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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적폐 청산은 누구의 전유물(專有物)도 아니다

금동수의 세상 읽기(22.02.14)

by 금삿갓

대통령 선거를 한 달도 안 되게 남겨 두고 선거판에 돌연 적폐청산(積弊淸算)이란 말이 난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제1야당 후보자의 일촉즉발(一觸卽發)의 긴장감 있는 말들이 오가고, 후보자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듣기에 따라 선거 전략이나 선거 개입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정치보복이라며 선을 넘었다는 주장도 있다. 각자 자기 진영의 입맛에 맞게 생각하고 말하는 정치판이라서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현실적으로 적폐가 있다면 이건 당연히 불법내지는 위법한 경우이므로 청산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적폐청산이 어느 한 개인의 전유(專有)이거나 어느 특정 정치 집단만의 통치 수단일 수는 없다. 그리고 적폐란 완전히 청산되었다고 영원히 근절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세상에는 새로운 적폐가 생기기 마련이다. 따라서 적폐청산은 한번이 아니라 지속적, 반복적으로 해야만 깨끗해 질 것이다.

<뉴스1 : 이미지>

적폐란 오랜 기간에 걸쳐 쌓여온 악습이나 폐단이고, 이는 어느 한 시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자. 적폐라는 용어와 이를 개혁하려는 의견이나 시도를 기록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종 때부터 18회가 나타난다. 승정원일기에는 17회, 일성록(日省錄)에는 15회가 기록되어 있다. 태종실록의 태종2년(1402) 6월 1일에 승추부(承樞府)가 양병(養兵)에 대하여 올린 상소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모두 전조(前朝) 말년의 적폐(積弊)가 아직도 다 개혁되지 못해서 그러한 것입니다. 신 등은 생각건대, 오래 된 적폐를 개혁하려면 마땅히 새로운 법을 세워야 된다고 생각됩니다.” 당시 승추부는 병력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던 부서로서 군사들의 양성에 대한 상소를 올리면서 전조(前朝) 즉 고려의 쌓인 폐습을 다 청산하지 못해서 생긴 것이라 한다. 그리고 적폐를 개혁하려면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 시행함이 옳다고 아뢴다. 오늘날 정치권에서 횡행(橫行)하는 적폐청산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

<역대 정권별 주요 사건 : 아시아 경제 자료>

근래 정치에서의 적폐청산은 어떠했는가? 3당 합당을 거쳐 1993년 집권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오랜 군사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는 국정 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했다.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척결, 역사바로세우기란 이름으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쿠데타와 거액 비자금 조성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게 하였다. 이것이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 받는다는 선례가 되어 이 땅에 군사 쿠데타의 재발을 막을 수 있었다. 또한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경제의 투명성을 강화하여 국제 기준에 부합하게 되었다. 적폐 청산의 대부분을 입법을 통하여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한 것이다. 정치적 목적이나 진영(陣營)의 논리로 처리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4월 국무회의에서 “오랜 세월 사회 곳곳에 누적된 적폐를 개혁하겠다”라고 선언하면서 적폐청산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리고 노동·공공·금융·교육의 4대 개혁 과제를 세웠다. 하지만 전교조와 민노총이 잡고 있는 노동계를 개혁하고, 공공부분도 개혁 하고자 하였으나 국회의 비협조로 입법이 지연되고 반발 세력의 확대되어 개혁은 좌초되고 말았다. 위헌 정당인 통합진보당의 해산만 이루어졌으나 세월호 사고와 최순실 국정 농단(隴斷) 사건이 터지면서 스스로 탄핵을 당하고 말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자 적폐청산이 마치 자기들의 전유물인양 굴었다. 취임하자마자 국정 전반에 걸쳐 적폐청산 작업이 휘몰아 쳤다. 정권 출범 직후 청와대는 <적폐청산 부처별 T/F 구성 현황과 운용 계획을 회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모든 정부 부처들은 조직적으로 과거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 활동과 전 정부 흔적 지우기에 들어갔다. 대표적으로 교육부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에 연관된 전·현직 공무원(13명)과 민간인(4명) 등 17명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수사 의뢰하고, 현직 교육부 공무원 6명은 징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 방침에 따랐을 뿐인 중·하위직 공직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가 무색(無色)하게도, 교육부는 연구사를 비롯한 실무자까지 수사 의뢰하고 징계 대상에 올렸다.


고용노동부 또한 과거 정부의 고용노동 행정 적폐를 바로잡겠다며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켜 과거 정부의 조치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전교조·전공노에 대한 법외노조 판단,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근로자들에 대해 불법파견이 아니라고 했던 근로감독 판단, 삼성전자의 노조 와해 의혹, 현대자동차 협력사인 유성기업의 노조 탄압에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았던 이유 등이 대표적인 사안이다. 이 과정에서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들에 대한 재조사를 하는가 하면, 디지털 포랜식(Forensic) 같은 검찰 수사기법까지 이뤄지기도 했다.


