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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춤추는 물 찬 제비 - 조비연

★ 금삿갓의 은밀한 여성사★ (240112)

by 금삿갓

나라마다 시대별로 미인의 기준이나 관점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대에 들어와서부터 불변의 기준 중의 하나가 바로 날씬함이라 하겠다. 현대 여성들의 필생의 화두는 뭐니 뭐니 해도 살 빼기이다. 맛있게 먹고 싶은 욕망을 희생시키면서 죽어라고 운동하고, 살 안 찌는 식품을 골라 사서 먹거나, 살 빼는 약도 먹고, 아예 지방을 수술로써 제거하는 지방흡입술까지 한다. 그러다가 마취부작용이나 쇼크로 생명을 잃는 경우도 뉴스에 간혹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바짝 마른 몸매가 미인의 영구불변의 기준은 아니었다. 오랜 옛날에는 다산의 상징으로 약간 통통하게 살이 찐 여성이 더 미인상이었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조각이나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의 주인공들을 보면 대부분 사십 대 아줌마의 몸매처럼 약간 넉넉한 모양임을 알 수 있다.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미인은 양옥환 즉 양귀비도 약간 뚱뚱한 편이다. 그런데 양귀비보다 750여 년 전인 한(漢) 나라 시대에 양귀비에 필적하는 미인이 있었는데, 양귀비처럼 통통하지 않고 정말 날씬한 현대적인 미인이 있었는데 바로 조비연(趙飛燕)이다. 그래서 이 두 시대의 대칭적인 미인을 두고 연수환비(燕瘦環肥) 즉 조비연은 말랐고, 양옥환은 살쪘다는 사자성어가 생겼다. 조비연의 원래 이름은 조의주(趙宜主)였는데, 몸매가 워낙 마르고 가벼우며 춤을 잘 춰서 본명 대신 조비연(趙飛燕) 즉 나는 제비라고 불렸다.

조비연의 아버지 조임(趙臨)은 한나라 궁정의 가노(家奴)로 매우 궁핍한 생활을 했다. 조비연이 태어나자 부양할 수 없어 아버지는 황야에 내다 버렸다. 밤에 조임이 울음을 그치지 않는 어린아이의 꿈을 꾸고 나흘 만에 황야에 찾아가 보니 아이가 그때까지도 살아있었다. 조임은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다시 집으로 데리고 와 키웠다. 조비연은 가난 때문에 어릴 적에 양아(陽阿) 공주에게 팔려가 가희(歌姬)가 됐다. 천부적 재능을 갖춘 조비연은 매혹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탁월한 춤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기원전 18년 한(漢) 성제(成帝)는 즉위 10여 년이 되었고, 이미 서른이 되었는데, 후궁에는 황자가 한 명도 없었다. 효성황후 허씨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후궁인 반첩여(班婕妤)는 글도 잘하고 아름다운 미녀라서 총애를 하였다. 그래도 주색에 빠진 성제는 궁궐에 뜻을 버리고 미복(微服)으로 밖에 나가 놀기를 즐겼다. 말하자면 장안 시내의 룸살롱을 쏘다니면서 계집사냥을 즐긴 것이다. 하루는 궁으로 조금 일찍 돌아오다가 양아공주(陽阿公主)의 저택에 들렸다. 그러자 양아공주가 저택에서 데리고 있던 가희(歌姬)들을 모두 불러내어 성제를 기쁘게 해 드렸다.


그때 조비연은 얼빠진 눈빛, 맑고 아름다운 목청, 아름다운 춤사위로 성제를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래서 한나라 성제는 다음 날 그녀를 궁으로 들어오라고 분부를 내렸다. 조비연은 머리도 영리하여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욕금고종(欲擒故縱)의 전략을 십분 발휘한다. 욕금고종이란 큰 이득을 위해서 작은 이득은 과감하게 내어 주는 전략이다. 황제의 부름을 세 번이나 거절하며 성제(成帝)의 욕망을 부채질하고 나서야 허락하는데, 요즘으로 치면 연애의 밀고 당기기 전략 즉 밀당이다. 이러자 성제는 안달이 나서 더욱 그녀 곁을 떠나지 못했다. 조비연이 성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자 반첩여는 완전 찬밥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찬바람 불면 부채가 필요 없다는 추풍선(秋風扇)이란 말은 반첩여가 임금의 총애를 잃어서 가을의 부채 취급받는다는 말이다. 현명한 반첩여는 황태후 궁인 장신궁(長信宮)으로 물러나 황태후의 수발을 들면서 훗날을 기약한다. 이 여인은 자신의 신세에 대한 시 원가행(怨歌行)을 지었고, 중국의 많은 문인들이 그녀를 위한 시를 지었고 특히 이백(李白)의 원가행(怨歌行)이 유명하다.

