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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발베르데 데 라 비르헨에서 숙박(8/03)

금삿갓의 산티아고 순례길-해먹(Hammock)에서 휴식을

by 금삿갓

오늘 아침 빌라렌떼(Vilarente) 마을에서 06시 20분에 출발하여 24.5Km를 걸어서 발베르데 데 라 비르헨(Valverde de la Virgen) 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정말 작았다. 알베르게도 Casa del Camino 딱 하나뿐이었다. 마을에 편의 시설도 전혀 없었고. 오래되어 다 허물어져 가는 것처럼 보이는 성당 하나가 있었다. 산따 엔그라시아 교구 성당(Iglesia Parrroquial de Santa Engracia)인데 황폐화된 종탑 위에는 황새들이 얼기설기 마구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하느님이 마음이 너그러우셔서 이런 성전을 날짐승들에게 터전으로 내어 주고 있나 보다. 조그만 식료품점 하나만 있고, 물건도 그리 풍성한 것이 아니다. 알베르게가 하나뿐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구글 지도상에 표시된 알베르게의 리뷰 댓글평이 매우 좋고, 특히 정원이 넓고 간이 수영장도 있다고 했다. 정원의 해먹(Hammock)은 정말 이용하기 편하다고 했으며, 음식맛이 가성비에 무척 좋았다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완전 속았다. 투숙을 하고 보니 주인이 바뀐 모양이다. 젊은 남녀 한쌍이 주인인데 게으르기가 여름 배짱이 이상이다. 알베르게 거실의 소파에 길게 누워서 TV를 시청하다가 순례객이 들어와도 별 반응이 없다. 겨우 투숙 수속을 해달라고 말하니까 마지못해 일어나서 응대해 주었다. 젊은 여성 주인은 속옷도 없이 엷은 슬립 같은 원피스 하나만 걸치고 늘어져 있었다. 침대를 배정받고 샤워를 끝낸 후에 빨래터가 있는 정원의 후미진 곳으로 빨랫감을 들고 갔다. 거기에 빨래터가 하나밖에 없어서 다른 순례객들이 도착하기 전에 빨리 빨래를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그곳에 캠핑카 비슷한 차량이 한대 주차되어 있고, 차에서 음악 소리가 크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량은 정원 쪽을 바라보고 주차되어 있고 후미는 담벼락 쪽을 바라보고 주차되어 있었다. 빨래터가 바로 담벼락 아래 설치되어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음악 소리를 들으며 빨래터에다 땀에 찌든 옷을 내려놓고 돌아섰는데, 아뿔싸 낭패다. 캠핑카에 주인 여자가 문을 활짝 열어놓고 발가벗은 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한쪽 다리를 의자에 걸치고 잠을 자고 있었다. 너무 놀라고 당황 또는 황당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동방예의지국 조선의 과객 금삿갓이 잘못하다간 망신살이 뻗치게 생겼다. 여인이 깨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더 황당 또는 당황스러울 것 같아서 소리를 내지 않고 살금살금 다시 정원의 해먹 설치된 곳으로 나왔다. 본의 아니게 해먹에 올라가서 그 여인이 빨리 잠을 깨서 차에서 나가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여를 기다리니 예의 그 얇은 스립 원피스를 걸치고 숙소의 주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우리를 포함해서 8명이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온 중년의 남자는 어린 아들 하나와 고교생 딸 하나를 데리고 왔고, 미국에서 온 부부 등이다. 저녁 식사비가 10유로였는데 저렴하다고 생각했더니 역시나였다. 무료 와인도 제공되지 않고, 빠에야(Paella : 스페인식 볶음밥)를 만들어 주었는데, 맛도 량도 정말 별로였다. 순례길 통틀어 가장 맛이 없는 식사였다. 정말 실망스러웠다. 구글의 리뷰를 믿고 들어온 나의 불찰이었다. 리뷰를 다시 자세히 보았더니 4년 전의 리뷰였다. 뭐든지 정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교훈이다. 주인 여자의 옷차람을 변함이 없었으나 음식 솜씨는 정말 별로였다. 심지어 프랑스에서 온 어린 소년은 아예 밥을 먹지 않고 빵조각만 들고 오물거리다가 모두 남기고 콜라 한 병만 마시고 식사를 끝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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