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나세카(Molinaseca) 마을은 해발 590m 고도에 위치해 있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뽑힌 곳이다. 이 마을은 로마시대에 광산지역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후 쇠퇴를 하였으나, 산티아고 순례길의 주요한 거점으로 계속 그 중요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름의 유래는 몰리눔(Molinum) 즉 공장(Mills)과 시쿰(Siccum) 즉 건조(Dry)가 합해져서 유래되어 내려왔다.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안구스띠아스 성모의 성소(Santuario de la Virgen de las Angustias)가 버티고 있다. 이것은 18세기의 건축물로 이 성소의 문은 금속으로 덮여있다. 이 성소는 원래 11세기에 같은 장소에 카미노 헌정으로 성당이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에 1561년에 창립되었다가 20세기에 사라진 앙구스티아스 성모 형제단의 역사를 통해 입증된다. 이 단체에는 이 도시 곳곳의 신자들이 속해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성소는 신부인 돈 안토니오 데 카스트로 이 예브라(Don Antonio de Castro y Yebra)와 그의 조카이자 후계자의 헌신으로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 진행된 내외부 재건축의 결과물이다. 1598년과 1727년에 매장된 후안 안토니오 데 라 베가와 카스트로가 성전에 있다.
몰리나세카 다리 옆에 이 마을의 오래된 헌장이 간판으로 세워져 있다. 이 헌장은 1,234년에 아스토르가(Astorga) 주교인 돈 로페와 카리노의 수녀원장인 테레사 도냐가 세웠다고 한다. 내용은 마을 평의회의 동의를 얻어서 만든 것이다. 살인을 하면 그에 상응하는 죗값을 받고, 이웃에게 위해를 가하면 60일 분의 품삯으로, 부상을 입으면 160일의 품삯을 배상해야 한다. 다른 성의 사람들이 공격할 때 모두 참여하여 방어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돈으로 배상하고, 이웃의 물건이나 가축을 훔치지 못한다. 등등의 공동체 안에서 지켜야 할 규율을 정해 놓은 것이다.
조선 과객 금삿갓은 몰리나세카 다리를 건너서 마을의 중심거리에 있는 바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다. 바의 여사장이 넉넉한 표정으로 아주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정말 여유 있는 표정이고 밝은 얼굴이었다.
마을의 언덕에 있는 산 니꼴라스 데 바리 교구 성당(Parroquia de San Nicolas de Bari)이다.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에 다라 지은 것으로 14세기에 만들어진 고딕양식의 그리스토 상이 진영되어 있다. 산 니꼴라스 데 바리 성인은 화재, 난파선, 빈곤이 닥쳤을 때 어려움을 해결하는 성인인데, 그를 기리는 성당이 2,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곳에서의 기도는 많은 응답을 받는다고 전해진다. 언덕으로 계단을 올라가면 성당의 주변에 아주 오래된 올리브 나무가 아직도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고 있다. 먹음직스러운 복숭아도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성당의 바로 옆에는 공동묘지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마을의 중앙 통로를 빠져나가면 마을의 끝 부분에 멋진 순례자 기념물(Monumento El Peregrino)이 조성되어 있다. 작은 분수대 연못의 중앙에서 저 멀리 산티아고 방향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다. 그리고 2009년에 일본의 시코쿠와 카미노 우호 기념비를 세워놓았다. 스페인과 일본의 우호 관계가 아주 돈독한 것을 순례길을 걷다 보면 저절로 느낄 수 있다. 도시의 주변에는 일본 자동차회사의 판매점만 보이고 한국 자동차 판매점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또한 마을마다 일본 마을과 자매결련한 사례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