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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미녀 사무라이 - 도모에 고젠(巴御前)

★ 금삿갓의 은밀한 여성사 ★ (231120)

by 금삿갓

도모에 고젠(巴御前)은 생몰(生沒) 년대가 미상(未詳)인 헤이안(平安) 시대의 말기에 시나노(信濃)에서 활동하던 여자 무사다. 고젠(御前)은 이름이 아니고 일본에서 귀인이나 귀인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단어이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춤꾼 시라뵤우시(白拍子)이면서 미나모토노 요시츠네(源義經)의 첩이었던 시즈카 고젠(靜 御前)이나 《소가모노가타리(曾我物語)》에 나오는 유녀(遊女) 도라노 고젠(虎御前)처럼 시라뵤우시나 유녀(기생)를 가리킬 때도 폭넓게 쓰인 말이다. 군담소설(軍談小說) 《헤이케 모노가타리(平家物語)》에서는 무장 미나모토노 요시나카(源義仲)의 편녀(便女) 즉 첩실이었다. 미나모토노 요시나카가 1154년에 출생하여 30살로 사망한 것을 보면 그녀의 삶의 궤적(軌跡)을 짐작할 수 있다. 미나모토노 요시나카(源義仲)는 통칭 기소 요시나카(木曽義仲) 또는 아사히 쇼군(朝日将軍·旭将軍)으로 불린다. 겐페이(源平) 전쟁에서 활약했으며, 호쿠리쿠(北陸) 지방에서 거병하여 카와치 겐지(河內 源氏) 측에 선 무사들을 이끌고 헤이케(平家)를 교토(京都)에서 쫓아내는데 큰 공적을 세웠다. 하지만 교토를 점령한 후에 고시라카와(後白河) 법황, 그리고 가마쿠라(鎌倉)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와 대립하면서 입지가 약화되었다. 결국 4촌형 요리토모의 대군을 이끈 사촌 동생 미나모토노 요시츠네(源義經)에게 패배하여 죽었다. 교토를 점령한 후 갈등관계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당시의 상황이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폭설로 교토(京都)가 통째로 눈 속에 갇힐 듯이 좀처럼 그칠 기세가 아니다. 미나모토노 요시나카(1154∼1184)는 이틀째 서재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이다. 눈보라도 줄기차게 이어져 나다닐 상황도 못되지만 전운(戰雲)이 감도는 시기에 쇼군으로서 전례 없던 일이다. 따뜻하게 데운 니혼슈(日本酒)만이 두어 병 들여갈 뿐 인기척마저 없다. 측실인 도모에 고젠은 무슨 영문인지 알아볼 수도 없어 가슴이 숯검정처럼 타들어 갔다. 헤이케(平家)를 물리치고 교토를 점령했으나 요시나카 무사들의 행패에 교토의 민심이 예사롭지 않게 돌아간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다이라(平) 군만도 못하다는 풍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요시나카 군은 호쿠리쿠 지방에서 급조한 오합지졸이라 엄격한 사무라이 고유의 규율이 몸에 배어 있지 못했다. 그러니 교토에 입성하자 눈에 보이는 귀한 재물과 아리따운 여인은 탐욕의 대상이었다. 점령군으로서 치안이나 체면은 개나 줘버리고, 금은보화는 훔치고 예쁜 여인은 겁탈하는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참다못한 고시라카와(後白河) 법황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측에 접근했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요시나카는 격노했다. 