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또르가(Astorga)에서 아침 7시 10분경에 출발하였다. 시내를 벗어나서 평원을 조금 걸었는데, 발데비에하스(Valdeviejas)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규모도 워낙 작아서 표지판이 없었으면 마을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순례객을 위한 지도에도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마을이다. 길 옆으로 오래된 공동묘지가 방치된 채 폐허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오래된 비석들은 풍우에 마모되고 검버섯도 피었고, 땅에는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라나서 말라죽었다. 길옆에 아마 오토바이를 타고 순례길을 가다가 하늘로 간 순례객을 기리는 조형물이 있었다. 오토바이를 아예 땅에 박아서 비석처럼 사용하고 꽃다발도 하나 설치되어 있었다. 그냥 스치듯이 지나치는데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아주 작은 성당이 있었다. 마침 음수대도 있고 해서 쉴 겸 잠시 들려보았다. 성당 이름이 <이 사람을 보라(Ermita del Ecce Homo)>의 성당이다. Ermita del Ecce Homo는 라틴어로 "이 사람을 보라"이다. 가시 면류관을 쓰고 벌거벗긴 채 빌라도 앞으로 끌려온 예수님을 보고 빌라도가 한 말이라고 한다. 이 성당의 내부에 들어가면 제단의 조각물에 위쪽으로 <Ecce Homo(이 사람을 보라)>와 <Ecce Deus(보라 하나님)>라고 쓰여있다. 제단의 십자가 밑에는 예수의 형상은 아닌 것 같은 사람이 지팡이를 들고 마치 순례자 모양으로 서있다. 순례자를 위한 음수대 옆에는 커다란 돌 비석에 <신앙은 건강의 샘>이라는 문구를 한글을 포함해서 9개 언어로 새겨 놓았다. 한글이 영어와 중국어 보다 위에 새겨있다. 옛날 이곳에 우물이 있었는데, 어린 아들을 데리고 순례길에 올랐던 어머니가 아들과 함께 이곳 우물에서 물을 마시다가 아들이 우물에 빠졌단다. 어머니가 간절히 기도하자 아들이 물 위로 떠올라 살려서 순례길을 끝까지 완주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