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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운사 Jan 30. 2024

245. 오 세브레이로 마을(8/09)

기적의 작은 성당

해발 1,330m 지점에 있는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마을에 도착했다. 라 파마(La Faba) 마을에서 오르막 언덕길을 5.5Km 걸어오면 산 정상에 마을이 있다. 앞에 있던 마을보다는 규모가 좀 더 크다. 여기서부터는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을 벗어나서 갈리시아 지방이다. 이 마을은 로마시대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근처에 시에라 데 안까레스(Sierra de Ancares) 산이 펼쳐져 있어서 매우 경치도 좋다. 아침에 일찍 이곳에 도착하니까 마을의 성당 옆 공터에 야영을 하던 순례객이 아침잠이 깨서 텐트에서 나오고 있었다. 독일에서 온 여성 순례객인데 용감하게 혼자서 성당옆 풀밭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것이다. 아마도 자전거로 텐트를 싣고 순례를 하는 중인가 보다. 마을 입구 돌담길에 예쁜 여자 순례객 동상이 얌전하게 돌담 위에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모든 순례객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높은 지역이고 폭풍우가 자주 치는 지역이라서 순례객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기 위해 O Cebreiro는 1072년부터 순례자 알베르게를 마련해 놓고 있다고 한다. 오 세브레이로에는 4개의 파요사가 잘 보존되어 있다. 파요사는 우리나라 초가집 형태의 건축물이며, 아마도 중세 시대에 유래했을 거라 추정되는 가옥으로, 인간이 산속에서 환경 조건에 적응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에는 산따 마리아 라 레알 성당(Iglesia de Santa Maria la Real)이 있다. 옛 아스뚜리아스 왕국의 라미레스 양식이 남아 있는 로마 시대 이전의 건축물이다. 이 성당에 기적이 일어난 전설이 있다고 한다. 700여 년 전 어느 폭풍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 후안 산틴(Juan Santín)이라는 독실한 믿음을 가진 농부가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추위와 악천후를 뚫고 성당에 도착했단다. 그런데, 그의 헌신에 대해 회의적인 신부로부터 빵 한 조각과 포도주 한잔을 위해서 왔느냐고 조롱을 받았다. 그리고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며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할 것이라고 축성을 하자, 그 농부도 간절히 기도를 올리며 그렇게 해달라고 빌었다. 미사를 집전하던 사제가 하늘에 성체를 바친 후 경배하고 눈을 뜨자 성체는 고기 한 조각으로 변해있었고, 성배에는 포도주가 피로 변하여 가득 차 있었다. 이 기적은 유럽 전체에 널리 알려졌고 수많은 참배객이 이 성당을 찾아와서 크리스털로 장식한 주전자와 은으로 만든 유물함을 봉헌했다. 그런데 욕심 많고 고집 센 이사벨 여왕은 기적의 성배와 성체를 담은 접시를 탐내서 왕궁으로 바치라고 했다. 여왕의 명령으로 군인들이 성배를 가져가는데, 성배를 등에 실은 노새가 라 파바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성배는 다시 오 세브레이로의 성당 안에서 현재까지 보관되고 있다. 


이 마을 오 세브레이로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부활시킨 선구자 엘리아스 발리냐 삼뻬드로(Elias Valina Sampedro)의 흉상이 있다. 그가 누구냐 하면 오 세브레이로 교구 신부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부활시키는 일에 자신의 일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순례길의 이정표를 표시하는 노란색의 페인트로 칠한 화살표 표시를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까미노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조직하여 <카미노의 친구 협회>를 설립하여 활성화한 인물이다. 실로 그의 이러한 노력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이렇게 번창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옛날 이 마을의 성당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현대에도 카마노 순례길 부활의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1300m가 넘는 높은 고지대에 있는 마을의 바에서 문어 요리 간판을 주력으로 내걸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고산지방에서 산촌의 음식이 아니라 바다의 식재료를 이용한 요리를 광고하다니 아이러니 한 것이다.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에는 이 문어 요리 즉 뽈뽀(Pulpo)이다. 우리나라의 자숙문어 처럼 문어를 데처서 그냥 썰어 먹기도 하고, 이것을 올리브오일, 파프리카, 소스 등을 가미해서 살짝 복아서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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