하지만 법황은 요시나카에게 교토를 떠나지 않으면 토벌령을 내리겠다고 도리어 위협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이 격분한 요시나카는 1183년 11월 18일, 법황이 머물고 있었던 홋슈지(法住寺)를 공격했다. 요시나카가 이끄는 7,000명의 군세에 패배했고, 법황은 유폐되었다. 1184년 1월 11일에 요시나카는 법황을 협박하여 조정으로부터 쇼군인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으로 임명을 받았으나, 내치를 잘못하여 이젠 토벌의 대상이 된 것이다. 유폐당한 법황이 점령군 소탕의 밀령(密令)을 내렸다. 그 명령을 받은 이는 가마쿠라의 요리토모다. 요시나카의 사촌형으로 형제간의 싸움이 터진 것이다. 오합지졸이고 사기가 떨어진 요시나카 군은 전투 다운 전투도 못해보고 패배하기 일쑤다. 그는 걱정하고 있었던 사태가 너무 긴박하게 닥쳐서 엊저녁부터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집중폭설로 전투는 소강상태이다. 그러나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자객 닌자(忍者)나 첩자가 들이닥칠지 몰라 날랜 무사들이 그의 처소에 겹겹이 호위하고 있다. 그러니 첩실인 도모에도 자주 접근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저 도모에예요.” 여인은 경계를 선 사내의 허락도 없이 서재로 들어가려 한다. “안 됩니다. 주군의 허락 없인 누구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사내의 장검이 도모에 앞을 가로막았다. 그제야 방안의 요시나카가 들여보내란 지시를 내렸다. “비 오는 이 밤에 웬일이요?” “몰라서 물어요?” 도모에 특유의 싸늘하지만 정감 어리고 목마른 듯한 투정이다. 요시나카도 그녀와 한동안 소원했는지 그녀를 부둥켜안는다. “당신 사무라이답지 않게 무엇이 두려워 우물쭈물하세요?.” 도모에는 오늘따라 사랑도 무사답게 하고 싶었다. “여보 오늘은 제게 주도권을 주세요. 당신은 골치 아플 테니 가만히 즐기기만 하세요.” 도모에는 의자에 앉은 요시나카를 의자 삼아 두 다리를 넓게 벌리고 희멀건 엉덩이를 사내 얼굴정면으로 바싹 들이댔다가 서서히 내려앉는다. 요시나카는 돌발 상황에 당황해하더니 체념한 듯 이내 순순히 응해 주었다. 사랑을 할 때마다 도모에는 늘 돌발적 행위를 예사롭지 않게 해 왔기 때문이다. 밖에는 폭설 속에서 이중 삼중으로 호위무사들이 삼엄(森嚴)하게 경호를 하고 있는데, 방안에는 모든 것을 잊기라도 하듯 육체의 쾌락을 시도하고 있다. 촛불에 비친 상아빛 엉덩이는 예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비단결 같은 머리가 등을 타고 흘러내려와 허리와 엉덩이를 움직일 때마다 수양버들처럼 춤춘다. 요시나카는 전쟁 상황을 잊은 듯, 요정에 홀린 듯 모든 시름을 잊고 쾌락의 정원에서 서성인다. 여인은 익숙한 솜씨로 엉덩이와 괄약근(括約筋)을 움직여 사내의 물건을 공략한다. 도모에는 몇 달 만에 맛보는 달콤한 사랑이다. 요시나카의 몸을 잘 알고 있는 도모에로서는 말을 달리듯 고삐를 풀었다 조였다 하며 쾌락의 절정 시간을 조정한다. 요시나카도 질세라 도모에의 두 젖가슴을 움켜잡고 말고삐처럼 좌우상하로 움직였다. 도모에 등엔 땀이 송골송골 쏟고, 요시나카 사타구니는 여인의 달콤한 샘물에 흥건하게 젖었다. 드디어 두 마리의 말들은 정상으로 치솟아 포효하면서 모든 것을 쏟아내며 스러진다. “여보, 오랜만에 시원하게 몸 풀었죠? 너무 걱정 말고 사무라이답게 행동하세요.” 도모에는 등을 보였던 자세를 바꿔 정면으로 얼굴을 돌려 요시나카와 깊은 입맞춤을 한다.