환경부의 4대강 보 해체는 가장 대표적인 전 정권의 흔적 지우기라고 할 수 있다. 농민들은 보 해체 및 수문 개방으로 인해 가뭄에 피해를 볼까 우려한 나머지, 환경부에 보 해체에 반대한다는 서명까지 제출했다. 또한 무리한 탈원전 정책의 시행으로 국내의 원전산업을 피폐(疲弊)하게 하면서 밖으로는 원전을 수출하겠다며 외유를 다니는 대통령이 바로 적폐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검찰개혁을 부르짖고 나라가 시끄럽게 떠들면서 공수처를 신설한지 1년이 지나도록 고위 공직자의 범죄를 제대로 적발하거나 기소한 실적이 미미하단다. 이렇듯 있으나 마나한 기구를 옥상옥(屋上屋)으로 만든 게 적폐일 것이다. 남부지검의 금융증권합동수사단을 폐지하고,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 같은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 것이 적폐가 될 수 도 있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초에 전 정권의 적폐청산 수사 기간 동안에는 윤석열과 아주 각별한 듯 보였다. 그러다가 수사의 칼끝이 자기네 진영을 겨누자 갈등이 고조되더니 급기야 파탄에 이르고 말았다. 오늘의 윤석열을 만든 건 온전히 그 자신들의 행위일지 모른다. 윤석열과의 악연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신(神) 내림을 받아 압수 수색 바로 전에 자료를 모두 폐기한 월성 원전 경제성 관련 비리 수사 사건은 구속영장 청구를 앞두고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 시켰다. 최근 재판과정에서 청와대 하명이라는 증언이 나오는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은 대검의 지휘라인을 좌천시키고 수사팀을 해체하였다. 범여권 인사들의 개입 의혹이 있던 라임펀드 사기사건은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을 박탈하고 남부지검의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해체했다. 1조원 넘는 피해를 낳은 옵티머스 사건을 중앙지검이 수사했다가 용두사미로 끝난 것도 있다. 조국 일가 수사 초기에 친여 성향 법무부 검찰 간부들이 ‘윤석열 총장을 배제한 특별수사팀’을 추진했던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으며, 대검의 수사 지휘라인이 좌천과 인사 보복을 당했다. 채널A 기자 사건의 경우도 검찰총장 지휘권을 박탈하고 수사 검사가 폭행죄로 기소되었음에도 별다른 조치 없이 승진시켰다.

<뉴스 웨이 자료>

현재 대통령 선거 후보에 대한 비리 의혹도 제기된 것이 많다. 여당 후보의 경우, 천문학적 수익률을 올린 대장동과 백현동 개발 사업 비리 의혹 사건과 변호사 비용 대납 의혹 사건은 증언자나 관련자가 여러 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안이다. 국민 세금으로 집행되는 기관의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이용하여 공금을 횡령한 의혹과 배우자에 대한 탈법적 과잉 의전 의혹들은 제보자의 제보가 현재 진행형이다. 야권 후보에 대한 배우자의 경력 부풀리기 의혹과 주가 조작 의혹 사건, 청부 고발 의혹 사건이 수사 중이거나 법적 절차 중이다. 하지만 모든 사건들이 국민들의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줄 정도의 진척이나 결과가 아직 없다. 정치권의 외압이 있는지 수사기관이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뭉개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대선이 끝나고 누군가 집권했을 때, 이러한 사안들에 대한 엄정한 수사가 정치보복이라고 여겨 덮는다면 올바른가? 적폐청산인지 정치보복 인지를 국민들은 잘 안다.


우리 정치사에서는 대통령의 말로(末路)가 최악의 상황이다. 혁명이나 군사 쿠데타로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난 대통령이 3명이고, 탄핵 당해 물러난 사람이 1명이다. 퇴임 후에 감옥에 간 사람이 4명이며,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망명을 떠난 사람이 2명이다. 짧은 민주주의 역사에 국가 원수의 말로가 말이 아니다. 사실과 진실, 법과 원칙을 도외시 한 채 자신과 생각이 다른 세력을 ‘적’으로 모는 분열과 증오의 정치가 유독 우리 사회에만 일상화된 것일까? 2018년 12월 5일 미국의 제 41대 대통령이자, 조지 W. 부시(George Walker Bush) 제43대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H.W. 부시(George Herbert Walker Bush)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 있었다. 그 자리에 여야의 진영을 떠나 전·현직 대통령 5명이 참석하여 추모했다. 우리의 눈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대통령의 장례식 날 미국의 모든 금융시장이 애도하는 뜻에서 임시 휴장하는 관례도 좋아 보인다. 우리 정치에서도 적폐청산은 칼날처럼 추상(秋霜)같이 하고 정치보복은 말도 못 붙이는 풍토가 되길 바란다.(202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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