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2020.3.18. 일부터 시행하던 <사회적 거리두기>를 2022.4.18. 일 부로 전면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해 전 국민의 일상생활을 사실상 2년 1개월간 제한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라는 표현보다 <물리적 거리두기(Physical distancing)> 라는 표현을 권장했다. 왜냐하면 전염병 확산의 주요인이 대화중에 날리는 비말(飛沫)이기 때문에 ‘비말이 튈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 사회활동을 제약하는 것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용어와 시행 지침이 국민들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고도의 정치적 함의(含意)가 있다고 국민들은 오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광우병 관련 집회, 박근혜 정부 때 세월호와 국정농단 관련 촛불집회와 같은 ‘광장정치’의 광기(狂氣)를 직접 경험한 문재인 정부로서는 실정(失政)에 대한 불만 표출의 광장(廣場)을 교묘하게 막을 최적의 수단이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 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현 정부가 전염병 초기에 백신 확보에는 무관심하면서 오로지 ‘한국형 방역(K방역)’만을 외치면서 국민들의 일상을 옥죄어 왔다. 결과적으로 큰 효과도 없었던 K방역을 자화자찬(自畵自讚)하다가 전 세계 최고 감염국(感染國)으로 전락한 임기 말에 와서 갑자기 <사회적 거리두기>를 급하게 해제한다니 그 저의가 임기 중 ‘광장정치’를 막는 도구였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광장정치’라고 하니까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와 소설가 최인훈의 역작 <광장>이 문득 떠오른다. 고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Acropolis)가 신의 장소인 반면, 아고라(Agora)는 정치와 재판, 학문을 꽃피우거나 상품거래를 하는 인간을 위한 광장이었다. 아고라(Agora)는 ‘시장에 나오다’ ‘물건을 사다’는 뜻의 ‘아고라조(Agorazo)’에서 유래했다. 사람들이 공적·사적 일에 관해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만나는 도시의 공공장소로서 정치, 경제, 사법, 종교,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한 것이다. 아고라는 다시 프닉스(Pnyx)로 변경되고, 로마시대에는 포룸(Forum)으로 변화한 것이다.
소설 <광장>이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 깊이 와닿는 것은 필자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주인공인 철학도 이명준은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남한에서의 생활은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게 되고, 특히 개인들의 행복만을 무작정 추구하는 ‘밀실’로 인식한다. 그래서 참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지도 모를 ‘광장’을 찾아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월북한다. 그러나 북한은 표현의 자유가 극히 제한받을 뿐만 아니라, 획일화된 집단주의의 ‘광장’은 있으나 개인이 존중받는 ‘밀실’이 없는 곳이었다. ‘밀실’과 ‘광장’을 교차로 거치면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의 몸과 고뇌가 가장 넓은 광장인 바다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늘 광장을 동경하지만 이상적인 광장은 어디에도 없고, 획일화된 광장은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이다.
<아고라 모습>
우리나라 역사에도 ‘광장정치’의 사례가 많이 나온다. 조정의 신료(臣僚)들이 집단으로 의견 표명을 하는 것을 예외로 치더라도, 관리가 아닌 그야말로 재야의 목소리인 성균관 유생(儒生)들의 집단 의사표시가 수시로 있었다. 성균관 유생은 그릇된 정책이나 부조리한 사회문제 등에 대해 상소(上訴)를 올려 주장을 펼쳤다. 그런데 상소를 올려도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조정의 일 처리가 부당하다는 공감대가 확고할 경우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를 행동 양태나 수위에 따라서 ‘권당(捲堂)’ 또는 공관(空館)이라고 했다. 권당의 초기 형태는 성균관 내부의 식당에서 먹는 식사를 유생들이 거부하는 것이다. 일종의 단식(斷食) 투쟁이었데, 이는 단식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성균관 유생의 식사는 한 끼의 의미보다 출석 체크의 의미가 강했다. 하루 조석(朝夕) 두 끼를 먹어야 1점을 받고, 이것이 300점을 넘어야 과거 응시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단식을 하면서 공무담임권을 거부하는 것이다.