애정을 담뿍 담은 키스 후에 도모에가 말한다. “당신 아이를 갖고 싶어요.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사랑만으로 앞날을 기약할 수 없잖아요?” 도모에의 오른손이 요시나카의 고우간(睾丸) 또는 긴타마(金玉)를 소중한 보물을 만지듯 더듬는다. “아이를 갖자고?” 사내는 당황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이 상황에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는 표정이다. 그러나 그냥 물러설 여인이 아니다. “왜 그렇게 황당한 얼굴이세요? 우리가 맨날 육체의 향연만 즐겼지 미래를 위해 한 게 있어요? 당신과 저를 반반씩 닮은 아들이 태어나면 일본 최고의 쇼군감이 되지 않겠어요?” 도모에는 엉거주춤하게 엉덩이를 빼 요시나카의 말랑말랑한 긴타마를 다시 활짝 열려있는 여음(女陰)에 바짝 밀착시킨다. “나도 당신을 닮은 아들을 갖고 싶으나 이 난리 통에 그럴 상황이 아니잖소?” “그러면 저만 믿으세요? 사실은 생리가 며칠 전에 끝나서 지금이 적기예요. 우리가 적군에 쫓기어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내가 책임지고 목숨을 부지하여 낳아서 키울 거예요.” 도모에가 비장한 표정으로 다시 요시나카를 끌어당기며 탱탱하게 재충전된 물건을 계곡 깊숙이 집어넣는다. 두 몸은 이미 벌겋게 달구어져 있어 다시 단번에 열락(悅樂)의 바다에 빠진다.

막 일을 마쳤을 때 “주군 급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라고 다급한 목소리로 호위무사가 문을 두드렸다. 그해 1월 20일, 요시츠네군이 교토에 근교에 도착했다. 요시나카는 우지가와(宇治川)에 있는 다리를 무너뜨려 적들의 진입을 늦추어 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요시츠네군은 도하(渡河)에 성공하여 교토를 직접 공격해 온 것이다. 60,000명에 달하는 가마쿠라의 요시츠네 군대에 7,000명 밖에 되지 않는 요시나카의 군대는 숫적으로나 사기적으로 열세였다. “빨리 이곳을 떠나시오. 지체하면 후일을 기약할 수 없소.” 요시나카는 밀물처럼 밀려오는 요리모토 군대를 가리키며 애타게 도모에를 설득한다. “안 됩니다. 저는 당신과 함께 생사를 같이하기로 했잖아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지요.” 도모에 표정은 단호하다. 과거에 요시나카와 같이 싸울 때는 늘 이랬다.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칼 솜씨에 적병이나 적장 서너 명이 추풍낙엽처럼 머리가 떨어졌다. 도모에의 날랜 무술 솜씨다. 도모에가 백마를 타고 전장에 출장하면 적군의 장수들이 불나비 같이 모여든다. 도모에의 목을 치러 오는 것이 아니고, 그녀의 미모에 반해 사로잡아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녀는 미녀 무사로 일본 열도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호기심 많은 장수들은 한판 겨루어 보고 싶은 충동으로 출전했다 칼 한번 제대로 서 보지도 못하고 목이 달아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도모에는 소문대로 칼과 활쏘기에 달인이며 말타기도 신기에 가깝다. 원래 도모에는 고향에서 요시나카의 소꿉친구였다. 그에겐 겐지 핏줄인 본부인과 아들이 있으나 여자는 개의치 않았다. 요시나카는 죽마고우인 그녀를 애인으로 하였고, 그녀도 좋아라 하며 지금 뱃속에선 그의 이세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러나 요시나카에겐 말하지 않고 있다. 아이로 인해 사무라이 의기가 위축될까 우려해서이다. 요시나카 군대는 사기가 떨어져 지리멸렬(支離滅裂) 할 뿐만이 아니라 도망치는 자가 더 많다. 교토에서 훔친 값진 물건들을 죽기 전에 고향으로 가져가고 싶어 싸움은 뒷전이고 틈만 있으면 도망하기에 혈안이 되었다.

