자는 해마다 이 맘 때쯤이면 호빵이 생각난다. 시골 오지(奧地)에서 조그만 도시로 유학을 와서 어려운 형편에 혼자 남의 집 문간방에서 자취(自炊) 생활을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용돈이 없어서 짜장면은 꿈도 못 꾸고, 주말마다 둘러메고 온 쌀과 보리쌀을 섞어 먹었는데 별미라곤 어쩌다가 라면 한 봉지 끓여먹는 것이 최고의 호사(好事)였다. 그 시절 학교에서 자취방으로 걸어오는 골목 어귀에 조그만 상점 하나가 있었다. 거기에 둥근 유리통 속에서 하얗게 부풀어 오른 호빵을 보면서 늘 군침을 흘리면서 지나치곤 했다. 하지만 언감생심(焉敢生心) 사서 먹어 볼 수는 없었다.
일전에 듣기로 호빵이 개발되어 시판(市販)된 게 50주년이라고 한다. 최초로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상품이라서 호빵이 고유명사인 상표명인데 보통명사인 상품명이 된 것이다. 아마 지적재산권(知的財産權)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시기라서 상표권 등록을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본다. 세계적으로도 유사한 사례가 매우 많다. 해외에선 나일론(듀퐁), 크리넥스(킴벌리 클라크), 스카치테이프·디스켓·포스트잇(3M), 스팸(호멀식품), 제트스키(가와사키), 샤프연필(샤프전자), 지퍼(굳 리치 컴퍼니), 노트북(도시바) 등등이 있고, 국내에도 호빵 이외에 에프킬라(삼성제약), 봉고(기아차), 컵라면(삼양식품), 미원(대상), 퐁퐁(LG생활건강), 햇반(CJ) 등등 많이 있다.
시판한 지 50년간 누적 판매량 60억 개를 달성했다니 추운 겨울철마다 우리 서민과 애환을 같이한 기호식품이요 든든한 요깃거리였다. 계산상으로 따지면 1년에 1억 2천만 개가 팔려야 달성할 수 있는 실적이다. 호빵의 크기를 지름 10cm, 높이 5cm로 봤을 때, 일렬로 연결하면 지구를 15바퀴 돌고, 위로 쌓으면 에베레스트산 높이로 3만 4천 개를 쌓을 수 있는 양이란다. 기업의 평균수명이 30년 남짓한 걸 감안하면 대단한 혁신이고 생명력이다.
소설(小雪)이 지나면 대설(大雪), 동지(冬至), 소한(小寒), 대한(大寒)이 다가온다. 서민이 어렵고 힘든 시기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다. 예로부터 몸이 아픈 것 이외에는 춥고 배고픈 것이 서글픈 것이다. 과거처럼 밥을 굶는 사람들이 드물게 된 것은 모두 부모와 선배 세대들의 땀 흘린 노고 덕분이다. 우리 모두 그들의 노고에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고도성장의 그림자 뒤에 가려진 아픔, 상대적 박탈감과 심화되는 양극화(兩極化),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지만 배 아픈 것은 참을 수 없는 현상들이 서서히 우리 사회를 물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점차 추운 겨울로 접어들고 있는데, 심대한 중증(重症)의 호흡기성 전염병인 코로나19가 동절기에 더 기승을 부릴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서민들은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소상공인들의 줄을 잇는 폐업, 언택트(Untact) 환경에 따른 실업의 증가와 소득 감소 등으로 정말 힘든 일상을 보낸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임대차 3법의 초강력 시행으로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솟는 전세가와 매물 부족 현상, 월세 시장이 혼란 등 겨우살이가 녹록(碌碌)치 않다.
논어 안연(顏淵) 편(篇)에 제자 자공(子貢)이 공자(孔子)에게 정치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백성을 풍족하게 먹이고(足食:족식), 군사력을 충분히 갖추고(足兵:족병), 백성들의 믿음을 얻는 것(民信:민신)이다.”라고 했다. 다시 자공이 부득이 버릴 경우 먼저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묻자, 군대를 가장 먼저 버리고(去兵:거병), 다음이 식량을 버려야(去食:거식) 한다고 했다. 자고로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므로(自古皆有死:자고개유사) 백성의 믿음이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民無信不立:민무신불립)고 했다.
이처럼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아늑한 안식처가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의 가장 기본이고, 나아가 정치 지도자나 시행하는 정책이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경제 상황도 어렵고, 앞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상황에서 내놓는 정책마다 신뢰를 얻지 못하고 매일 정치적 갈등만 일삼는 정치판은 신물이 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희망이 보이는 정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정치를 기대하는 게 사치일까? 안방 아랫목에 느긋하게 앉아서 따스한 호빵을 한 입 베어 먹을 수 있는 그런 덕치(德治)의 시대가 오기를 기다린다.(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