<성균관 스캔들 : KBS 드라마>
식사 거부는 점차 수위가 높은 집단행동으로 발전되어 갔다. 수업에는 참석하지만 맹인 행세를 하면서 책을 보지 않는 청맹권당(靑盲捲堂), 집단으로 대궐 앞에 몰려가서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소리를 하는 호곡권당(號哭捲堂)으로 변화되었다. 이렇게 해도 자기들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에는 유생들 모두가 성균관을 떠나서 학교를 비우는 공관(空館) 투쟁을 했다. 세종 30년(1448년) 7월에 문소전(文昭殿 : 태조비 신의왕후 한씨 사당) 근처에 불당을 설치하려고 하자 대소 신료들이 대부분 집단으로 불가를 상소하였고, 성균관 유생들은 집단으로 성균관을 물러 나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공관 투쟁을 했다. 세종을 영의정 황희(黃喜)에게 사태 수습을 맡겼다. 그는 유생들의 집집마다 찾아가서 설득했다고 한다. 중종실록 16년(1521년) 10월 23일에 성균관 유생들이 조광조(趙光祖)의 처벌의 불가함을 고하러 대궐 안으로 마구 들어와 머리를 풀고 호곡(呼哭)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대략 100여회 정도의 공관 및 권당 사례가 있고, 권당이 실록에는 173회, 승정원일기에는 170회, 일성록에 102회의 기록이 나온다. 성균관 유생들의 광장정치가 매우 잦았던 것이다.
조선 초기의 ‘광장정치’는 주로 임금이나 조정에서 유교적인 전통과 상식에 어긋나는 결정을 내리거나, 덕이 부족한 인물을 요직에 등용하거나, 불합리한 판결을 내리거나 했을 때 왕권을 견제하는 성격으로 행하여졌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격은 변질되어 성균관 안에서 유생들이 패거리를 이뤄 세력을 겨루는 수단이나, 당쟁이 심할 때는 특정 당파를 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리스의 아고라는 자유로운 토론이나 의견 교환을 통하여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하는 민주적 기능이 주(主)가 되었는데 반해, 우리의 권당이나 공관은 일방적으로 결정된 의사를 관철(貫徹)하려는 집단행위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날 우리 현실의 광장정치도 극단적이고 일방적인 행태를 띄고 있다.
<광화문 촛불집회 모습>
민노총은 2022.4.13일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에서 경찰 추산 4000여명(주최 측 추산 6000여명) 규모의 집회를 열었다. 당시 방역 지침 상 집회·시위의 최대 허용 인원은 299명이었다. 이에 앞서 민노총은 서울 시내 60곳에 299명 규모의 집회를 신고했다. 서울시는 코로나 확산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를 모두 불허했고, 법원도 인수위 근처의 인도 등 5곳에서만 299명 내의 집회를 여는 것을 허용했다. 하지만 민노총은 서울시와 법원의 결정에 따르지 않고 기습적으로 대규모 불법 집회를 강행했다. 작금의 광장정치를 극도로 잘 활용하고 판을 가장 키운 단체가 민노총이라고 본다. 여기에 정치 세력들이 합류하여 만들어 낸 것이 문재인 정부라고 생각된다. 이명박 정부 때의 광우병, 박근혜 정부 때의 세월호와 국정농단 등의 대규모 촛불 집회를 축제형식으로 지속하여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은 거대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보유한 단체가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다. 3·9대선으로 정권 교체를 앞두고 있는 마당에 광장정치의 최고 최대 조직이 전초전(前哨戰)을 치르듯 불법 집회를 결행한 것이다. 이를 시발(始發)로 해서 각처에서 조직적인 광장 세력들이 요원(燎原)의 불꽃처럼 타오르게 될 것이다. 광장정치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대의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광장정치에 대한 대비책이 없이는 어느 정부든 아무런 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바람직한 광장정치와 이에 대한 정치권의 현명한 대처 방안이 꼭 필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