조비연의 수려한 용모와 날씬하고 유연한 몸매, 출중한 춤 솜씨는 후궁의 빈비(嬪妃) 중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그녀가 추는 춤사위와 사뿐 거리는 스텝, 신들린 듯 가볍게 떨리는 손, 바람처럼 살며시 흔들리는 몸매는 임금을 황홀한 미혹에 빠뜨렸다. 성제는 그녀를 위해 궁궐 태액지(太液池) 옆에 정자에 짓고 무대를 설치했다. 한 번은 성제가 태액지에 배를 띄우고 자기는 옥환(玉環)으로 장단을 맞추고 시랑(侍郞) 풍무방(馮无方)은 생황으로 반주토록 했다. 조비연은 손수 작곡한 『귀풍송원곡(歸風送遠曲)』즉 바람에 실어 멀리 보내는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 배가 흔들리자, 뱃전에서 춤을 추던 조비연이 휘청하면서 연못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옆에 있던 황제가 재빨리 그녀의 발을 붙잡았는데, 그 와중에도 그녀는 춤추기를 멈추지 않고 임금의 손바닥 위에서 춤을 췄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비연(飛燕) 즉 물 찬 제비, 또는 나는 제비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고사성어 작장중무(作掌中舞) 즉 손바닥 위에서 춤춘다라는 고사도 나왔단다. 이때 조비연이 물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의 발목을 급히 붙잡다가 치마폭의 한쪽이 길게 찢어지게 됐는데, 이렇게 찢어진 치마 스타일이 약간 섹시하고 유행을 타서 장안의 여성들의 패션 코드가 되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이다. 이 패션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와서 중국 여인들의 전통 의상인 유선군(留仙裙)의 유래가 됐다고도 전해진다. 그 후 성제는 궁녀들에게 수정반을 들게 하고 조비연이 그 위에서 춤을 추게 하니 춤사위가 절묘해 성제가 더더욱 사랑하게 됐다고 한다.

조비연의 매력 포인트는 춤과 노래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조비연은 템포가 빠른 원무(圓舞)에 의해 허리를 단련시켰으므로 자연적으로 방중술(房中術)에 뛰어난 베테랑이었다. 특히 가는 허리를 비트는 기술이 신기에 가깝고, 비연의 작은 발도 최고의 성감대였던 것이었다. 육조시대 때 쓰인 <비연외전(飛燕外傳)>에 보면 비연의 발은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출 정도로 작았지만 발가락 사이에 수박씨나 건포도를 넣어 두고서 이것을 혓바닥으로 꺼내어 먹은 것이 성적으로 최고의 흥분을 유발할 만큼 규방비기(閨房秘技)의 대가였다고도 전해오고 있다. 꽃노래도 한두 번이고, 맛있는 음식도 한 번이지 계속 먹으며 물리게 된다. 그래서 조비연에 대한 사라의 감정이 서서히 식어가자 영리한 그녀가 자기 동생 조합덕(趙合德)을 궁으로 불러들여서 황제에게 진상을 한다. 조합덕은 조비연 보다 더 젊고 얼굴이 더 잘 생겨서 황제가 무척 좋아하게 된다. 조합덕의 매력 포인트는 얼굴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그맣고 아름다운 발에 있었다.


남자들은 여성의 신체 부위 중에서 가려진 부위에 성적 매력을 더 느낀다. 여자들은 수치스러운 부분을 더 먼저 가리므로 문화적으로 남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위가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여자가 갑자기 나신이 되었을 때 아랍여인들은 얼굴을 가린단다. 서양여인들은 가슴을, 일본여인은 엉덩이를, 뉴기니아와 사모아 여인들은 대퇴부를 각각 가린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처녀들은 가슴을 가리고 유부녀들은 삼각지를 가린다고 한다. 반면에 중국 여인들은 발을 가린다. 믿거나 말거나이다. 아무튼 그녀들은 하얀 피부를 유지하고, 황제를 꼬드기기 위해 배꼽에 비밀스러운 환약 즉 식기환(息肌丸)을 붙였다. 이 환약의 약효는 아주 좋았다. 희고 매끄러운 피부를 유지했으며 밤이면 침대에서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음욕을 부채질한다. 이렇게 사람을 매혹시키는 향기로 황제를 더더욱 자제할 수 없게 만들어 밤마다 음탕한 짓을 하지 않으면 미칠 지경에 빠뜨렸다. 조 씨 자매는 쓰리썸도 마다라지 않고 황제를 그녀들의 가랑이 사이에 단단히 옭아매면 맬수록 남성의 정력은 고갈된다. 그러면 의관을 시켜 최음제를 조제해 복용시키면서 음욕을 채웠다. 황제의 쾌락을 위해 비약(秘藥)을 만드는 방사들은 밤낮없이 바빴다. 황제가 단약을 복용하면 마치 요즘 마약을 먹은 것처럼 정신이 극도로 흥분돼 미녀와 밤새도록 그 짓을 할 수 있으니 엄청 회춘을 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장기 복용하게 되면 중독이 되고 복용량을 점차 늘리면서 인생이 끝장나게 된다.