요시나카는 패전에 패전을 거듭하며 고작 13기를 이끌고 도망치다가, 비와호 부근에서 젖형제였던 이마이 카네히라(今井兼平)가 이끄는 50기와 합류했다. 요시나카와 카네히라가 모이자 흩어져 있었던 군사들이 좀 더 모여서 약 300기를 겨우 이루게 되었다. 요시나카와 카네히라는 전투를 거듭하였지만 패색이 짙어지고 겨우 5기만 남을 때까지 싸웠다. 이때까지 도모에는 요시나카의 곁을 지켰다. 요시나카는 이제 죽음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그녀에게 도망치라고 명령했다. 도모에는 죽을 때까지 요시나카를 수행하겠다고 했으나, 요시나카는 장군이 마지막 싸움에서 여자를 같이 데리고 간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들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하여 도모에 고젠을 떼어놓았다. 도모에도 배속에 든 요시나카의 2세를 생각해서 목숨을 부지하고자 적진에 돌격하여 적장의 목을 베고 갑옷을 벗으며 도망쳐 전장을 벗어나 고향으로 달아났다. “아얏!” 그 순간 요시나카의 비명소리가 났다. 마지막으로 명예롭게 할복자살(割腹自殺)로 마무리하고자 하는데 적의 화살이 날아와 미간에 꽂혔다. 요시나카는 단말마(斷末魔)를 외치고 말 등에서 떨어졌다. 호위무사가 달려들어 치료를 했으나 곧 절명했다. 시신을 빼돌려 현 나가노현에 있는 도쿠온지에 안치했다고 하는데 알 수가 없다.

다른 일설에 의하면 도모에의 다음 삶은 이렇다. 삶의 전부를 잃은 도모에는 배속에 든 아이와 죽은 남편의 원수를 갚고자 노심초사했다. 그래서 오랜 고심 끝에 가마쿠라에 잠입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를 암살하고자 행동에 들어간다. 닌자로 변신해 가마쿠라에 잠입한다. 평소에 단련된 몸으로 닌자로서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그녀는 교토와 가마쿠라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지명 수배령이 떨어진 요주의 인물이다. 가마쿠라 잠입 하루 만에 요리토모 측 병사에게 잡히고 만다. 행상(行商)으로 가장한 그녀의 짐엔 쇄련도(鎖鍊刀), 일륜도(日輪刀) 등 각종 무기뿐만이 아니라 건조 고열량 전투식량 등이 무더기로 나온 것이다. 암살을 하려면 성벽을 타고 오르고, 지붕을 뚫고 내려와서 천장 위나 마루 밑에서 며칠이라도 숨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한 모든 준비를 해온 것이 들통이 나서 잡힌 것이다. 그녀는 전에도 여자이기 전에 요시나카 진영의 날랜 장수로 요리토모 진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장수였다. 그녀가 호랑이를 잡으려고 호랑이 굴로 들어가다가 잡힌 것이다. 도모에 행동은 조금은 무모했는지 모르지만 그녀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뱃속의 아이는 자라오고, 몸을 의탁할 곳이 마땅하지 않았으니 생사를 건 결단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외로 가마쿠라 막부에선 그녀를 참수하지 못하고 연일 회의다. 즉각 처형하자는 주장과 우군으로 만들어 이용하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 서다. 죽이기엔 아까운 미녀라서 날랜 장수 세 명과 대결시켜 이들을 물리치면 살려주되, 세 장수중 가장 승점이 높은 자에게 도모에를 첩으로 주자는 결론이다. 장수 셋 중엔 가마쿠라 막부의 중신인 와다 요시모리(和田義盛, 1147∼1213)도 끼어 있었다.

요리토모 진영에선 간판 사무라이들이지만 도모에와 상대를 해 본 경험은 없었다. 미녀무사와 겨루어 승리하면 상금으로 미녀를 차지하지만, 지게 되면 망신살이 뻗치는 것이다. 게다가 가마쿠라 주민들이 구름같이 모여든 장소에서 결투이니 남자 사무라이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막상 결전의 날이 되자 역시 세 장수는 도모에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열합(十合)에 이르자 세 장수 모두 투구인 가부토(兜)가 날아가는 수모를 당하고 결투는 싱겁게 끝이 났다. 가마쿠라 막부는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지만 구경 나온 주민들은 도모에를 연호(連呼)하면 열광하였다. 도모에 명성이 사무라이 세계에서 일본 열도 전체에까지 알려져 마음대로 처치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젠 도모에도 마음이 될 대로 되라고 편해졌다. 단신으로 가마쿠라 막부로 들어가 요리토모를 비롯한 남편의 원수를 죽이고 자신도 무사답게 할복자살하지는 못했으나 막부의 주요 사무라이들의 가부토를 보기 좋게 땅에 떨어뜨렸다. 그것으로 자신의 무예실력을 유감없이 보여 쇼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도모에는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남편을 닮은 아이가 걸린다. 어떤 수난을 겪어도 살아서 이 아이를 키우고 싶은 것이다. 그녀는 밤이 되면 천조대신인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神)에게 기도를 한다. “일본 무가(武家) 사회를 구할 위대한 동량지재(棟梁之材)를 잉태했사옵니다. 끝까지 살아서 아이의 생모가 되게 하옵소서.” 새벽의 여명이 틀 때까지 빌고 또 빌었다.

