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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 포도주 지하 저장소(8/03)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비행기 격납고 같은 지하 창고

by 금삿갓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길옆에 보이는 포도밭이 정말 많다. 어떨 때는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이는 넓이다. 스페인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포도밭(115만 헥타르)을 보유하고 있으나, 환경조건이 불리하여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하여 생산량이 적어 세계 3위의 와인 생산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포도밭을 가지고 있는 스페인은 좋은 레드 와인으로도 유명하지만, 화이트 와인을 다시 발효시켜 만든 셰리는 세계인의 입맛을 돋우는 식전주로서 유명하다. 그런 환경이다 보니 길옆에 와인 지하 저장고가 많이 보인다. 마치 비행장의 비행기 격납고처럼 입구를 만들고, 위에는 흙을 묘지처럼 둥그렇게 쌓아 올려 외부의 공기에 영향을 덜 받게 지하 저장고를 만든 것이다.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것도 보이고, 아예 폐허처럼 사용하지 않는 것도 많았다.


스페인은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서 수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기원전 1,000년 전에 이미 페니키아인들에 의하여 포도 재배가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으로는 로마시대에 이르러 와인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였다. 로마 멸망 이후에는 고트 왕국의 성립으로 약 800년간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였기 때문에 금주(禁酒) 문화로 와인산업이 침체되었었다. 그 후 1492년 이사벨 1세 이후부터 와인문화가 다시 활발히 이루어졌다. 스페인의 포도 품종은 약 200여 종으로 많다. 세계적으로 넓은 규모의 포도밭을 갖추고 있음에도 기후가 불리하여 항상 좋은 평가를 유지하지는 못하고 있긴 하지만, 최악의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단지 프랑스나 이탈리아, 칠레 등에 비하여 불리하다는 것뿐이다. 자국 내에서는 거의 자급자족을 하며, 요즘은 품질인증체계와 관련법령에 의한 등급체계를 잘 확보하여 많은 양을 수출하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조선 과객 금삿갓 입장에서는 포도주가 소주에 비해서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곳의 와인이 값도 싸고 품질도 괜찮아서 순례길을 걷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고 있다. 특히 하루 일과를 끝내고 숙소에서 느긋하게 한병의 와인을 통째로 비울 때 최고의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오래되고 사용하지 않아서 다 허물어진 포도주 저장소. 이런 것이 한국에 있으면 김치나 묵은지 저장소로 사용하면 딱 제격일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니면 젖갈을 저장하는 곳으로 사용할 수도 있거나 과일 같은 것을 저장해도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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