조씨 자매는 궁궐에서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나 몇 년이 지나도 임신하지 못했다. 물론 정식 황후인 효성황후 허씨도 임신하지 못했다. 따라서 혹시 다른 비빈들이 승은을 입어 아들을 낳으면 그들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을까 염려돼 임신하는 궁녀들을 학대하고 주살한다. 그래서 당시 민간에는 “제비가 날아와 황손(皇孫)을 쪼아 먹는다”는 동요가 유행할 정도였다. 궁녀 조궁(曹宮)이 아들을 낳자 주살당했고 황자도 궁 밖으로 버려졌다. 또 허(許) 미인이 아들을 낳자 모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니 계집에 빠져 사는 황제이지만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자식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허황후가 언니 허알과 상의하여 주술을 부려 후궁의 임신한 비를 저주한 사실이 있었다. 더 나아가서 황후와 알력이 있던 황태후의 동생인 대장군 왕봉까지 저주했다 이것을 눈치챈 조비연 자매가 황태후 왕씨에게 고자질을 하였다.


황태후가 철저히 조사를 한 후 드디어 허알은 주살되고, 허황후가 폐위가 된다. 황제는 조비연을 황후로 세우고자 하나 황태후가 조비연의 출신이 비천해서 반대를 한다. 그러자 조비연이 황태후의 사촌동생 순우장을 뇌물로 사로잡아서 황태후를 설득시켜 드디어 제2번째 황후에 등극하게 되는 것이다. 황후에 책봉되었지만 조씨 자매에게는 아기가 생기질 않는 거다. 궁궐 여인들에게 후사가 없다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뜻하는 것이다. 불임의 원인은 아마도 식기환을 많이 사용해서 그런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조씨 자매는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끝에 황제 몰래 아무 남자 씨라도 받자는 결론을 내린다. 비밀리에 장안의 건장한 꽃미남 몇 명을 엄선해서 차례로 궁에 불러들인 뒤 모든 테크닉과 방중술을 총동원해 밤을 새워 그 짓을 해도 허탕이다. 껄떡거리던 꽃미남 좋은 일만 시킨 셈이 된다. 애를 많이 낳은 본 놈이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해서 자식을 14명이나 둔 46살의 상가(商價)라는 사람을 섭외해서 씨내림으로 사용했다. 그래도 효험이 없었다. 한 번은 조비연이 시랑인 경안세(慶安世), 연적봉을 유혹하여 관계를 가지고 밀회를 이어갔다. 반면에 어쩌다가 하룻밤 승은을 입은 후궁이나 궁녀들은 가끔 임신을 하곤 했으니, 황제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밤에 황제는 조합덕이 건네준 춘휼교(春恤膠)라는 최음제를 많이 먹은 황제는 약기운에 온몸이 분기탱천하여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물건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면 방사를 치른다. 그야말로 용맹정진하고 파죽지세로 조합덕의 동굴을 공략하여 그녀를 홍콩으로 두서너번 보내 버린다. 그녀를 홍콩 보낸 것까지는 좋았으나 결국에 본인은 홍콩이 아니라 천국으로 직행하고 만다. 조합덕과 같은 침대에서 죽었으니 당연히 조합덕은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음독자결하니 그녀의 나이 38세였다. 성제(成帝)의 소생 아들이 없으니 자연히 조카 유흔(劉欣)을 황제로 옹립하니 그가 바로 애제(哀帝)이다. 애제는 친할머니 부태후와 정권 힘겨루기로 다투다가 부태후가 먼저 죽자 그도 연달아 죽고 만다. 태황태후인 왕씨가 옥쇄를 거두어서 중산왕의 아들 유간(劉衎)을 황제로 하니 평제(平帝)이다. 권력을 장악한 태황태후가 부태후의 세력과 황태후 조비연 등을 숙청했다. 그래서 조비연은 황태후에서 서민으로 강등당한 뒤에 결국 자결하도록 가용당하여 죽었다. 이 모든 게 조비연으로 인해 총애에서 밀려난 반첩여가 태황태후를 수발들면서 뒤에서 모사를 꾸민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조비연 자매가 성제의 아들들은 주살하고 후사가 없게 만들고, 왕권이 나날이 쇠약해짐에 따라 결국 한나라는 몰락하게 되었다. 결국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반첩여가 아닌가 생각된다.(금삿갓 운사芸史 금동수琴東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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