여느 날과 같이 빌고 있는데, 어둠 속으로 쪽지 하나가 날아들었다. ‘걱정 말고 몸단장하고 있거라. 와다 요시모리’ 도모에는 황당했지만 죽음 앞에 두려울 것이 없어 목욕재계하고 자리에 들었다. 바람처럼 정체불명의 회색 닌자(忍者) 차림이 도모에게로 접근한다. “쉿, 나는 요시모리요. 당신은 내 여자가 되는 거요. 쇼군의 내락도 이미 받았소.” 아이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하겠다고 마음먹은 뒤라 도모에는 고민하지 않고 순순히 몸을 내주었다. “장군 도모에를 저에게 주십시오. 도모에가 비록 적장의 여자지만 그 의연한 태도가 그냥 죽이기엔 너무 아까운 인물입니다.” 가마쿠라 중신 와다 요시모리가 쇼군 요리토모에게 비장한 어조로 청원을 한 것이다. 도모에는 내일이면 이승 사람이 아니다. 중신회의 결정과는 달리 쇼군은 이미 그녀를 처형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쇼군 요리토모로서도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자기의 사촌제수가 아닌가. 형제간의 반란으로 적이 되어 죽음으로 내몰렸으나, 사내라면 한번 보면 욕심(欲心)이 발동할 천하의 미색이 아닌가. 그러니 자기 부인을 포함한 막부의 간부들의 부인들은 혹시 자기 남편이 그녀에게 한눈을 팔까 걱정이 앞선다. 특히 부인 호조 마사코(北條政子)의 성화에 못 이겨 도모에를 처단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충신 요시모리가 뜻밖에 나서 주었다. 도모에를 죽이지 않아도 되어 기쁘지만 내색은 할 수가 없다. “적장의 여자를 어떻게 하려는 거냐?” “예, 제 아내로 삼아 강한 사무라이를 생산해 장군께 대대로 충성을 받치겠습니다.” 요시모리 태도는 단호하다. 물러설 것 같지 않다. “도모에는 보통 여자가 아니다. 네가 당할 수도 있다.” “보통 여자라면 제가 탐을 낼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결투에서 사정을 봐줬던 것입니다.” “어쩐지 네가 패한 게 어이가 없더니만 그런 꿍꿍이가 있었군. 그까짓 사형수 하나야 문제없지만 너를 잃을까 걱정이 된다.” 도모에는 처형 전날 극적으로 살아났다. 적장의 여자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요시모리는 십여 년 연상이나 단련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하루도 여자를 그냥 두지 않는다. 도모에는 배속의 요시나카 아이가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잠자리를 거부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생명의 은인이 아닌가? 여자는 딜레마에 자주 빠진다. 요시모리에게 마음이 조금씩 넘어가서이다. 요시나카에게는 풋풋하고 애틋한 사랑이 느껴졌었다면, 요시모리 한테서는 넉넉하고 평온한 마음이 들어 적장이 아닌 진짜 남편 같았다. 그래서 가끔씩 손톱으로 허벅지를 꼬집으며 ‘적의 괴수 요리토모를 죽이자’는 초심을 잊지 말자고 다짐을 하곤 한다.

