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째 순례길의 아침을 맞는다. 05시에 기상을 하여 준비를 마치고 06:10분경에 엘 부르고 라네로(El Burgo Ranero)의 숙소를 나섰다. 하늘은 아직 시커멓고 서쪽 평원 저 멀리에 새벽달이 불그스름하게 넘어가고 있다. 마을을 빠져나오는데 길 옆에 십자가 조형물이 든든하게 서 있다. 오늘도 무사하게 예정된 순례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래 본다. 평원에서 부는 바람은 걷기에 힘들 정도로 강하게 불기도 한다. 순례길과 자동차 포장도로가 나란히 이어져 있다. 발이 불편한 순례객을 유혹하는 것이다. 새벽이라서 다니는 차도 별로 없으니 돌멩이도 없고 발이 편한 아스팔트 포장도로 위를 걸어본다. 전등을 밝히고 걷는데 도로 위에 주검이 하나 있다. 로드킬(Road Kill)인지 자연사인지 모르겠다. 상처나 피가 나지 않을 것으로 보아서 자동차에 부딪혀서 죽은 로드킬은 아닌 듯하다. 제법 덩치가 큰 고슴도치의 사체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간혹 이런 로드킬을 접하곤 한다. 도로에 그냥 두면 달리는 자동차에 2-3차 깔릴 것 같아서 얼른 발로 도로 옆의 풀숲으로 밀어 넣었다.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을 수 있으나 그런 것에 괘념할 필요가 없다. 점차 날이 밝아오니 광활한 옥수수밭에서 열 일을 하는 거대한 스프링클러가 보인다. 마치 거대한 티라노사우러스 공룡의 화석처럼 생긴 구조물이 옥수수밭이랑을 왔다 갔다 하면서 물을 주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 렐리에고스로 가는 길목 : 금삿갓>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
<길에서 죽은 고슴도치....순례길에 오랐다가 변을?>
<공룡화석 같이 생긴 스플링쿨러>
이쪽의 순례길은 메세타(Mesata)라고 해서 고원지대의 평원으로 계곡이나 산이 없다. 따라서 은폐(隱弊)나 엄폐(掩弊)할 물건이나 장소도 없고, 마을도 멀기 때문에 순례객들은 숙소를 나올 때 필히 용변을 마치는 것이 좋다. 급한 용무를 보려 해도 개활지라서 곤란한 것이다. 그래도 자연 현상은 인체의 인내를 무시하기 때문에 실례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제발 아래의 사진처럼 조치를 해달라는 간곡한 메시지를 붙여 놓았다.
출발지에서 13Km를 걸어서 드디어 오늘의 첫 번째 마을인 렐리에고스(Relisgos)에 진입하게 된다. 렐리에고스 마을의 입구에는 오래되고 방치된 포도주 지하 저장고가 순례자의 눈에 뜨인다. 마을에는 성 꼬르넬리오와 성 시쁘리아노(Iglesia Parroquial de San Cornelio y San Cipriano)에 헌정된 유일한 성당과 알베르게가 독특할 뿐 다른 인상적인 건축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 마을의 인구는 20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마을인데, 과거에는 포도주를 많이 생산하였는지 땅굴을 파고 만들어 놓은 포도주 저장고가 여기저기 보였다. 마을 안에서는 목재 골조에 벽돌과 흙으로 지어 아랍식 지붕을 얹은 오래된 전통 건축물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