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골동품만 중고가 비싼 게 아니다

금동수의 세상 읽기(201101)

by 금삿갓

얼마 전에 작고한 경제 및 스포츠계의 세계적인 큰 별인 이건희 회장이 직접 쓴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책 이야기다. 이 책은 이회장이 삼성의 회장을 맡은 지 10년이 되는 해인 1997년에 동아일보에 연재한 에세이를 동아일보사가 엮은 것이다.

현역 대그룹 총수로서는 보기 드물게 일간지에 에세이를 연재하면서, 사회와 기업의 변화의 필요성, 21세기 초일류를 향한 준비, 디지털 사회를 위한 대비 등 경영자와 지도자로서의 생각을 담은 100여 편의 글이 담겨있다.

이 책이 초판 발행 시 6,500원이었는데, 요즘 중고도서에 30배인 200,000원을 호가하고 있다. 초판 1쇄본 중 소장가치가 있는 것은 550,000원 이상 호가한단다. 그의 선친인 이병철 회장의 호암자전도 400,000원을 호가한다니 역시 저자들이 경제계의 큰 손답다고나 할까?

책의 가격을 말고자 하는 게 아니라 책의 내용 즉 이건희 회장의 생각의 가치를 얘기하고 자 함이다. 그의 경영철학은 대체로 <지행용훈평(知行用訓評)>으로 말한다. 경영철학일 수도 있고 경영자나 리더의 덕목으로 말할 수도 있겠다. 우리 시대의 지도자들에게 매우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덕목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자 한다.

<지(知)>는 앎이다. 앎은 학습(정보의 습득)과 이를 종합하는 생각(몰입)의 결과이다.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Mihaly Csikszentmihalyi의 몰입(Flow) 수준을 말한다. 학습과 몰입은 상호 보완이다. 그래서 공자도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고(學而不思則罔),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思而不學則殆)고 했다. 또한 손자도 피아를 알면(知彼知己) 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百戰不殆)고 한 이유다. 최근의 외교나 대북문제를 보면 스스로의 능력도 모르고 상대의 능력이나 전략도 모른 채, 한반도 운전자론이니 평화협상이니 종전선언이니 하는 허망한 공론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한탄스럽다.

<행(行)>은 도전이다. 도전은 앎을 바탕으로 할 때 실패할 위험이 적고, 기회가 포착되면 과감하게 실행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즉 행(行)은 현재와 미래를 위한 발전적 도전이 전제되어야 한다. 과거는 앎의 상태로만 머물러야 하고, 현재와 미래를 위한 변화와 기회의 포착과 불굴의 도전이 바로 행(行)인 것이다. 그럼에도 수년간 과거의 잘잘못에 매달려서 4차산업 혁명에 대한 대비는 고사하고 한 치 앞으로 나아가는 준비조차 소홀히 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한심하다.

<용(用)>은 융복합화이다. 디지털 사회에서는 하나하나의 특성도 중요하지만, 사람이나 사물, 정보들이 서로의 씀과 쓰임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무수한 경우와 무수한 사례들이 상호작용하는 융복합의 세상이므로 통합의 사고가 필요하다. 나와 너, 우리와 남들 같이 이분법적인 편 가르기 문화는 디지털 사회에서는 용납되지 못할 사고임에도 여기에 집착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훈(訓)>은 교육이고 양성이다. 변화를 만들어 미래의 지도자를 키우고, 미래의 먹을거리를 찾을 줄 아는 안목을 키우는 것이다.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탈무드의 격언이 좋은 예이다. 경쟁적으로 청년실업수당이나 노인복지 등 퍼주기식 복지정책의 미래가 무엇을 초래할지는 미국의 인디언 보호정책이 그 결말을 보여준다. 정부 보조금으로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으니 알코올과 마약, 도박에 빠져 인생을 망치는 것이다.

<평(評)>은 다름의 존중이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것이 아니다. IBM의 <Think>나 웅진의 <Think Big> 보다 애플의 <Think Different>가 디지털 미래 사회에서는 더 유용하다. 철학자 니체도 말했다. 젊은이를 타락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보다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을 존경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우리 사회의 <평(評)>에 대한 현실은 어떠한가? 타인에겐 온화하고 자기에겐 서릿발처럼 대하라는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은 채근담 책 속에서 잠자고 있다. 자기편과 조금만 달라도 집단 광기적인 악풀(악성 댓글)이 넘쳐나고, 자기편의 허물이 분명할지라도 이를 덮고 도리어 미화하거나 메신저를 공격한다. 부동산 정책이나 고용정책이 실효했음에도 적확한 평가를 하지 않고 자화자찬이다.

지금 우리는 조선말처럼 중국의 굴기와 북한 핵무장, 일본과의 갈등, 미국과의 소원(疏遠)함 등으로 난해한 국제정세와 심각한 경제난국에 처해 있다. 이를 타개하고 글로벌 무한 경쟁에서 우리가 우뚝 설 수 있게 <지행용훈평(知行用訓評)>을 두루 갖춘 진정한 지도자가 필요한 시기이다. 현실 경험이 없는 운동권 출신 신인들에게 맡겨보니 매표용 퍼주기, 내로남불의 편 가르기, 아집 독선의 좌충우돌뿐이다. 신인보다 실패의 흠집이 더 값진 경륜가(經綸家)가 필요한 것이다.(2020.11.1.)(금삿갓 芸史 琴東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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