도모에는 매일 아침부터 목욕재계하고 몸단장을 한다. 요시모리가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서다. 살림은 본처와 하지만 시간이 날 때면 찾기 때문이다. 정국도 잠잠해 요즘에는 대낮에도 찾는다. 태양 아래에선 살을 섞고 싶지 않은데 관음증(觀淫症) 성향이 있는지 요시모리는 밤 보다 낮을 더 좋아한다. 도모에는 배가 조금씩 불러오기 때문에 낮의 거사가 무섭다. 요시나카 아이로 밝혀지면 둘 다 죽음을 면할 길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점심때가 조금 지나자 요시모리는 뭣이 좋은지 싱글벙글 거리며 도모에 앞에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기분이 썩 좋아 보이네요.” “그렇게 보이오? 기분이 나쁠 리가 있소? 당신을 보러 오는데.” 사내는 여자를 끌어안으며 뜨거운 키스를 퍼붓는다. 맨살에 유카타(浴衣)만 걸쳐 보일 듯 말듯한 젖가슴과 봉긋하게 솟은 배가 사내의 욕정을 더욱 부채질한다. 뜨거운 사내의 손이 거침없이 유카타를 파고들어 비너스 언덕을 더듬는다. “이러지 말고 점심이나 하세요” 도모에는 요시모리 품에서 힘겹게 빠져나와 식탁으로 갔다. “자 빨리 와요. 후지산(富士山)도 식후경이잖아요.” 도모에는 야키모노(燒物)를 한입 넣어 준다. 최근 들어 도모에도 아이가 커지자 식욕이 부쩍 왕성해졌다. 그러나 사내는 여자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벌건 대낮에 유카타는 여지없이 벗겨져 식탁 밑으로 떨어졌다. 백옥 같은 도모에의 알몸이 드러났다. 사내는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당신을 꼭 닮은 아들을 낳아다오. 그러면 당신을 정실로 맞을 것이요.”라고 말을 마치고는 미친 듯이 도모에를 공격한다. 그녀는 태양의 여신인 아마테라스(天照)가 된 듯이 사내를 감싸 안으며 마음껏 열락의 극치를 즐기도록 갖가지 체위를 취해 준다. 도모에는 몸을 활짝 열고 두 팔로 사내 엉덩이를 누르고, 활짝 열린 여음(女陰)엔 힘을 주어 남자의 긴타마(金丸)까지 넣으려는 자세가 되었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오후 햇살은 벌거숭이 두 남녀 알몸에 난 땀방울에 반사되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자세를 바꾸어 요시모리 입과 혀가 도모에의 핑크빛 젖꼭지를 거쳐 두 다리 사이 연꽃으로 파고들었다. 여인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마침내 둘은 서로의 귀중한 곳을 결합시켜 준마가 광야를 달려가듯 서로의 표정을 살피며 더 깊게 더 황홀하게 말을 달렸다.

어느 날 오후 도모에의 무릎을 베고 있던 요시모리가 묻는다. “당신 출산일이 언제지?” 느닷없는 질문에 도모에는 전 남편 요시나카의 아이를 들켰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없는 아이를 어떻게 출산을 해요?” 톡 쏘아붙인 도모에는 두 손으로 요시모리 가슴의 털을 손으로 쓸어내며 시치미를 띤다. “아! 그런가? 첫날밤에 임신했기를 나는 기대했지. 지나친 욕심인가?” “사실은 벌써 삼 개월이나 됐거든요.” 도모에의 말이 떨어지자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요시모리는 도모에를 찍어 누르던 몸짓을 멈추고 벌떡 일어나 여인을 번쩍 안아 들었다. “당신을 닮은 아들을 낳아라.”라고 외치며 식탁을 한 바퀴 돌았다. 세월은 흘러 도모에가 사내아이를 낳았다. “요시히데(義偉) 너는 자라서 너의 친아버지처럼 훌륭한 무사가 되어 쇼군으로서 아버지의 꿈을 이루어야 한다.” 도모에는 요시히데에게 젖을 먹이면서도 입 속으로 주문(呪文)처럼 외우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주문에 효력이 있었는지 요시히데는 커갈수록 요시나카를 닮아갔다. 그러나 도모에는 요시모리를 볼 때마다 “당신을 쏙 빼닮았어요. 이 아이도 당신 같이 훌륭한 사무라이가 틀림없이 될 거예요.”라고 말하면 “그렇소?”라며 미묘하게 싱긋 웃고 만다. 요시모리와 합친 후 아홉 달 만에 나온 아이인데, 건강하게 잘 자란다. 요시모리는 즐거운 표정보다 은근히 겁먹은 얼굴이다. 요시히데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요시히데가 늠름한 사무라이로 성장하는 사이에 정국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은밀히 힘을 키운 요시모리의 와다(和田) 가문이 2대 싯겐(執權)인 호조 요시토키(北條義時)와 갈등을 빚게 된 것이다. 당시 겐지(源氏)는 몰락하고 요리이에(賴家)의 어머니인 호조 마사코(北條政子)를 비롯한 일족들이 권력을 독식하고 있을 때다. 요시모리 가문이 호조 가문과 대결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요시모리 진영의 선봉은 도모에의 아들이자 요시나카의 씨인 요시히데가 앞장섰다.

요시모리는 요시히데가 친자인지 알고 있다. 그는 전장에 나아갈 때 애지중지한 투구 가부토(兜)와 사쿠라(櫻)가 화려하게 장식된 갑옷 요로이(鎧)를 직접 입혀 주기까지 했다. “사무라이답게 싸워야 하느니라.” “예, 아버님” 요시히데는 성별만 남자지 화장만 하면 젊었을 때 어머니를 쏙 빼닮았다. 막부군과 가마구라에서 대규모로 싸우는 와다(和田) 전투이다. 도모에와 요시모리도 후방에 진을 쳤다. 요시히데는 어머니의 병법을 그대로 전수받아 동서남북을 전광석화처럼 날아다니며 적의 저격수를 제압해 처음엔 전세를 압도했다. 그러나 숫적으로 절대 열세를 면치 못해 밀물처럼 밀리기 시작한다. 안타까움에 도모에와 요시모리도 싸움에 끼어들었으나 전세를 뒤집어 놓기에는 역부족이다. 나라의 길목인 우지(宇治) 강까지 밀린 요시히데는 말 위에서 비감(悲感)에 젖었다. 패장으로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뵐 면목이 없어서다. 어머니께서 귀가 아프도록 “네 친아버지는 요시나카이시다. 네가 커서 아버지의 원수인 요리토모 일가를 처치해 명예 회복을 시켜드려야 한다.” 고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전세는 육촌 동생에게 쫓기어 목숨마저 벅찬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있지 않는가? “너는 살아서 후일을 기약해야 한다.” 아들의 심정을 꿰뚫어 본 도모에는 비호같이 달려와 요시히데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한다.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그는 말을 탄 채 우지강으로 뛰어들 태세이다. “어미가 평소에 너에게 뭐라 했느냐? 비겁하지 말고 당당하고 명예롭게 행동해. 사무라이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라 하지 않았느냐?” 도모에 두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 우지강에서 소슬바람이 불어와 도모에 모자의 두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회록색의 우지 강의 풍광과 강 뒤로 병풍같이 울창하게 서 있는 소나무들은 흡사 주군을 보호하는 호위대 같다. 더없이 편안해 보이는 이곳에 헤이안(平安) 시대 귀족들은 아름답고 화려하고 애틋한 설화들을 남기고 사라져 갔다. 모자가 잠시 전황을 잊고 애틋한 비감에 젖어 있을 때 호조 가문의 군사들은 화살의 사정권에 들이닥쳤다. 바로 그때다. 닌자가 쏜 독화살이 요시히데의 등에 꽂혔다. 비호 같이 날랜 도모에도 화살을 막지 못했다. 도모에 가슴엔 남편 요시나카에 이어 아들 요시히데까지 앞세워야 해서 더욱 무겁고 짙은 슬픔이 가슴을 짓누르게 되었다. 두 번째 남편 와다 요시모리도 이 전투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금삿갓 운사芸史 금동수琴東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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